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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19. 2024

네가 살던 별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

  저 별 중 하나가 너라고 생각해. 반짝반짝 빛나진 않더라도 저 어딘가 너의 모습을 감추어 아래를 바라보는 수많은 별 중 하나. 너는 빛 한 줄기 존재하지 않는 여기보단 거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호중은 어릴 적부터 아토피를 심하게 앓아왔다. 한 번은 피부과를 갈 법도 했지만 그는 멋쩍게 웃어 넘기기만 했다. 그의 쓸쓸한 웃음 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호중을 피부과로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을.

  호중은 1104호, 우리 옆집에 살고 있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구식 아파트였기에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면 옆집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조차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중과 호중의 엄마를 두고 어디론가 자주 사라지곤 했다. 그가 이 아파트에 보이는 것도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남짓이었다. 그 귀한 호중의 아버지가 보이는 날엔 11층 주민들은 바짝 긴장을 했다.

  “이 씨발련아, 내가 언제 안 준다고 했어? 못 주는 거라고 했잖아! ”

  한껏 올라간 남자의 언성 뒤엔 물건 깨지는 소리가 잇따라 들렸다. 이어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 호중이 우는 소리, 남자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30분간 지속됐다. 지옥 같던 30분이 지나면 남자는 1104호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럼 호중의 어머니는 잔뜩 어질러진 집 바닥을 치웠고, 호중은 그런 어머니를 위로해 주었다. 언제나 고요했던 1104호의 유일한 소음이었다.


  호중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겨울엔 붕어빵을, 여름엔 달고나를 파셨다. 가끔 호중은 반 친구들을 데리고 와 붕어빵을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다.

  “호중이 친구들이구나, 우리 호중이가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둬서 참 다행이네. “

  흐느끼던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중도 붕어빵을 우물거리는 친구들을 보며 뿌듯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호중아, 목 좀 그만 긁어. 그러다 아토피 더 심해지고 진물 난다. “

  “헤헤, 나도 안 긁으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

  호중의 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호중은 아량곳 않고 목을 벅벅, 긁어댔다. 그의 검은색 후드티 위로 하얀 가루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녀는 그의 후드를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호중은 밝았다. 언제나 우리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옆집에 사는 내게도 언제 그 남자가 찾아왔냐는 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반 친구들도 호중이를 좋아해 주었다. 매년 회장을 맡았고, 수련회 장기자랑에도 매번 나오는 아이였다. 아마 그가 눈물을 떨어트리는 소리를 들은 건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매일 아침, 식탁 위에는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예전엔 지폐와 함께 쪽지 한 장이 있었는데 매번 똑같은 ‘아빠 오늘 늦게 들어오니 저녁은 사 먹어라.’라는 쪽지였다. 이제는 나도, 아빠도 서로의 부재에 익숙해져 지폐 한 장으로 충분히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도 식탁 위엔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지폐를 지갑 안으로 넣으며 냉장고에 붙은 쿠폰을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오늘은 짜장면 한 그릇을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 매번 용돈 대용으로 매일 밥값을 받으며 생각했었다. 돈을 모아보고 싶다고. 그 뒤로 매번 똑같은 곳에서만 배달을 시켰다. 쿠폰을 차곡차곡 모으고, 무료로 밥을 먹은 날엔 오 천 원을 지갑 안에 꽁꽁 숨겨놓았다. 사실 무언가 사고 싶은 게 있어 돈을 모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폐가 늘어날수록, 아빠의 부재가 편안해질수록 돈을 모아 이 집을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 해가 지나도 1104호는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전히 식탁 위에는 지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래도 물가는 반영된 듯 오천 원짜리 지폐는 이제 만 원짜리가 되었다. 덕분에 돈을 모으기 더 쉬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호중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와 호중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그는 친구들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고, 나는 언제나 그의 주변을 겉돌았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호중은 키가 훌쩍 컸다. 얇던 목소리도 중저음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어깨도 벌어지면서 점점 남자다워졌다.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아토피는 아직 그의 피부에 새겨져 있었다.

  “보라, 학교 끝나고 바로 집 가? ”

  “응, 왜? ”

  “아니, 뭐 없음 같이 가자고.”

