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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ug 04. 2024

내 인생의 잔고

  어느 날 두문불출하고 한 달 동안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이 집과 함께 들어왔던 소파와 장롱, 화장대와 서랍장, 책장을 모두 다 버렸다. 사물도 오래되니 사람처럼 낡고 삐걱거리며 자연분해가 된다. 폐기물 업자를 불러 모두를 실어 보내고 나니 집이 텅텅 비어 빈집이 되었다.


  빈집이 된 집은 방마다 먼지가 장난 아니게 쌓여있다. 집하고 몸은 깨끗해야 한다고 깔끔을 떨며 강조했는데 집안 구석구석은 20년 가까이 먼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낡은 물건들을 내보내고 일주일 내내 청소를 했다.


  방마다 도배를 하려고 알아보다가 그만두었다. 집안에 낯선 사람을 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셀프 도배를 하기로 했다. 요즘은 시트벽지가 잘 나와 있어 어렵지 않았다. 천장은 불가하니 천장과 가장 비슷한 색을 사서 하루에 벽면 하나씩을 발랐다. 노가다는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해보는 막일이라 몸살이 나서 며칠씩 누워 있기도 했다. 보이는 벽면은 말끔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벽면은 헌 옷을 꿰맨 것 같다.


  사는 동안 미니멀 라이프 Minimal Life로 살다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만 샀다. 소파와 화장대는 미니로 바꾸었다. 한 사람이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 남겨진 쓰레기가 너무 많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갈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법정스님 말씀처럼 어지간하면 남은 생은 무소유로 살다 가고 싶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사물은 사용하던 주인이 떠나면 갈 곳이 없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에 새로운 주인을 찾기는 힘들고, 모두 쓰레기장으로 간다. 내 인생의 잔고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으므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정신이 맑을 때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된 것이다.


  방 하나를 완전히 비워 방석 하나만 놓고 명상하며 기도하는 방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짐을 버렸는데도 아직도 많다.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실감했다.


  지식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책에 대해 욕심도 많아 무진장 쌓아 놓은 오래된 책들도 미련 없이 다 버렸다. 집이 다이어트를 하니 여백이 많아 좋다. 텅 빈 거실을 보니 여기다 탁구대를 놓고 탁구나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도 오랜만에 다이어트를 했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거나 연락하지 않은 전화번호도 모두 지웠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작별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 것만 남겨놓았다. 필자는 남의 전화번호를 잘 저장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들과 시절 인연이 끝난 이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우린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인맥을 너무 많이 맺으며 시간과 돈과 감정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중년이 되면 영업사원이 아닌 이상, 인맥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자기 자신을 비워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잔고가 남아 있을 때 주위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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