작년의 꽃을 기억해 찾아온 소녀 같은 마음이 내게 건넨 선물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었다.
모두가 두툼한 겨울 패딩 속에 몸을 웅크리고 걷던 그 길에서, 나는 조금 이른 봄을 만났다.
누군가의 다정한 기억이 이끌어준 그곳에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파란 기적이 숨 쉬고 있었다.
길게 뻗은 산책길, 앞서 걷는 어머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연배 분들은 대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으시는데, 이분은 홀로 빠른 걸음으로 씩씩하게 걷고 계셨다.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던
나와 딸아이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는
왠지 더 활기차게 걸어야 할 것만 같아,
보폭을 넓히고 걷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참을 앞서 가시던 분이 산책로 한쪽,
양지바른 비탈진 곳에서 멈춰 서셨다.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정성스레 찍고 계시는 모습.
주위를 둘러봐도 아직 꽃 한 송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풍경인데,
무엇을 담고 계신 걸까 싶어 나 또한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직 한낮을 제외하면 영하권의 날씨인데,
"세상에, 이 아이들은 뭐야!"
마른 잎 사이로 파란 꽃이 몇 송이 피어 있었다.
신기하고 대견해하며 바라보는 내 곁에서, 딸아이는 그 작은 꽃에 붙어 있는 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꽃과 벌이라니!
바람 끝이 여전히 매서운데 말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이 피어 있는 것도 기특한데, 그 위로 벌이 앉아 있다니.
역시 아이의 눈은 어른보다 맑고 예리하다.
"작년에 이 꽃이 여기에 많이 피어 있는 게 생각나서요. 혹시나 피었는가 궁금해서 와봤어요."
소녀처럼 웃으시는 어머님께 꽃의 이름을 여쭈니 이름은 잘 모르신단다.
그저 작고 색이 고와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찾아오셨다고.
어머님의 발걸음이 유독 경쾌해 보였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자리에 함께 쪼그려 앉아 꽃 이름을 검색해 알려드렸다.
"어머님, 이름이 (큰 개불알풀)이래요. (눈개불알꽃)이라고도 부르고요!"
이름을 들은 딸아이의 표정이 묘해진다.
'꽃은 이렇게 작고 이쁜데, 이름이 왜 이래?' 하는 표정.
꽃의 고운 자태에 비해 이름이 너무 투박해 아쉬운 모양이다.
하지만 더 찾아보니 꽃말은 참 근사했다.
'기쁜 소식'!
무심코 지나쳤다면
마른 잎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았을
작은 생명들.
산책길에서 만난 다정한 어머님 덕분에
우리는 봄의 전령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하천 둑방은 여전히 겨울색이 짙지만,
오늘의 산책은 이 작은 꽃과 벌 덕분에
마음속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이는 듯했다.
귀한 꽃잎 보여줘서 고마워요, 나의 어린 봄꽃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