  호중이 친구들과 약속이 없을 때면 늘 나와 함께 집으로 갔다. 친구가 별로 없는 나는 그가 약속이 없기만을 기다렸고 호중은 약속이 없을 때면 나를 먼저 찾아주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약속이 없대? ”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호중이 먹고 있던 과자를 내게 들이밀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하자 다시 과자 봉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도 너는 공부 좀 하면 좋은 대학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장도 많이 했고, 이것저것 동아리도 많이 하잖아. “

  “공부는 재미가 없잖아. 다른 것들은 다 재밌는데.”

  “어떻게 사람이 재미만 찾아.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호중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다시 과자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과자는 아토피에 안 좋아. 밀가루 음식이잖아.”

  이번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에 괜스레 민망해 손가락을 쥐락펴락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런 잔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지갑을 꺼내 그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저기 집 앞에 피부과 하나 새로 생겼어. 바로 집 가지 말고 이걸로 피부과 다녀와. ”

  그가 지폐를 보자마자 고개를 휙 돌렸다.

  “됐어. 남이 주는 돈 함부로 받지 말라고 했다.”

  억지로라도 그의 주머니에 지폐를 구겨 넣고 싶었지만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호중을 이기는 거라곤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너 나중에라도 꼭 가야 해. 약속이다.”

  “응 약속할게.”

  호중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새끼손가락과 내 새끼손가락을 꼬며 약속했다.

  “대신 너도 관자놀이에 큰 점 빼야 해.”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지려고 하냐.”

  멋쩍게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크게 박혀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오늘따라 점이 크게 느껴졌다.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11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는데 잠깐만요,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 사이로 여자의 손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와 호중은 깜짝 놀라 그 손을 바라보다 이내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다시 천천히 문이 열리자 여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엄마! “

  손의 주인공은 호중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 아들 학교 끝났나 보네. 어머, 보라도 있구나. 안녕 보라야. “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다정하고, 따듯한 목소리였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헝클어짐 하나 없었다.

  “보라 잘 지냈니? ”

  11층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그녀는 그 침묵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잘 지냈어요.”

  “그래. 아버님은 잘 계시고? ”

  “…… 잘 계셔요.”

  “다행이네.”

  다시 침묵이 일었다. 호중도 가라앉은 침묵 사이에서 입을 앙 다물고 있었다.


  1104호는 조용했다. 호중이 밖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혹시 모를 소음을 듣기 위해 더 바짝 벽에 가까이 붙었다. 그러나 들리는 거라곤 물 끓는 소리와 작게 들리는 티브이 소리가 전부였다. 호중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공부를 할 만한 인물은 확실히 아니었다. 기껏해야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잠을 자는 게 전부였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대화 한 번 없을까. 그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빠가 떠오르자마자 그 생각은 곧장 무너졌다.

  아빠가 들어오기 전, 모아둔 돈을 확인하기 위해 서랍을 열어보았다. 차곡차곡 모아 고무줄로 나열해 둔 오천 원짜리 지폐와 만 원짜리 지폐. 아직 원룸을 구하기도 벅찬 돈이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1104호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랍을 닫고, 1104호가 향한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였지만 확실히 호중의 아버지 목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목소리는 술에 취한 탓에 매번 어눌하게 들렸다. 그 목소리보다 낮고, 또박또박한 발음. 호중의 목소리였다.

  “엄마, 이제 그만 떠나자. 나는 상관없어. 친구들도, 학교도 다 상관없어. 그러니 그 세끼가 엄마 못 찾도록 떠나자.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야.”

  이어서 들린 건, 뺨 맞는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 벽에서 몸을 떨어트렸다가 다시 귀를 대었다.

  “그래도 네 아빠야. 내 남편이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기다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다.”

  “난 엄마가 빨리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

  “정신 차려야 할 건 너야. 이 호로자식아.”

  호중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 성을 못 이겼는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나 나갔다가 올게. 엄마 화 식히고 있어.”

  이내 현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갈까 하다 잠시 텀을 두고 나가기로 다짐했다.


  최근 두 모자가 자주 다툰다는 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호중이 고등학교에 올라가고부터 호중은 자주 이사를 가자고 말했고, 그의 엄마는 늘 반대했다. 이제는 그의 아버지가 집을 찾아오지 않아도 1104호는 소음이 들렸다. 11층 주민들은 이제 비난의 시선을 그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향해 돌렸다.

