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Sep 20. 2023

봄, 여름 그리고 별

비로소 너를 만날 수 있어.



  유하는 물을 머금고 손바닥 위에 잔뜩 놓인 알약을 털어 넣었다. 유하는 혓바닥에 녹은 약이 묻어 쌉쌀한 맛을 느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곧장 초콜릿 하나를 먹는 걸로 다시 얼굴을 펼 수 있었다. 약기운이 오르면 유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로 향했다. 언제 잠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그녀를 불안에 떨게 했지만 약을 끊을 순 없었다. 약을 타러 병원에 갈 때마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언제 잠들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언제 눈을 뜰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 그래서인지 약으로 잠에 들어도 아침은 개운치 못했다. 유하는 평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으면 금세 날이 밝아있었다. 약의 여파로 두통에 머리를 쥔 채 일어나야 했지만 일단 오늘은 살자라는 선택에 책임지자 다짐하며 진통제 두 알을 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내 아들이 준 거라니까!”

  하춘은 복지관에서 예의주시하는 인물이었다. 치매 초기로 기억을 제대로 못 하거나 대뜸 소리를 지르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가 저질러놓은 일을 감당하는 건 전부 유하의 일이었다.

  “어르신, 그래도 담배는 복지관 반입 금지예요. 어서 돌려주세요.”

  “이 썅년이, 하나뿐인 아들이 준 것도 이렇게 뺏으려고 하냐? ”

  유하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이미 아들과 5년째 연락이 두절되었고, 몰래 복지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전적이 있었기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치매 노인에게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유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반입 승인 스티커만 붙이고 돌려드릴 테니 일단 저 주세요.”

  유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손을 내밀자 그제서 하춘은 입에 문 담배를 그녀 손바닥 위로 얹어두었다.

  “이거 말고 더 있으실 텐데요.”

  ”시퍼렇게 어린년이 쯪쯪…“

  하춘이 혀를 끌끌 차며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 한 갑을 꺼냈다.

  “더 숨겨놓으신 거 없죠? ”

  “없어 이 년아. 네가 다 가져갔잖아.”

  담배를 돌려줄 듯 말했지만 복지관 내 금연 룰과 하춘의 담당의가 더 이상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진단 탓에 담배를 돌려줄 수 없었다. 유하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무심하게 담배를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었다.

  “유하 선생님, 오늘 교양 음악회 도우미 봉사자분들 두 시까지 오라고 전달했으니 인솔 잘 부탁드려요.”

  ”네. “

  유하가 자리에 앉자마자 채진영 팀장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잔뜩 젖힐 수 있는 의자에 겉옷을 걸쳐놓고 머리를 기대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 활동은 네 시까지, 두 시간 진행이니까 보고서는 퇴근 전까지 작성 부탁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결재 올려야 하거든요.”

  “네.”

  유하가 고개를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 삼십 분. 슬슬 봉사자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유하는 서둘러 활동 계획지와 조편성표를 세 부 뽑았다. 인쇄기에서 위잉, 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저 가볼게요.”

  “어, 그래. 수고하고. 아, 맞다. 회원분들이랑 봉사자분들이 말하는 피드백 꼭 기록하고. 그래야 보고서 한 줄이라도 더 쓰지. “

  “네.”


  1층 강당으로 내려가니 이미 도착해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봉사자가 있었다. 유하는 명단을 띄워놓은 태블릿 PC 화면을 켜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봉사 오신 분 맞으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

  “성월입니다. 방. 성. 월.”

  “아…… 네, vms ID 이거 맞으시죠? ”

  ”네. “

  “그럼 여기 싸인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강당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유하는 구석에 뒹구는 접이식 의자를 몇 개 들고 와 성월의 앞에 펼쳤다. 손수건으로 의자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훌훌 털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여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사람들이 다 안 와서요…”

  ”네, 제가 일찍 오기도 했으니까요. “

  그는 유하가 생각한 것보다 묵묵했다. 특히 가만히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저 눈빛은 누구든 공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하는 일부로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처음이시죠? ”

  “네. 여기는 처음입니다. “

  성월은 강당 옆에 걸린 직원 명단과 센터 안에 계신 노인들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같이 오시는 분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오신 분들이니 아마 많이 도와주실 거예요.”

  “아…… 다행이네요. “

  더 이상 이어갈 대화가 없어 어색한 정적이 가라앉을 즈음, 봉사자 한 명이 강당에 도착했다. 여전히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로 시선을 한 번에 집중시켰다.

