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배어도 좋았던 날들
매미 소리가 창밖을 가득 메우는 한여름 저녁이면, 우리 집 거실엔 특별한 의식이 시작되곤 했다.
주방의 식탁 대신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겹겹이 펴는 일.
그 투박한 종이 위로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우리만의 만찬장이 차려졌다.
불판이 달궈지기 시작하면 갓 무쳐낸 파절이의 매콤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싱싱한 쌈 채소와 어머니의 손맛이 밴 묵은지와 파김치까지 불판 위로 올라간다.
"치익-"
소리와 함께 삼겹살 기름에 김치가 투명하게 익어가는 풍경.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양념처럼 버무려진 그 저녁상은 별 다섯 개라는 평점이 모자랄 만큼 완벽했다.
아이 손에 들려있는 오이도 상추도 아이가 직접 키워낸 작물이다.
그것을 아삭아삭 씹어먹는
아이의 뿌듯함 가득한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육즙과 구운 김치의 조화는 화려한 외식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집밥'만의 정점이었다.
사실 그 풍경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집안 가득 배는 고기 냄새,
기름기가 튄 바닥을 몇 번이고 닦아내야 하는 수고로움,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설거지거리들.
손이 가는 곳도, 마음 써야 할 곳도 참 많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여유로웠다.
기름진 바닥을 닦으면서도 누구 하나 인상을 쓰기보다, 배부른 만족감에 젖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그릇을 옮기고 뒷정리를 하는 시간조차 식사의 연장선처럼 느긋하고 웃음이 넘쳤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그런 풍경이 유독 아득하게 느껴진다.
연기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환풍기 아래서 빠르게 구워주는 고깃집은 편해졌지만, 신문지를 깔고 앉아 서로의 무릎이 닿던 그 온기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효율과 깔끔함이 미덕이 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소중한 '번거로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냄새가 밸까 봐 걱정하고, 치우기 귀찮아 외식을 선택하는 사이 사라져 버린 그 시절의 느긋함.
깔끔한 식탁보다 소박했던 신문지 위의 삼겹살,
삼겹살 소리와 함께 집안 가득 퍼지던 웃음소리가 유난히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