  어머니란 다 그런 존재인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모순이 느껴졌다. 나는 아빠의 책상 위에 놓인 예전 가족사진을 보았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너무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유성펜으로 얼굴을 벅벅 그은 여자. 호중은 어떤 모순을 느꼈기에 이제 집을 떠나자고 한 것일까. 틈조차 허락하지 않은 유성펜 자국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임을 허락한 건 현관문 도어록 소리였다. 이 사진을 보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분명 아빠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였다. 곧장 사진은 제자리에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호중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여어, 좋은 아침.”

  호중이 밝게 인사하자 반 친구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는 곧장 본인 자리에 앉아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웬일이야. 네가 오자마자 잠을 다 자려하고.”

  “그러게. 어제 잠을 잘 안 오더라. 축구팀이 져서 그런가? ”

  공부를 하다 말고 한 친구가 물었지만 호중은 쾌활하게 웃어넘겼다. 나는 그저 안쓰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호중의 뒤로는 붉은 아토피 자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었다. 그것이 호중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피부과 한 번 보내지 않는 그의 어머니, 와서 집만 잔뜩 어지르고 가는 그의 아버지. 그 사이에 낀 호중은 어떤 잘못도 한 게 없기에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호중은 그날 하루종일 학교에서 잠만 잤다. 점심시간에도,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체육시간에도 호중은 잠만 잤다. 아니, 정확히는 엎드려 있었다. 종례를 마치고 나서야 오래간만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잠만 잔 탓에 퉁퉁 부은 얼굴이 웃기기도 하면서, 차마 가만히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퉁퉁 부은 얼굴이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라, 오늘 약속 있어? “

  “아니, 없어.”

  “그래? 집 같이 가자. ”

  호중이 크게 하품을 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꾹 삼켜냈다.


  오늘은 호중에게 어떤 말도 먼저 건넬 수 없었다. 분명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음을 보이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 만큼은 다른 친구들과 같이 넘어가주긴 싫었다.

  “오늘은 너도 피곤한가 보네. 영 반응이 없다.”

  “그래? 아… 어, 미안해.”

  “어쩔 수 없지. 피곤한 날은 언제나 있는 법이잖아. 난 좋다! 네가 잔소리 안 하는 날도 있고 말이야. “

  그렇게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나, 싶었다. 무어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나 곧 이사 갈 수도 있어. “

  잠깐의 정적 후 호중이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떤 의미로 말한 진 알 것 같았다.

  “언제? ”

  “사실 정확한 건 몰라, 갈지, 안 갈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냥……. 너한텐 어떻게든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어서.”

  “그럼 너무 일찍 말해준 거 아니야? ”

  “그런가? ”

  “나도 이사 가고 싶다.”

  “보라, 너는 어디로 가고 싶은데? ”

  “어디든.”

  난 이 지긋지긋한 아빠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돌려서 말했다. 호중은 엄지를 턱 밑으로 가져다 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이라…… ”

  “너는 가고 싶은 곳 있어? ”

  “음…… 나도 어디든? ”

  날 따라한 듯 말했지만 분명 그도 애써 돌려서 말했을 것이었다.

  “아, 별이 많이 보이는 강원도가 좋겠다. 매일 밤마다 누워서 별이나 보다 자게. “

  “참…… 너 같은 바람이네.”

  호중은 말을 하면서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퀭한 눈동자를 보았다. 공허하고, 쓸쓸한 눈동자. 그는 적어도 그런 눈에 별이라도 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빠가 삼만 원을 쥐어주었다.

  “오늘은 아빠가 출장을 가서 말이야. 좀 걸릴 수 있으니 그동안 이걸로 밥 사 먹어.”

  기간과 돈의 액수만 늘어났을 뿐, 변하는 건 없었다. 나는 모은 쿠폰과 남은 음식을 확인해 보았다. 적어도 사흘은 굳이 뭘 안 사 먹어도 될 정도의 양이었다. 지폐 세 장을 모두 서랍장 안에 집어넣었다. 점점 불어나는 돈은 집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어서 성인이 되면 이 집을 나가 원룸을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해 돈을 번다. 이 생각만이 머릿속을 잔뜩 채웠다.  