  “혹시 늦었을까요? ”

  “아니에요. 오히려 10분 일찍 도착하셨어요. 아직 한 분밖에 안 오셨는데 두 분 인사라도 나누고 계세요. 여기는 이번에 처음 온 성월 선생님이라고 해요. 저는 잠시 올라가서 정리 좀 마저 하고 올게요.”

  가장 무안한 순간이었다. 유하는 정각에 다시 내려온다 다짐하고는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성월 선생님? 이름 정말 예쁘시다. 무슨 뜻인지 여쭈어보아도 되나요? ”

  “아, 그냥 떨어지는 달이란 뜻입니다.”

  “아아, 예쁜 이름이네요. 저는 윤영이라고 해요. “

  “그렇군요.:”

  성월이 다시 센터 명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윤영은 괜히 무안함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하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유하가 급히 하춘의 방 문을 열었지만 이미 그는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바닥을 보니 빠진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떨어져 있었다. 유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몸만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듣고 올라온 최 팀장과 김 주임은 하춘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다급히 의사를 불렀다.

  하춘의 비명소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머리를 쥐어뜯는 건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가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머리 위로 새하얀 머리칼이 흩날렸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였는데 이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어르신 무슨 일이에요? ”

  의사가 오자 유하, 최 팀장, 김 주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들… 아들……! 내 아들 유성이…… 유성이 어딨어? ”

  다시 하춘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그의 무게를 지탱했다.

  “아드님 곧 오실 거예요. 그러니 일단 진정하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 보실까요? ”

  “안 돼. 분명 오기로 했어. 약속했다고.”

  하춘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는 의사의 팔을 내팽개치며 주저앉은 바닥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유하와 하춘의 눈이 마주쳤다. 하춘은 벌떡 일어나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유하의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이 씨발련이, 왜 내 눈앞에 보이고 지랄이야? ”

  유하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손은 유하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노인의 힘이라곤 믿을 수 없을 괴력으로 말리러 다가오는 의사를 밀쳐냈고, 아무리 유하가 발버둥을 쳐도 꽉 쥔 손이 놓아지지 않았다. 최 팀장과 김 주임은 입을 떡 벌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 그의 표적은 유하지만 언제 본인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둘은 차마 발버둥 치는 유하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유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당장 없어 보였다. 결국 이판사판으로 그의 손을 꽉 눌렀다.

  “당신 아들은 도망갔어. 오 년 전에! 당신을 여기에 버려두고. 그러니 제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

  “……”

  하춘이 힘을 다 했는지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이 서서히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분명 며칠 전에도 나랑 있었어. 나랑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고.”

  하춘의 손에서 풀려나간 유하가 옷맵시를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르신 최근 외출 기록은 없습니다.”

  유하가 옷 앞섶을 탈탈 털면서 말했다. 그제야 하춘이 몸을 뉘었다. 팔과 다리가 발작을 일으키는 듯 엇박으로 떨려댔다. 그러나 유하는 인상을 찌푸리곤 다시 옷과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했다.

  “봉사자분들 다 도착하셨을 시간입니다. 먼저 내려가볼게요.”

  

  강당 안에 무겁게 내려앉은 정적을 깬 건 성월의 한숨소리였다. 강당엔 성월과 윤영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옷맵시를 말끔하게 정리한 유하가 빈 강당을 보자마자 참가자 명단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두 분밖에 안 오신 건가요? ”

  ”네, 선생님. 일단 저희끼리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

  ”그럼 5분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시면 그대로 진행할게요. “

  유하는 문과 가까운 맨 뒤 오른쪽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녀를 따라 윤영도 스마트폰을 꺼내 시답잖은 글들을 읽었다. 그러나 성월은 여전히 벽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최 팀장과 하춘이 승합차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당분간은 이곳 말고 큰 병원에 가 있을 모양이었다. 유하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당분간 예의주시 대상이었던 남자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인지, 아님 그저 반자동적으로 나온 것인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어느덧 약속했던 5분이 지났다. 윤영도 시간을 확인하고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유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슬슬 시작할게요.”

