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기록은 나만의 사막이다.
세상은 바쁘게 디지털화되어 가고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남기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연필로 글을 쓰는 그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좋다.
연필의 흑연이 종이의 결을 만나 내는 미세한 마찰음.
그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몇 해 전 서양화를 배울 때도 그랬다.
남들은 지루해할 법한 2년여의 데생 시간이 내게는 전혀 지겹지 않았다.
도화지에 연필 끝이 닿으며 내는 소리, 선이 그어지며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명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글씨체를 살피는 것도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선의 굵기, 획의 흘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글을 쓰던 순간의 내가 보인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나를 담아두는 일이다.
한동안 손가락 관절염으로 연필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연필을 쥐고 무언가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상태가 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먼지 쌓였던 종이를 펼치고 오늘의 주제어를 고민해 본다.
현재 참여 중인 글로성장연구소의 ‘별별 챌린지’ 덕분에, 비록 매일은 아닐지라도 며칠에 한 번은 애정하는 종이 앞에 앉는 이 소중한 시간을 되찾았다.
이 시간을 반추하다 보니 문득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형제들이 모두 타지로 떠나고 부모님과 시골에 남겨졌던 그 시절, 내 마음은 추수가 끝난 뒤의 텅 빈 겨울 들판 같았다.
쓸쓸하고 무채색으로 가득했던 그 공간을 채워준 것은 이문세 아저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프로그램과 나의 작은 일기장이었다.
만약 그때 일기장이 없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그저 차갑고 고요한
단색화처럼 고독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오빠들의 빈 방에 들어가 LP판을 구경하고 책장의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읽으며, 마음에 남는 글귀와 생각들을 꾹꾹 눌러 적었다.
그 기록의 행위가 없었더라면 나는 형제 많은 집에서 소외된 아이로, 색깔 없는 아이로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좋은 글귀를 마음에 담았던 그 고요한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외로움을 기록 속에 오롯이 담아냈기에, 나는 비로소 자연의 수많은 빛과 색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록은 나에게 단순한 메모 그 이상의 힘을 준다.
그것은 책 속 주인공들과 재회하는 광장이었고,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는 안내서이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 그리고 위안과 감동까지.
기록은 내 안의 다채로운 감정 색채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는 그의 저서 『인간의 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막은 고독해진 인간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었다."
나에게 기록이 바로 그러하다.
홀로 연필을 쥐고 종이 앞에 앉는
그 고요한 시간은,
내 안의 텅 빈 들판을 마주하고
그곳에 나만의 색채를 채워 넣는 나만의 사막이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또 한 번 나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