  호중의 아토피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분명 목만 덮었던 그의 붉은 반점은 이제 턱을 넘어 얼굴까지 뒤덮었다. 나는 몇 번이고 피부과에 가라 말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도대체 고집부리는 이유가 뭐야? 곰보를 누가 좋아한다고.”

  “그래도 너는 좋아해 주잖아.”

  “……”

  그의 당돌함에 말문이 막혔다.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었지만 그 말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다.

  “너도 같이 가서 점 빼면 되겠다. ”

  “뭐라니.”

  “오늘 끝나고 약속 있어? “

  “아니 없어.”

  “그럴 것 같았어. 끝나고 집 같이 가자.”

  최근 호중과 함께 집으로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그만큼 호중과 주고받는 말수도 부쩍 늘 수 있었다. 모든 게 중간고사 기간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순간을 부정하지 말고 즐기기로 했다.

  하굣길 길가엔 벚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꽃은 하늘과 바닥을 온통 분홍 빛깔로 물들게 하였다.

  “너 벚꽃의 꽃말이 뭔지 알아? ”

  문득 호중이 물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음…… 새로운 시작? 사랑? 몰라. 뭔데? “

  “중간고사.”

  “그게 뭐야. “

  그도 스스로 뱉은 말이 웃겼는지 히히덕, 거리며 웃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어 보였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집까지 앞으로 백 미터 남짓. 나는 이제 곧 호중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발 보폭을 좁혔다. 호중은 내 발걸음을 따라 함께 속도를 맞추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호중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자 고개를 돌려 호중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호중의 눈이 다시 텅 비어 있었다. 입을 떡 벌어진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그와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분명 호중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낯선 남자가 그녀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내 입을 맞추었다. 호중의 어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호중이 팔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한참 눈동자를 굴리다 힘겹게 그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동자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얼굴은 아토피 때문인지, 차오르는 분노 탓인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차마 호중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보라야, 먼저 들어갈래? 산책을 좀 하다 가야겠어.”

  나는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대로 호중을 보낼 순 없었다. 이대로 그를 보낸다면 다신 그를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아님 우리 집 와서 좀 쉴래? 아빠 출장 가셔서 아무도 없어.”


  호중은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난 뒤로 한참 동안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내가 물을 내오고 나서야 꾹 다문 입을 열었다.

  “바로 옆집인데 우리 집보다 훨씬 좋네.”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네. 뭐라도 먹고 갈래? 직접 할 건 없고 시켜 먹으면 되니까. “

  “괜찮아. 아버님은 출장 가셨을지 몰라도 어머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잖아. “

  “나 엄마 없어. 괜찮아.”

  호중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몰랐던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있고, 옆집이라도 그저 부모님이 바쁜 아이로 여길 만했으니까.

  “실례를 저질렀네.”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잠깐동안 정적이 집 안에 내려앉았다. 호중은 얼음이 담긴 물만 연신 들이켰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시켜 먹자. 나 모아둔 돈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현관문에 붙여진 전단지를 보고 치킨이란 걸 주문했다. 사실 치킨이란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매번 아빠가 쥐어주던 돈으로 치킨을 사 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돈을 모으기로 다짐한 뒤로는 일정 가격이 넘어가면 절대 시켜 먹지 않는다는 신념이 붙었으니까.

  나는 치킨을 주문하고 서랍을 열어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생각보다 치킨 가격이 꽤 나갔지만 후회는 없었다. 호중과 함께 먹는 첫 밥이니까.

  처음 제대로 먹어보는 치킨은 바삭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와 호중은 뼈에 붙은 살과 튀김옷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쿠폰도 무려 두 장이나 주었다. 앞으로 열여덟 장만 더 모으면 이 맛있는 치킨을 무료로 한 마리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쿠폰을 정갈하게 정리해 책상 안으로 넣었다.

  “근데 이런 기름진 음식은 너 아토피에 안 좋잖아.”

  “다 먹고 나서 잔소리하는 건 무슨 심보야? “

  호중이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하루라도 잔소리를 안 하면 알이 배기나 봐.”

  이번엔 나도 웃어넘겼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처럼 웃어넘기는 방법을.


  “난 엄마가 행복하길 바랐어. 그게 전부야.”

