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라도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보면 내가 꾸려가는 살림의 영역이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성공 가도를 듣고 있노라면, 평온하던 마음은 금세 갈피를 잃고 작아진다. 가만히만 있어도 다행이다 싶은데,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는 몸 때문에 매달 늘어가는 병원 영수증을 보면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모처럼 큰맘 먹고 나간 외출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나갔지만 정작 상대의 기쁜 소식을 온전히 축하해 주지 못하는 옹졸한 나를 발견할 때면,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한나절 안부를 나누며 분명 반가웠는데, 홀로 돌아오는 길에 푹 꺼진 마음을 자각하는 순간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 마음이 원래 이렇게 좁았던가 싶어 씁쓸하다가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애써 자기를 합리화해 본다.
집에 돌아와 책상 위를 정리하고 작은 쓰레기들을 치우면서도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도 없는 아이의 방에서 혼잣말로 투덜거려 본다. 학교라는 엄격한 규칙 속에 살다 돌아온 아이에게 집만큼은 숨통 트이는 곳이어야 할 텐데. 사소한 정리 정돈조차 철저히 준수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사실은 나 스스로를 더 숨 막히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바탕 끓어오른 화를 가라앉히려 이 방 저 방을 돌며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반복한다.
어느덧 말끔해진 집안을 돌아보다 문득 멈춰 섰다. 지금은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집안일조차 간절히 하고 싶었던, 그저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회사 일과 살림을 묵묵히 병행하던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함을 삼켰었다.
애써 밝은 척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늘 두려웠다. 아무것도 못한 채 가족의 짐이 되는 건 아닐까 하고, 그 시절에 비하면 오늘의 나는 얼마나 감사한 일상을 살고 있는가.
내 손으로 쓸고 닦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공간을 정돈할 수 있다는 것.
비록 소소하고 투박할지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이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작지만 보람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