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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ug 18. 2024

염려증

  혼자 있을 때 가장 겁나고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같은 답을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몸이 아프면 누구에게 의지할 수가 없으니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쉽게 말해 고독사 하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업습한다.


  김 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어보면 일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요즘 고독사는 나이 든 노인보다 젊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노인들은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가 있지만, 청년들은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청년층이 오히려 고독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제대로 피지도 못한 꽃들이 혼자서 쓸쓸히 죽어간다니 말이 되는가.


  얼마 전 지인의 딸도 고독사 했다.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고, 이제거우 사십 대인데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간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딸이 연락이 안 돼 집으로 찾아가 봤더니 혼자서 죽음의 강을 건너갔다고. 어미가 돼서 딸이 죽을 줄도 모르고 밥 먹고 편하게 잠을 잤다고, 지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식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젊다고 몸을 너무 혹사시키지는 않았는지,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온다. 젊고 어리다고 해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혼자되었을 때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이 고독사였다. 처음에는 고독사란 말만 들어도 무서웠다. 혼자 있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바쁜 아들이 뒤늦게 엄마의 죽음을 알고 얼마나 슬퍼할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었다. 조금만 몸이 아프면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래서 한때는 염려증까지 생겼다. 염려증이란 뭐 별개 아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불편하며 어지럽고, 진땀이 나며, 구토가 나고, 몸에 힘이 없었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찾았을 때 의사가 그랬다. 몸엔 아무런 이상은 없고,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그게 바로 염려증이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 가슴으로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깊은 산속에서 혼자 도를 닦는 수도승들은 몸이 심하게 아프거나 열이 나면 어찌할 수가 없어 그냥 금식을 하며 일주일씩 가만히 앉아 있는 다고 한다. 아픈 몸으로 약을 사러 산속을 내려갈 수도 없고,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으므로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일주일씩 앓을 만큼 앓고 나면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고 한다.


  필자도 어느 순간 불안과 싸워 이겼는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몸이 아프면 겁먹지 않고 금식을 하고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며 내면을 들여다본다. 왜 아픈지, 아픈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들여다보며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죽음이 찾아왔을 때 공포에 떨며 겁내거나 저항하지 않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맞이하지 않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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