  어느덧 해가 저물고 가로등과 달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호중은 베란다에 걸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

  나는 호중의 뒤에서 그가 바라보는 하늘을 따라 바라보았다.

  “어렵더라. “

  “원래 행복이 어렵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네.”

  “다행이라니. 다행인 일은 아니지 않나? ”

  호중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더 빤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

  의아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한참 동안 볼멘소리를 내었다.

  “분명 지구 사람은 아닐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생각을 할 순 없을 거거든.”

  호중은 이 말만 남겨둔 채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다시 고요한 1104호로 향했다. 그가 현관문을 열기 전에 잠시 멈칫했다는 걸 느꼈다. 찰나의 순간,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림잡을 수 없었다.


  




  1104호는 다시 소음의 근원지가 되었다.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매일 1104호는 시끄러웠다. 남자가 돌아온 것이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호중의 아버지 목소리가 크게 복도에 울려 퍼졌고, 새벽마다 그의 어머니는 흐느껴 울었다.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지만 호중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회장과 수많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 학교에서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아파트에서 그를 마주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른 척하며 지나갔다. 어떤 일이었어도 밝은 웃음만큼은 잃지 않았던 호중이 변했다. 심했던 아토피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온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변에 관심 따위 던지지 않는 아빠도 1104호를 지나칠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몇 번이고 호중을 만나려 했지만 몇 번이고 그는 나를 피했다. 1104호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곧장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닫히는 문을 잡자 드디어 고개를 푹 숙인 호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호중은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어제 자퇴원 냈어. 그러니 학교에 오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그거 때문에 널 찾으러 다닌 건 아니야.”

  “그래? 유감이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호중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나는 멀어지는 호중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어서 호중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알아? “

  “대충 들어는 봤어.”

  “그게 참, 인간을 망치기 좋더라. 그 주변사람까지 깡그리 다.”

  더 이상 나눌 말은 없다는 듯이 그는 두어 마디만 내뱉곤 내 손을 뿌리쳤다. 다시 한번 그의 손을 붙잡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센 반항이었다.

  “씨발, 너도 스톡홀름이야? 이렇게까지 지랄하는데도 왜 나랑 뭘 하려고 하는데? “

  그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나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호중은 아파트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호중이 사라진 뒤, 1104호의 소음은 더 크게, 자주 들려왔다. 그의 행적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했다고 했지만 경찰도 그를 찾지는 못했다. 아빠는 1104호 아들 실종 사건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래?라고 짧게 답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한참 동안 유성펜으로 얼굴을 지운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던 건 잊히지 않는 반응이었다. 사실 엄마에 대해 아는 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저 남자가 사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중의 부재는 한동안 아파트를 들썩이게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아파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잠잠해졌다. 1104호 남자도 다시 집을 나갔나 본지 소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성인이 되던 해,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머리 위로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빠는 샤워를 하고 나와 캔맥주 하나를 따 티브이로 향했다. 제야의 종소리도 울린 지 오래였지만 그는 의미 없는 말만 전하는 뉴스를 고정시켰다.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초라한 아빠의 모습을 보다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이제 집 나가서 따로 살게. “

  “응? ”

  아빠는 잘 못 들은 척하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이제 성인 됐잖아.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서로 없을 바에 혼자 살려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왔고. ”

  “계획했던 거니? ”

  “응. 아주 어릴 적부터.”

  “……”

  아빠는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곤 말없이 뉴스만 보았다.

  “돈은 있고? ”

  한참의 침묵 뒤에 입을 연 건 돈이었다.

  “응. 아빠가 저녁 먹으라고 준 돈 아끼면서 모았어.”

  “그럼 많이 모았겠네.”

  어느새 맥주 한 캔을 모두 비웠는지 새 맥주를 가져와 땄다.

  “알아서 하거라. 이미 네가 오래전부터 계획한 거라면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응. 잘 자. “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굳게 닫힌 문 뒤로 아빠가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분명 어릴 적부터 계획한 일이었으나, 막상 때가 되니 찜찜한 느낌이 등에 찰싹 달라붙은 듯했다.


  


  


  혼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월세부터 식비, 교통비, 가스비, 수도세 등 내가 뭘 하더라도 전부 돈이었다. 만약 또래 아이들처럼 대학 등록금까지 냈더라면…… 이미 빚쟁이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여태까지 모아둔 돈으로 꾸역꾸역 비는 돈을 메꿨다. 아르바이트도 두 개나 하고,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껴도 돈은 끊임없이 빠져나갔다.