  유하가 입을 열고서야 성월이 고개를 돌렸다. 윤영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유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우리가 맡을 곳은 다섯 곳인데 지금 두 분이 안 오셔서 일단 각자 맡은 곳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잔여 병실을 다 같이 정리하려고 해요. 윤영 선생님은 자주 오셨으니 굳이 설명 안 드려도 될 것 같고 성월 선생님만 제가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아 혹시 비슷한 일을 하신 적 있으신가요? “

  “아… 네, 뭐…… 그냥 바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유하는 둘에게 위생 장갑과 봉투를 건네고 배정된 병실을 알려주었다.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

  각자 맡은 곳을 향해 흩어지는데 성월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게 느껴졌다. 그의 뒷모습에 유하는 괜히 신경이 쓰였지만 그에게 무언가 다가갈 수 없는 투명한 벽 같은 게 느껴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정리해야 하는 방에 들어오자 유하가 구역질을 했다. 약의 부작용이 또 일어난 듯했다. 유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속을 진정시켰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유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병실 창문을 먼저 열었다. 적당하게 시원한 가을바람이 얼굴에 닿으니 숨이 골라졌다. 그리고 안도할 틈조차 없이 일을 시작했다. 서둘러 마쳐야 오늘 일정을 마칠 수 있었기에 일을 게을리할 순 없었으니까.


  처음 이 요양병원으로 배정받았을 때, 유하는 스마트폰을 집어던졌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있을뿐더러, 대부분 치매에 걸렸거나 자식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다수였고 늘 링거를 꽂고 골골거리다 언제 숨을 다 할지 알 수 없었다. 유하가 발령받은 첫 한 달 동안만 해도 요양병원 안에서 숨을 거둔 노인만 넷이었다. 옆에서 밥을 주고, 건강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직원들도 하나둘씩 사표를 건넸고 남은 인원이라곤 유하와 최 팀장, 김 주임, 정 과장, 의사 둘, 간호사 넷, 경비원 둘이 전부였다. 간호사 둘도 가슴속에 사표를 고이 접어두고 있는 채였다. 한 번은 그런 생각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 이곳 노인들이 모두 사라져 이 병원도 아예 문을 닫게 되겠지. 그러나 숨을 다 하거나 큰 대학 병원에 옮겨지는 노인 수만큼 이곳에 들어오는 노인의 수도 줄지 않았다. 예상외로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에 숨을 거두었던 노인이 쓰던 방을 빠르게 정리해야 새 노인을 받을 수 있었다. 가끔 밤마다 귀신이 보인다거나 병실 기운이 영 좋지 않다며 병실을 바꿔달라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줘야 하는 건 유하의 몫이었다.

  최 팀장이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하는 건지, 정말 출장을 자주 갈 일이 생긴 건지 신뢰할 수 없었지만 일 손이 하나 줄면서 병원 일은 점점 고강도가 되었다. 간호사들은 응급 상황이 아니면 카운터 앞에 앉아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결국 유하는 봉사활동 봉사자를 받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제안서는 쉽게 통과할 수 있었으나 외진 지리와 인터넷 공포 커뮤니티에서도 이름을 떨친 요양병원이기에 봉사 가자 쉽게 구해지진 않았다. 모든 봉사활동 사이트와 대외활동 사이트, 소모임 공간 등 모든 곳에 모집 글을 올렸지만 오는 메일이라곤 한 통도 없었다. 그러다 마침 무언가가 유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유하는 모집 글을 공포체험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 결과 모집 글을 올린 지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신청 마감이 되었다.

  첫 봉사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노쇼도 없었고, 참여자 전부 공포 마니아였기 때문에 당장 어제 죽은 사람이 쓰던 병실이라고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꼈다. 유하는 그들에게 방구석구석을 청소시키고, 다음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가구들을 정돈시켰다.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만족도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활동을 하는 시간이 낮 시간일뿐더러 그들이 생각한 건 음산한 분위기에, 찢어진 벽지, 피가 묻은 바닥 따위였기에 도무지 성에 찰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두 번째 봉사 일정에 사람은 기껏해야 두 세명 남짓이었다. 두 번째 일정도 공포 커뮤니티에 모집 공고를 올렸으나 익명의 누군가가 공포 요소는 하나도 없고 그냥 청소만 시킨다고 말하는 글을 쓴 탓에 사람들의 참여율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두 세명이라도 온 것에 감사하며 꾸준히 커뮤니티에 모집 글을 올렸다.

