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에는 없는, 엄마의 밥상 속 ‘절기’를 찾아서

클릭 한 번 대신, 흙 묻은 봄을 고르는 일

by 달빛모아

친정엄마의 식탁 위에는 늘 절기의 변화가 흐르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식재료를 새벽 배송으로 받기 시작했다.

손가락 몇 번의 클릭만으로 모든 것이 문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 마음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마트나 시장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어느새 나는 비대면이 주는 익숙한 편안함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었다. 그때 문득 결혼 전 엄마의 밥상이 떠올랐다.


정월 대보름의 묵나물과 약밥을 먹고 나면, 향긋한 봄나물들이 차례로 밥상에 올라왔다.

이른 봄 한철엔 곱창김에 달래장이 올라왔고, 출출한 오후엔 쑥버무리와 쑥개떡이 간식으로 놓여 있었다.

​친정엄마의 밥상은 곧 ‘계절’ 그 자체였다.

서른이 넘도록 그 밥상을 받아먹으며 자랐기에, 가끔은 그때 그 시절의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정작 지금 내가 차리는 밥상은 제철의 맛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먹는 채소라고는 대부분이 일 년 내내 같은 기본 채소가 전부였다.


​그래서 최근, 혼자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아이들에게도 24 절기를 느낄 수 있는 계절 밥상을 차려주기로 한 것이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 속에서 매끈하게 골라 담는 봄나물 말고, 시장통의 활기를 뚫고 직접 나물을 살피며 사 오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향긋한 나물 한 움큼을 사서 소박한 밥상에 올려보는 일, 요즘 혼자 마음먹은 것 중에 하나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엔 도매시장이 있다. 그곳은 여전히 예전처럼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시장 곳곳에 봄의 전령사인 냉이가 보였다.

냉이 된장국은 요즘처럼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차가운 날, 뜨끈하게 끓여내면 속 깊은 곳까지 푸근해지는 맛이다.


뿌리에 흙이 묻은 채 단정히 묶여 있는 쪽파단을 보니 달큼하고 아삭한 쪽파 숙회가 떠올랐다.

씀바귀와 부지깽이나물 앞에서는 그 쌉싸름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생각나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오독오독 재미있는 식감을 주는 톳과 생미역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미 조리된 반찬을 고르는 것도 아닌데, 푸릇푸릇한 채소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벌써 맛있게 먹는 시간을 그려보며 혼자 흐뭇하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봄동 앞에서 멈췄다.

봄동 겉절이가 먹고 싶다던 큰아이 말이 생각나 1kg을 달라고 했더니, 상인 언니가 1.3kg 가까이 담아주셨다. "포기째라 딱 맞추기가 번거로우니, 이쁜 언니가 달라니 그냥 가져가요." 반백의 아줌마도 이쁜 언니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매일 무언가를 준비하지만 늘 비슷한 반찬에 머물렀던 내 일상.

시장 자판 사이를 걷는 동안, 편리함에 가려져 잠시 잊고 지냈던 계절의 맛을 이제야 식탁 위로 데려와 본다.




글벗님들, 오늘도 함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롯이 나를 챙길 수 있는 틈을 만드시길,
평온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