  가끔은 호중의 근황이 궁금해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호중의 이름을 검색하곤 했다. 그도 성인이 되었을 텐데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추운 곳에서 자지는 않는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걱정에 한참 동안 그를 검색했다. 예상대로 그는 호락호락하게 본인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같이 한 번 더 먹을걸.

  떠올려보면 그때 함께 먹은 치킨이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아니, 어쩌면 그는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붕어빵을 함께 먹은 것도 식사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쉬는 날, 옛날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 보았다. 아직 아빠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구식 아파트, 호중의 어머니가 붕어빵을 팔던 초등학교 앞, 매번 그와 함께 돌아가던 하굣길. 옛날의 향수가 남은 길거리를 차례차례 걸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 내내 길거리를 걸었다.

  해가 저물었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밝혀주지 않는 길은 어둑하고 쓸쓸해 보였다. 저만치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오고 있었다. 뭐 기쁜 일이 있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귓가에 맴돌아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들을 보니, 호중과 그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던 호중, 어떤 일이 있었다 한들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하던 호중. 분명 그는 이 잔인했던 현실에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긴 나는 이번에도 도박에 실패했던 것이었다. 허탈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늦게까지 버스가 오갔지만 버스 배차간격은 아주 오랫동안 더 기 동네에 머무르도록 했다.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한 탓에 몸을 기대어 쉴 시간조차 없었다. 저녁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으면 곧장 아침 알바를 하러 또 나가기를 반복했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텅 빈 통장잔고와,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월급날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해 주었다. 연애라는 걸 할 시간도 허락받진 못했다. 애초에 아르바이트에 갈 때마다 화장 한 번 안 하고 가는데, 누가 이렇게 초라한 내게 말을 걸어주겠나.

  시답잖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던 날, 이 톱니바퀴를 부순 건 한 통의 문자였다. 여태 연락 한 번 없던 아빠의 이름으로 문자가 한 통 온 것이었다. 뭐, 잘 지내냐는 질문이나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안부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가 내게 보낸 건 부고장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말고 부고장에 적힌 곳으로 향했다.

  아빠는 이미 오래전에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한참 전에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늘 집에서 술을 마시고, 티브이만 보다가 홀로 쓸쓸하게 숨을 거두게 된 것이었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기에 아빠의 시신은 썩어갔고, 고약한 냄새를 참지 못 한 1104호 호중의 어머니가 신고를 한 것이었다. 부패가 너무 심하게 된 탓에 아빠의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화장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는 집을 나온 이후로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흐르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1104호 호중의 어머니도 장례식장에 함께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빠의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힘 없이 허리를 굽혀 앉은 그녀에게 다가가 물을 한 잔 건넸다.

  “이렇게라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호중이 친구인데 아줌마가 이런 것밖에 못 해줘서 오히려 더 미안할 뿐이지.”

  그녀는 아마 여기서 호중을 기다리고 있을 건지도 몰랐다. 그를 마주칠 가능성이 단 0.1%만 존재하더라도 곧장 달려오는 듯했다. 이를 눈치 못 챌 순 없었지만 그냥 눈 감아주기로 했다.

  “저도 죄송하죠. 그 애가 어디 갔는지도, 뭐 하고 사는지도 전혀 모르는데……”

  그녀의 표정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 얼굴에 확신했다. 아빠를 추모하러 온 건 아니라고. 그러나 고작 다른 그런 이유로 이 빈소에 있다는 이유가 딱히 화가 나지도 않았기에 그냥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나와 아줌마, 둘밖에 없는 빈소에서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발인 하루 전, 사람 발길 한 번 없었던 빈소에 누군가 찾아왔다. 손님은 조의금 봉투를 내게 내밀더니 아빠의 빈소를 향해 절을 올렸다. 처음 보는 여자였기에 그저 아빠의 직장 동료 정도로만 생각했다.

  “보라…… 군요.”

  그녀가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는지 입을 여는데 건조해진 입술이 딱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안쪽 자리로 그녀를 모시려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냥 인사만 하러 온 거예요. 잘 자란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머리만 긁적였다.