  작년 겨울, 잔뜩 쌓인 눈 때문에 병원에 들어오기도 벅찬 날이었다. 한 주 동안 숨을 거둬 비게 된 병실이 세 곳이나 생겨 봉사자를 불러야만 했다. 당연히 참여율은 첫날보다 저조했다. 처음엔 세 명이 지원해서 곧바로 마감 공고를 올렸지만 두 명이 취소를 했고 다른 한 명은 당일 노쇼를 하는 바람에 급하게 일정을 미루고 모집 글을 올렸다. 다행히 두 명이 구해져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고 평소처럼 빈 병실 청소를 위해 창고에서 청소 도구들을 건네주었다.

  한창 청소를 하던 유하가 마지막으로 의자를 정돈하려던 때였다. 복도 끝에 위치한 310호 병실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유하는 하던 걸 멈추고 곧장 소리가 난 병실로 달려갔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310호를 담당한 봉사자가 몸을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괜찮으세요? “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몸을 부축했지만 유하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제 말 들리세요? ”

  유하가 그녀의 어깨를 여러 번 두드리고 나서야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저…… 여기가 3층 아닌가요……? ”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유하는 그녀를 어깨동무로 일으켜 세우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의 떨림은 멈출 수 있었으나 여전히 그녀의 동공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아니…… 여기 3층 맞죠……? ”

  “네, 3층 310호입니다. “

  “근데 왜 사람들이 걸어 다녀요? ”

  “무슨 말씀이세요? ”

  “저……저기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잖아요.”

  그녀가 손가락이 향한 곳은 창문이었다. 유하의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여전히 바깥에 무언가가 보이는 듯 고개를 절대 돌리지 않으려 했다.

  “밖엔 아무도 없어요. 안심하세요.”

  정말로 유하의 눈엔 창문 밖은 낙엽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만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녀 말대로 바깥에 숨을 거둔 노인들의 영혼이 떠돌아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은 저버릴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귀신을 봤다던 여자는 본인이 겪은 일을 전부 커뮤니티에 올렸고 다시 사람들의 관심은 불거졌다. 공포 마니아들은 귀신을 보기 위해 봉사에 올 때마다 310호를 찾아댔고 본인이 배정받은 병실을 청소하기보단 연신 310호를 찾아 기웃거려 예정 시간보다 더 지연되곤 했다. 결국 유하는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리는 걸 멈추었고 회원 수가 적은 봉사 카페에만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영이란 여자가 모집 글까지 악착같이 찾아 매주 봉사에 찾아왔다. 처음엔 그녀도 블랙리스트에 넣으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 내 사건이 잊혀 봉사에 꾸준히 오는 사람이 윤영밖에 없어졌다. 가끔 한 두 명씩 더 찾아오곤 했으나 꼭 윤영이 봉사자에 껴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310호 귀신을 보지 못했고 이제는 귀신을 보고 싶다는 바람보단 때가 될 때마다 병실을 정리하러 오는 게 습관이 되어 요양병원을 찾아왔다.

  “윤영 선생님, 만약 귀신을 본다면 봉사…… 그만 올 건가요? ”

  “글쎄요. 그건 그때 제 몸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


  복도로 나오니 정리를 모두 마친 윤영이 310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윤영 선생님!, 다 하셨으면 같이 306호로 갈까요? ”

  “아, 네! 근데 성월 선생님은요? ”

  “410호에 계실 거예요. 그럼 먼저 306호에 가 계실래요? 제가 성월 선생님한테 갔다가 아직 다 안 끝났으면 좀 도와드렸다가 내려올게요. “

  중앙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오르면 곧장 당구대와 티브이가 보였다. 그곳엔 어르신들이 당구를 치거나,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을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하는 그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가 성월이 있을 410호로 향했다. 410호는 복도 끝에 위치해 휴게실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당구공끼리 부딪히는 소리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이곳에서도 충분히 410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정리를 하는 중이라면 가구 끄는 소리 정도는 들릴 법도 한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하는 괜히 발걸음을 재촉해 410호로 갔다. 앞에 도착하니 410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고요했다. 유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손잡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괜스레 그녀의 심장이 떨리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문을 확 열여 젖혔다. 안에는 말끔하게 정리를 모두 마친 성월이 의자에 앉아 낙엽이 달랑거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 유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어머, 벌써 끝내셨네요? 자주 나오신 분들도 이렇게 빨리는 못 하실 텐데……”

  “아, 그냥…… 몸이 따르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멋지시네요. 그럼 아직 남은 병실이 있으니 같이 내려가실까요? ”

  “조금만 더 여기 앉아있을 수 있을까요? 금방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유하의 생각보다 빨리 청소를 마쳤기에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유하야, 너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우리 입장도 생각해 줘.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어. “

  유하의 교복 치맛단이 빨갛게 부어오른 무릎을 스쳤다. 유하는 연신 기어오르는 고통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가 참 부끄럽구나.”

