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은 누가 해줘?

철가방과 헬멧 사이

by 달빛모아

​오늘 아침,

거실에서 남편과 아이의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발단은 아이의 제보였다.


​"아빠, 내 친구 S는 쌍화차에 노른자를 띄워 마신대. 그래서 내가 너 옛날 맛 좋아한다고 그랬어."
​남편은 허허 웃으며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쌍화차가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아침 식사 대용이기도 했던 시절,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다방의 풍경 말이다.


​"그땐 다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주문하면 아가씨들이 와서 직접 커피도 타주고, 배달도 해줬단다."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자니 문득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사실 나는 부모님 세대의 다방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보고 먹먹함에 젖어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청춘의 어느 날이 내게도 있었다.

스크린 속 다방 아가씨 은하의 삶이, 그 서글프고도 지독한 순애보가 다방이라는 공간을 내게는 단순한 찻집 이상의 애틋한 풍경으로 각인시켜 주었나 보다.

​그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쯤,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묘해지더니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음... 뭐가 이상한데? 지금은 다 아저씨들이 배달해 주잖아.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럴 수 있지"

​그 한 마디에 거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아이에게 '배달'이란 앱을 켜면 나타나는 건장한 아저씨들의 노동이었다.
헬멧과 오토바이, 그리고 현관문의 초인종 소리.

반면 남편과 나의 기억 속 한편에는 '배달'은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보자기나 철가방을 들고 골목을 누비던 시절의 어떤 풍경을 품고 있었다.

같은 단어가 이토록 다른 그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쌍화차 노른자에서 시작해 배달 아저씨로 끝난 엉뚱한 아침.

남편과 아이는 여전히 세대의 간극을 넘나들며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그 틈에서 혼자 조용히 웃었다.

철가방을 든 손과 헬멧을 쓴 손. 같은 '배달'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어쩌면 세대 차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단어는 같은데, 그 안에 담긴 풍경이 서로 다른 것. 그리고 그 다름을 신기하게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아이 덕분에, 오늘 아침은 조금 더 따뜻했다.








글벗님들, 오늘도 함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롯이 나를 챙길 수 있는 틈을 만드시길,
평온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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