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블록을 틀던 시간
매일 걷던 익숙한 산책길에서 아주 살짝 방향을 틀어보았다.
익숙한 풍경의 궤도를 벗어나자마자 마치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인 듯한 생경함이 밀려왔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 단지 안인데, 고작 한 블록 사이를 두고 이런 설렘을 느낄 수 있다니.
휴일 아침 7시.
건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무대의 주인공을 비추는 하이라이트 조명처럼 강렬하고 눈부셨다. 그 빛의 틈새로 보인 것은 뜻밖의 정원이었다.
단지마다 조경의 결이 이토록 다르다니.
그곳은 마치 호젓한 휴양림의 산책로를 옮겨놓은 듯했다.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키높이로 층층이 리듬감을 만들고 있었고, 사이사이 놓인 암석들은 묵직한 존재감으로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아파트 숲 사이의 길이라기보다, 누군가 세심하게 설계한 '명상의 숲' 같았달까. 그 안쪽으로 조용히 발을 들이니 일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오직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평일의 분주한 산책과는 달랐다.
주말 이른 아침, 정제된 풍경 위로 내려앉은 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며칠 뒤면 앙상했던 가지마다 초록의 잎들이 힘차게 터져 나올 것이다.
목련 나무의 겨울눈이 살짝 벌어져 꽃 꼬투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저 고요한 나무들도 내 마음처럼 빛에 반응하며 요동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길에서 한 걸음 비껴 섰을 뿐인데, 나는 오늘 새로운 봄을 미리 선물 받았다.
글벗님들, 오늘도 함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롯이 나를 챙길 수 있는 틈을 만드시길,
평온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