  유하의 아버지가 신문을 보다가 무심하게 한 마디 건넸다.

  “내버려 둬. 언젠가 지 알아서 정신 차리겠지.”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말이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니, 내가 전교에서 1등 하라고 했어? 적어도 반에서만이라도 1등 하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그러려고 학원도 보내줘, 과외도 시켜줘, 독서실도 끊어줘, 책도 사줘. 그럼 이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

  ”엄마! 전교 1등이 우리 반인데 어떻게 내가 1등을 해. “

  “이년이, 넌 네 그 썩어빠진 생각이 문제야. ”

  “그만해. 유하, 너 독서실 갈 시간 아니냐. 어서 가라. 너무 늦을 것 같으면 미리 문자 하고.”

  아버지의 개입에 유하는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분이 아직 덜 풀린 듯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하의 주변엔 한쪽 눈이 멀어 눈동자가 흐릿하게 보이는 고양이뿐이었다. 늘 집에서 독서실로 향할 때, 고양이는 사뿐사뿐 유하의 뒤를 따랐다.

  “미안해. 오늘은 내가 용돈을 못 받아서 먹을 걸 못 사줘. ”

  고양이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유하의 턱 밑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신 나중에 용돈 받으면 더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러니…… 며칠만 꾹 참아주라.”

  이제 더 이상 고양이가 따라오지 않길 바랐지만 그는 유하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냐옹, 소리는 유하의 발걸음을 점점 느려지게 만들었다.

  “고마워. 나 위로해 주려고 따라오는 거였구나.”

  유하는 고양이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너도 참 안쓰럽네. 갈 집도 없고, 친구도 없고…….”

  “냐-옹”

  

  유하는 독서실에 앉아있는 내내 고양이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집에서 애꾸 고양이를 키울 수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 수백만 가지의 상황을 떠올리며 가장 적합한 상황을 선별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유하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아버지가 앞까지 데리러 와주겠다는 문자였다. 유하는 책상에 올려놓은 책을 모두 책가방에 집어넣고 독서실 밖을 나섰다.

  “이 씨발세끼는 뭐야? 빨리 안 꺼져? ”

  “캬아아-! ”

  “어디 좆같이 생긴 게 까불어”

  “캬아- ……”

  “어? 유하 왔구나. 늦었다. 어서 가자.”

  아버지의 멘트는 분명 상냥한 멘트였지만 얼굴과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엇보다 유하를 향해 내민 손에는 새빨간 피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유하는 차마 그 손을 향해 어떤 신체 일부도 뻗어낼 수 없었다. 그의 발 밑에는 머리가 무너져 내린 고양이가 피를 잔뜩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

  “어서 안 갈 거야? 남들 다 잘 시간이다. “

  “미안…… 나 혼자 가면 안 돼? ”

  “…… 뭐라고? ”

  “나 혼자 가고 싶어서 그래.”

  “이 씨발, 방금은 좆같이 생긴 고양이가 지랄이더니 이번엔 딸이 지랄이네. 기껏 여기까지 왔건만 도대체 뭐 하자는 짓이지? ”

  그의 허탈한 웃음에 유하는 덜컥, 겁이 났다.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한다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결국 유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성월이 내려왔다. 꽤 오랜 시간 410호에 머물러 있었지만 처음 강당에서 본 그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네요. 이제 대충 창문만 닦고 가구만 정라 하면 돼요.”

  “두 분, 고생 많이 하셨으니 쉬고 싶으시면 쉬셔도 됩니다. 나머진 제가 알아서 다 할게요.”

  “아아, 아니에요. 저희가 할 일인데요.”

  “저만 너무 논 것 같아서요.”

  “에이, 아닙니다. 같이 해서 빨리 끝내고 같이 쉬어요.”

  이상했다. 분명 버벅 거리던 말투는 또박또박 잘 내뱉어졌고, 텅 비어있던 눈동자는 금세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어서 끝내고 빨리 집에 갑시다.”


  모든 병실 정리가 끝나고 셋은 강당에 모여 활동 일지를 쓰고 있었다.

