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산을 잃어버렸습니다.
현관 우산꽂이는 늘 휑한 채로 비어 있지만, 걱정은 없다.
'회사에 있겠지',
'남편 차 뒷좌석에 있겠지' 혹은
'내 차 트렁크 구석에 있겠지'라며
막연한 행방을 짐작할 뿐이다.
우산이란 물건이 그렇다.
비가 쏟아지는 순간에는 세상 무엇보다 절실하지만, 해가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는 존재.
그렇게 우리 집 우산들도 아이의 교실 구석에서, 혹은 어느 복도 끝에서 긴 잠을 자고 있었나 보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긴 겨울방학을 지나던 2월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 소식 알림 앱에 전 학년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가 떴다.
[제목: 주인 잃은 우산들을 찾아가세요]
첨부된 사진 속에는 열대개의 우산이 엉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진만 봐도 "저건 우리 집 건데" 싶은 익숙한 무늬가 서너 개 이상 보였다.
그동안 회사나 차 안에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우산들이 모두 학교에 집결해 있었던 것이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이름표를 꼭 확인하고 챙겨 오라는 당부와 함께. 한참 뒤, 아이는 얼굴 가득 특유의 '아기 미소'를 장착한 채 낑낑대며 걸어 나왔다.
아이의 품에는 무려 다섯 개의 우산이 안겨 있었다.
"엄마, 일단 이름표 확실히 붙어 있는 것만 챙겨 왔어! 사실 몇 개 더 우리 것 같았는데, 너무 무거워서 그냥 두고 나왔어."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작년에도 책가방을 옆 단지 놀이터에 홀랑 두고 와서, 다음 날 등교 전 아빠와 손잡고 보물찾기 하듯 가방을 수거해 왔던 녀석이다.
다섯 개의 우산을 내려놓으며 내가 허탈한 웃음을 짓자, 녀석은 능청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 그만큼 비가 오다가 맑아진 날이 많았나 봐. 날씨가 좋아서 까먹은 거지!"
그 논리 정연한(?) 변명에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이의 말대로 비가 그치고 해가 쨍하게 비추던 하굣길, 아이는 가벼워진 어깨로 친구들과 뛰어노느라 우산 따위는 잊었을 테다.
밤새 내린 눈 위에 아이가 가져온 우산들을 나란히 꽂아두었다. 집 나갔던 우산들도, 아이 덕분에 눈밭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비가 오면 또 어딘가에 두고 오겠지. 그래도 괜찮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