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두려움은 사실 같은 뿌리이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의 뿌리를 자각하는 일이다.

by 달빛모아

​고1과 중1. 두 아이가 나란히 새로운 학교의 문턱을 넘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낯선 교실, 처음 만나는 친구들 사이에 던져진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은 부모인 내게도 적잖은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빳빳하고 새하얀 교복이 못내 낯설고 불편한 모양이다.


입학 첫날부터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는 둘째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고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벌써부터 느껴진다고 한다.

​아이들의 긴장은 고스란히 내게로 전염되었다.


분명 다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 느꼈던 그 막막한 불안함이 다시금 비죽비죽 올라왔다.


아이를 향한 '믿음'과 부모로서의 '염려' 사이를 시소처럼 오르내리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오늘, 라디오에서 운명처럼 한 문장을 만났다.


“설렘과 두려움은 사실 같은 뿌리이다.”

'아! 나는 어쩜 이토록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설렘]이란 두 글자를...


이 문장을 며칠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긴장한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응원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하지만 오늘이라도 이 감정의 정체를 명확히 알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몸은 같은 신호를 보낸다.

​심리학에서는 설렘과 두려움을 감정의 스펙트럼 위에 놓인 '쌍둥이 감정'이라 부른다.


두 감정 모두 새로운 상황이나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우리 몸의 각성 상태를 높인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바닥에 땀이 고이며,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되는

생리적 반응은 두 감정 모두 동일하다.


​결국 차이는 '해석'에 있다.

똑같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듣고도 누군가는 이를 '즐거운 기회'로 해석해 설렘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여 두려움이라 부른다.


아이가 느낀 '고등'이라는 단어의 압박감과 새 교복의 불편함은 사실 새로운 성장을 앞둔 몸의 정직한 반응이었다.


위험해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몸이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해석의 차이는 개인마다 크다.

기질이나 환경에 따라 누군가는 도전을 기회로 보며 설렘을 즐기지만, 누군가는 위험 요소를 먼저 떠올리며 신중해진다.

신중함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장의 기회를 주저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의 뿌리를 자각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떨림이

사실은 '잘하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모습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도전'의 반복이다.


• ​조용히 마음을 돌아보며 일기를 쓰는 일.

• ​아주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보는 일.

• ​내 몸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일.


​이런 사소한 시도들이 쌓여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에너지를 '설렘'이라는 연료로 바꾼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우리가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의 정체를 알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고요해진다.

오늘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마"라는 말 대신, "네 심장이 뛰는 건 네가 그만큼 멋지게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야"라고 말해주려 한다.


​나 또한 오늘의 작은 도전을 통해 심장이 뛰는 그 느낌을 기꺼이 받아들여 본다.

아이들의 새학기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내 안의 떨림을 성장의 신호로 해석하는 연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찾아온 소중한 신호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나 자신과 아이들을 믿고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