  “여기는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나요? ”

  아무도 예상치 못 한 상황에서 성월이 물었다. 유하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할까 한참 동안 고민했다. 몇 초의 볼멘소리 끝에 결국 입술에 침을 묻혔다.

  “정부는 이런 시설이 있는 것도 모를 거예요. 여기는 보호자가 환자를 맡기며 준 돈으로 간신히 운영하는 곳이니까요.”

  “그럼에도 봉사활동은 꾸준히 하나 보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성월의 무례한 질문에 유하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말 하나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무례한 말들을 툭툭 내뱉는다는 사실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드셨겠어요. 선생님도, 여기 계신 어르신들도, 보호자분들도.”

  “그렇죠. 제가 모두의 사연을 알 순 없지만 모두 힘든 시간 속에서 살고 있겠죠.”

  “힘든 시간 속이라도 후회 없다면 그 시간은 보람찬 시간이라 불릴까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이 상황에서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다시 유하의 두통이 시작됐다. 그녀는 깨질 듯한 고통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고 마저 비고란에 사인을 했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기 담배는 어디서 태울까요? ”

  “건물 안에는 따로 흡연실이 없고 밖으로 나가시면 주차장 옆에 바로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원래는 끊었는데 아까 청소를 하다 쓰레기통에서 새 담배를 주워서 그런지 무언가 피우고 싶어 졌거든요.”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보였다. 아까 하춘에게서 빼앗은 그 담배였다. 원래 하춘에게도 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무례했던 성월이 담배를 가져간다는 것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거, 저희 병원 어르신 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쭤보고 올게요.”

  “아…… 정말요? 이 담배는 저희 아버지 말고 피우시는 분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우연이네요.”

  “아, 네. 그냥 가져가세요. 어차피 버리신 거니까.”

  윤영과 성월이 사라지자 다시 병원은 적적함을 불러왔다. 윤영은 곧장 음산한 나무들이 주변을 가리는 내리막길로 향했고, 성월은 주차장으로 가 담배를 피웠다.


  어린 유하는 그날 밤 이후 한 주 동안 학교와 집을 가지 않았다. 마침 산 하나를 넘으면 나오는 동네 병원에 빈 병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사람도 잘 찾지 않아 충분히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 병원에 온 며칠은 버틸 만했다. 사람은 없었지만 병원 자체가 넓어 유하를 찾기가 어려웠고, 누군가를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한 노인과 마주하게 된 이후, 그녀의 생각은 달라졌다. 새벽에 배가 고파 컵라면을 훔치러 탕비실로 향하던 중,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맴돌았다.

  “ㅂ… 벼… 별이 떠… 떨… 떨어진다! “

  너무 놀란 유하는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ㅂ… 벼… 별이다……! ”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보… 보, 봄에서…… 여, 여름이 될 때…… 비로소 으… 우, 우리는…… ”

  소리가 멈추었다. 그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던 찰나,

  “여깄 네 별! “


  하춘이 죽었다.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고 온갖 정신적 치료를 시도했으나 끝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도 처음이었다. 유하의 병원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숨을 거둔 건. 대학병원은 유하에게 팩스를 몇 장 보냈다. 하춘의 사망 신고서, 장례 일자, 진단서, 사진 등등이었다. 유하는 대수롭지 않게 팩스를 넘겼다.

  “서유하 주임님, 그래도 보고서는 작성해야 하니 병원에서 보낸 사진 몇 장만 첨부하자. “

  “네. 팀장님. “

  대충 파일에 구겨 넣었던 종이를 꺼내 한 장씩 훑어보았다. 진단서 다음 그가 치료를 받던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그저 평범했다. 글자 퀴즈나, 설문조사, 블록놀이 등. 그냥 이 중에서 몇 개만 추려 넣을까 하다 다음 장에서 유하의 손이 멈추어버렸다. 하춘이 쓰던 병실 벽에 피로 쓴 듯한 글씨가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봄에서 여름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별과 가까워진다.‘

  유하는 다시 종이를 파일 안에 넣었다.

  ”왜 그래요? 주임님? 땀을 왜 그렇게 흘려? “

  ”아, 아, 아닙니다. 그냥 나중에 하려고요. 어차피 시간 여유 있잖아요. “

  유하가 얼버부리며 넘어가자 최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유하의 약 종류가 늘어났다. 유하는 약사에게 왜 이렇게 약이 많아졌냐고 물었다.

