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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5. 2022

내가 위대한 마법사라면 이런 일을 하겠다

한예종


 손이 점점 뜨거워졌다. 손등에 붉은 반점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더 세게 악 물었다. 그러나 팔까지 퍼진 반점들을 막을 수 없었다. 앙 다문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에 손을 뗄까 망설여졌다. 그러나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불길 더 깊숙히 손을 집어 넣었다. 불길 사이로 눈가가 붉게 물든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 탓에 불길은 점점 더 번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말하자 그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찰칵 하고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소리에 놀라 밑을 내려보니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몇 발자국 앞에 놓인 소화기를 보았다. 그러나 소화기로 향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체력이 바닥나 눈이 서서히 풀려갈 즈음 하늘이 번쪅였다. 그러자 검은 밤하늘 위에서 물줄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크게 떴다. 이 때를 놓치면 안 됐다. 나는 모든 신경을 손 끝에 집중시켰다. 새카맣게 탄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이는 사그라든 불길 사이로 나를 향해 뛰었다. 나는 앞에 선 그를 들어안아 구급차가 보이는 곳으로 고도를 낮췄다. 아이는 밤하늘을 나는 기분이 좋았는지 언제 불길에 휩싸였냐는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팔에 빗물이 닿을 때마다 쓰라렸지만 아이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싶진 않았다.

 바닥에 사뿐히 발을 올려놓자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환호에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렸다.


 몰려오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눈을 붙이고 싶었다. 집으로 향하려 무릎을 굽힌 순간 새치가 듬성듬성 자란 남자가 달려왔다.

 “당신은 이 마을의 하나뿐인 마법사잖아요. 홀라당 탄 이 집을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내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평생을 일해 번 돈으로 산 집입니다. 아직 빚도 다 갚지 못 했다구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둘씩 눈치를 보다 다른 주민들도 자기 집을 되돌려달라 요구했다. 나는 그들의 동정을 바라는 눈망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누군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그는 집을 되돌려줄 때까지 놓지 않을 거라며 옷자락을 쥔 주먹을 더 세게 쥐었다. 나는 어서 이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이 투명해지는 주문을 외우려 검지손가락을 폈다. 그러나 불을 진압하느라 빠진 체력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 너머로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꽉 잡힌 옷자락 탓에 그와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눈이 서서히 감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두꺼운 밧줄이 손목에 칭칭 감겨있었다. 고개를 드니 새치가 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밧줄을 풀 힘도, 상처를 치유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슬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서 자야 출근을 하냐느니,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든지 입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쓸 수 없습니다. 고로 당신들의 집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탄색을 내뱉었다. 어떤 사람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남자가 너가 무슨 마법사냐며 고함을 질렀다. 그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힘이 다 빠져버린 손이 덜덜 떨렸다. 이대로 잠에 들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아저씨, 하고 나를 부르는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뽀얀 얼굴의 아이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꽁꽁 묶인 내 몸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아이의 멍한 표정을 보자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저를 구해준 아저씨가 이렇게 묶여있는 거에요?”

 사람들의 얼굴이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새치가 난 남자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미안하다는 말을 뱉었다. 밧줄이 풀리자 화상을 입어 다 까진 피부가 드러났다. 나는 이를 악 물고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아이가 내게 와락 안겼다. 나는 아이의 뒤통수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비가 천천히 그치고 있었다. 먹구름이 게지자 새벽을 알리는 희미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는 늘 너희를 지킬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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