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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동상과 남자 그리고 오리

 여자는 동상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한참을 빤히 동상을 바라보더니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 안에서 우산 세 개를 꺼내더니 비에 젖고 있는 동상에 하나씩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묵념을 하더니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갑작스레 여자와 눈이 마주쳐 힐긋 고개를 틀었다. 덕분에 손에 든 커피가 셔츠에 튀었다. 천천히 까맣게 물들어가는 셔츠를 보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아까워라, 하고 책상에 묻은 커피를 컵에 담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밖을 보자 분명 동상 앞에 서있던 여자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여자가 보이지 않자 그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고 중얼거렸다.

 “이 과장, 또 딴 생각 한 겐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조금만 더 열심히 해주면 안 되겠나?”

 김 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김 부장의 눈빛을 보고 네, 성의 없이 대답한 뒤 자리에 앉았다.


 흐릿한 날씨 탓에 그의 눈꺼풀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갑자기 휴대전화 액정에 떠오른 메모 탓이었다. ‘생활비 보내주는 날’ 그는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으로 올라오니 초록색 바닥 위에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는 찰박거리며 재떨이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담배를 꺼내자 옆에서 먼저 올라와 담배를 피우던 박 차장이 담배 갑을 가리키며 물었다.

 “세상에, 담배에 딸 사진을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야 딸 얼굴을 하루에 스무 번은 보잖나.”

 박 차장이 짧게 탄식을 뱉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인 뒤 말 없이 옥상을 내려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엄지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송금이 됐다는 알림이 뜨자 곧장 아내와의 메시지 창을 들어갔다. ‘돈 보냈어. 우희는 좀 어때?’ 매달 그가 보낸 똑같은 메시지 옆에는 노란 1이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떠 있었다. 그는 ‘한국은 언제 돌아와?’라고 쳤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있지 않은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지움 버튼을 연신 눌렀다. 어느덧 담배 필터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꽁초를 버리고 다시 터덜터덜 옥상을 내려갔다.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자 곡소리가 절로 났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다 다시 힐끗 동상이 있는 곳을 보았다.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우산이 마치 신호등을 연상시켰다. 그때, 오리들이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회사 사람들은 짜증을 내며 창문을 쾅 닫았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바깥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오리들이 물 밖으로 나와 동상 앞으로 향해 뒤뚱뒤뚱 걸었다. 꽥꽥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자 호수를 비추던 가로등이 꺼지더니 동상 머리 위에 얹어진 우산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졌던 여자가 동상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머리까지 홀딱 젖은 그녀를 보자 곧장 우산을 챙기고 회사 건물을 내려갔다.


 그는 우산을 쓰지도 않고 그녀를 향해 달렸다. 동상 앞에 도달하자 그를 반긴 건 꽥꽥 거리는 오리들이었다. 그런데 문득 호수를 보니 친구들과 달리 뭍을 나오지 않고 홀로 헤엄을 치는 새끼오리가 보였다. 새끼오리는 헤엄을 치다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빠져 들어갈 것 같은 맑은 눈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여자가 동상 뒤에 숨어서 그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제서 그는 우산을 펼쳐 여자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지만 잔뜩 젖은 머리칼 탓에 그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번엔 엄마는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이번엔 그녀가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켰다. 그는 그녀의 손을 보고 짧게 신음을 뱉었다.

 그의 눈꺼풀에 빗방울이 맺혀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소매로 눈을 비비자 그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여자는 그에게 무언가를 건네려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녀의 주먹 아래에 손을 얹었다. 다시 손을 피니 손바닥엔 우희의 증명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놀라 주머니를 뒤져 담배 갑을 꺼내보았다. 갑에 끼워둔 우희의 사진이 잔뜩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다시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스무 번씩 못 만나도 좋으니까 담배는 꼭 끊어요. 아빠.”

 빛나던 우산들이 희미해지면서 여자도 같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울음을 멈춘 오리떼였다. 문득, 그의 눈에 작은 새끼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오리는 짧게 꽥, 하고 울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새끼오리를 향해 말했다.

 “그래, 꼭 끊으마.”

 

 며칠 뒤, 미국에서 우편 한 장이 왔다. 그는 그 봉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짐작이 갔지만 천천히 봉투를 뜯어보았다. 안에 든 종이에는 사망 신고서라는 글씨와 함께 아내와 우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둘은 비가 오는 날, 신호를 보지 못하고 달려든 차에 치었다고 했다. 그는 우편을 읽자마자 그녀를 만난 호수로 달렸다. 작은 새끼오리가 꽥, 하고 그를 반겼다. 그는 우희가 좋아했던 과자를 뜯어 새끼오리에게 건네주었다. 역시 오리도 우희처럼 과자를 좋아하는 듯 순식간에 손에 쥔 과자를 헤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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