  “저는 그냥 처방받은 대로 드린 거예요. 보자…… 수면제랑 조현병 약은 원래 쭉 있었고, 음…… 아! 이게 하나 추가됐네요.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시잖아요. 그 약입니다. 약이 많아서 좀 힘드실 수 있겠지만 며칠만 잘 버텨주세요. “

  유하는 밤마다 하춘의 목소리를 들었다. 별이라는 똑같은 말들을 연신 반복했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대로 약을 끊고 영원히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차라리 그게 유하를 더 평화롭게 할 것 같았으니까. 집에 돌아오고, 유하는 약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것을 모두 삼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했지만 완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잔혹하다. 모든 것이.


  다음 봉사 일정에도 윤영과 성월이 있었다. 유하는 참가자 목록을 보고 괜히 망설여졌지만, 일손이 부족한 관계로 일단 받아두기로 했다. 참가자는 총 세 명이었다. 윤영과 성월 그리고 처음 봉사에 참여하는 한 사람. 모두 모였을 강당에 내려오자마자 유하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성월의 얼굴은 다시 잿빛이 가득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괜히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노쇼 없이 세 분이 모두 모여 각자 하나씩 병실을 맡아주시면 돼요.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 같은데 경험이 있는 두 분이 여기 처음 오신 분 잘 알려주세요.”

  간단하게 출석 체크를 하고 병실이 있는 층으로 흩어졌다. 유하는 성월의 옆 병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난번처럼 성월이 들어간 병실 안은 의자 끄는 소리나 창문 소리 등 소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유하는 괜히 성월의 병실을 들여다보며 그가 무얼 하는지 지켜보았다.

  “되게 조용히 일하시네요.”

  “그러게요.”

  “그땐 잘 들어가셨나요? ”

  “네, 그렇죠. 그런데 그날에 돌아가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

  “아,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

  “별이 하나 떨어지더라고요. “

  “그랬나요? ”

  “네, 마치 유성처럼.”

  다시 그가 고개를 돌리고 마저 하던 일에 열중했다. 유하는 말을 걸 틈을 찾지 못해 본인의 병실로 다시 돌아갔다. 별이 떨어졌다니, 그걸로 어떻게 아는 걸까.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유하의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유하는 봉사 시간을 입력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거의 반 연차가 밀려 계산해야 할 시간이 많았지만 오늘 안에 끝내야만 팀장이 지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밀린 시간을 입력하고, 이제 저번 봉사부터 오늘까지 시간만 남았다. 유하는 팔을 귀에 붙여 기지개를 켜고 봉사 플랫폼 아이디가 적힌 리스트를 확인했다. 성월의 이름 옆에 적힌 아이디. 대부분 본인 이름이나 별명을 아이디로 썼기 때문에 금방 본인 인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아이디는 실명과 달랐다. ‘yousung0424’ 유하는 성월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다시 대조했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아이디는 찾을 수 없었다.

  “팀장님, 이거 아이디가 실명이랑 다를 수 있나요? ”

  “아뇨? 무조건 실명으로 해야 하는데? ”

  “아…… 실명이랑 달라서요.”

  “누구 건데요? ”

  “저번주에도 왔던 그 되게 음침하시던 분이요. 본명이 성월인데 정보에선 모두 이름이 유성이라 적혀 있어서요.”

  “잠깐만 나와봐요. 내가 확인해 볼게요. “

  최 팀장이 유하의 자리에 앉아 리스트와 명단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이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사람 이름이 성월이 아닌데? ”

  “네? ”

  “조회해보니까 성월이란 사람은 없어. 그런데 하나 걸리는 게 전에 하춘 어르신을 여기 데려온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 성함이 유성이었어. 방유성.”

  “그게… 왜요? ”

  “그냥, 유하 씨가 준 명단이랑 그 사람 정보랑 일치해서.”

  문득, 유하는 하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유하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연신 중얼거리던 그 말.

  ‘봄에서 여름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별을 만날 수 있다.’


  하춘이 기다리던 건 어쩌면 정말 가벼웠던 만남이었을지도 몰랐다. 언제 잠이 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잠에 들면 언제 눈을 뜰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유하는 그를 납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반대로 성월의 아니, 유성의 뜻도 헤아릴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캄캄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껴안는 방법을 잊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저 이미 품에 무언가가 담겨있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유하는 하춘과 유성의 말을 떠올리며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춘은 별을 만났을지 몰라도 평생 유성을 못 만나겠구나. ‘


  


  

  

  

  

  

  


  

  

매거진의 이전글 경주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