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을 기억하길
차도 소리를 피해 등턱에 올라갔다.
불과 몇 미터 사이인데, 나무가 우거진 길로 들어서자 소음이 잦아들었다.
연둣빛 잎사귀가 우거진 한쪽 편에는 잔가지 사이로 라일락꽃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흙길 중간중간 지난가을에 떨어진 소나무잎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매일 걷던 산책길에서 살짝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꼭 깊은 숲 속 둘레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 세상이 고요해진 듯했다.
분명 누군가의 발길이 오랫동안 닿아 만들어진 길이다. 길 위에는 지금 딸아이와 나뿐이다.
교차로에서 들려오던 엔진 소리는 멀어지고,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고즈넉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니, 멈춰버린 듯한 이 시간이 좋아 우리는 그 길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딸아이는 앞장서 걷다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살랑이는 햇살을 바라본다.
아이는 지금,
조용히 이 순간을 가슴에 담고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뒤따라 걷는 길에서 보이는 빛이 따스하다.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이 빛의 온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사각거리는 연필 끝으로 이 숲의 고요를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