  “급한 일이 있으시다면 붙잡진 않겠습니다. 잠깐 들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마음도 참 곱네요. 보라는.”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버지와 관계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 직장 동료분들께서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아…… 직장 동료는 아니고요…… 그냥 음…… 친구……가 좋겠네요. “

  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오래 있어주지 못해서. ”

  여자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앞까지 바래다 주렸는데 갑자기 여자가 내 손을 맞잡았다.

  “정말 미안해요. 보라는 절대, 절대……. 힘들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그녀는 뒤를 돌았다. 등을 돌렸음에도 그녀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게 보였지만 더 이상 발을 내딛을 순 없었다.

  저만치 사라지는 여자. 그녀는 아빠랑 어떤 사이였을까. 왜 저렇게까지 나를 걱정했을까. 별 생각이 다 들면서  그녀의 얼굴이 연거푸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 그려진 주름, 짙은 화장…… 관자놀이 쪽에 박힌 점. 그녀는 아빠와 친구라고 했다.


  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곧장 아르바이트에 복귀했다. 내가 없는 3일은 아무렇지 않게 잘 흘러갔다. 마치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처럼 밝고 환했다.

  “보라야, 이따 단체 손님 있을 거라서 식자재랑 밑반찬 좀 미리 세팅해줄 수 있어? ”

  점심시간 전이었지만 식당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10시 30분에 이른 점심 식사를 했다. 남들의 점심을 위해 내 점심을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해야 한다니, 조금은 모순적인 순리 같았다.

  사람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들어오면 우리는 바짝 긴장했다.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를 시작으로 줄줄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예약석에 앉히자마자 가게 안은 순식간에 소음으로 가득 찼다. 기억하기 힘든 정도의 주문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일일이 다 받아 적으려 했으나 배가 나와 셔츠가 터질 듯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빨리 달라고 보챈 탓에 나머지는 전부 기억 속에 담아두었다.

  잔인하게도 단체 손님만으로 줄이 끊기진 않았다. 서빙을 하는 내내 잇따라 들어오는 손님들에 더욱이 정신이 없었다. 아직 물이 오지 않았다, 반찬 세팅은 언제 하냐, 주문은 언제 받아줄 거냐, 손님들은 일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자마자 보채길 반복했다.

  “보라야, 살려줘.”

  같이 일하는 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인상을 찌푸리는 걸로 대답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식당은 고요해졌다. 남은 거라곤 남긴 음식과 더워진 식기류들만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와 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나하나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라는 일 언제까지 할 거야? ”

  “모르겠어요. 언니는요? ”

  “글쎄. 다음 학기가 막학기인데 바로 취업 준비를 할 거면 그만두고, 아니면 일단 돈을 더 모아보고……”

  “학교…… 다니셨구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다. 대한민국에는 대학생이 많다. 명문대가 아니어도 일단 대학에 들어간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가끔은 그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불안해졌다. 식사를 하러 오는 직장인들을 보며 재미없는 일 이야기 혹은 학교 이야기인데, 학교를 안 나오면 취업조차 못 할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만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은 너무 어릴 때만 바라보고 판단한 듯했다. 막상 아르바이트를 해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문득, 느껴지는 회의감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저녁 아르바이트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걷는다기보단 발을 끈다에 더 가까웠다. 이미 몸이 지칠 대로 지쳐 내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만 살아야 할 지도 의문이었다.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숨이 함께 나왔다. 차가운 겨울은 나의 한숨의 자취를 드러내주었다. 나는 힘없이 올랐다 사라지는 숨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밝게 빛나는 밤하늘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이었다. 단 하루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밤하늘.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다 호중이 떠올랐다. 호중의 어머니가 아파트 앞에서 낯선 남자와 입을 맞추던 날, 그와 우리 집에 와 난간에 걸쳐 바라보던 밤하늘. 그는 거기서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거기서 실컷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고 했다. 그날, 호중은 아마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떠났을지도 몰랐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

  그는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피해도 뒤를 바짝 쫓는 것들에서부터.

 “지구는 아닐 거야.”

  너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니, 외계인이었다. 지구는 행성이기에 태양이란 별에 의지해 빛날 수 있지만 너는 충분히 스스로 빛나는 외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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