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지? 뭘 해야 하나? 뭐가 잘못됐을까?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지? 휴대폰도 없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모든 것은 일시 정지……. 수많은 물음표와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데 삑삑 소리가 나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배터리가 없어서 그러나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짐들을 거실에 내동댕이치고 헐레벌떡 배터리를 찾아 후다닥 교체를 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시험 삼아 열어 보니, ‘오, 마이 갓!’ 아무리 애를 써도 문은 굳게 닫혀서 꼼짝도 안했다. 별짓을 다해도 묵묵부답이다. 10년을 넘게 산 집이 주인을 거부하며 버티고 서 있다. 어찌나 열이 받는지 생각 같아선 문을 확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닫힌 문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범선의 「고장난 문」은 주인공이 문안에 갇혔다는 사실에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질식해 죽었는데 나는 문밖에서 들어가지 못해 열 받아 죽을 것 같다. 이건 자유를 빼앗긴 게 아니고,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다. 있는 힘을 다해도 열리지 않아 내가 살던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웠다.
문이란 원래 개방과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안전과 휴식의 의미도 있다. 고장 난 문 앞에서 주인도 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 바다보다 넓다가도 심사가 꼬이면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다고 했다.
문은 더 이상 문의 역할을 포기한 차갑고 견고한 벽이 되었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 흔들어 봐도 꽝꽝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이다. 이런 벽 뒤에 나의 안식처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다.
관리실의 도움으로 열쇠 공을 불렀다. 대낮부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왔다. 불성실해 보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을 좀 열어 달라고 했더니 디지털 문은 한번 고장이 나면 열 수 없고, 그냥 손잡이를 부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첨단기술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온 아파트에 문 부수는 소리가 들리고, 이웃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기웃기웃한다. 미안함에 연신 고개만 숙였다. 영화에서처럼 소리도 없이 문을 쉽게 딸 수 없느냐고 했더니 영화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버려놔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투덜댄다.
2시간가량 손잡이를 부숴서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다. 사람의 닫힌 마음은 강제로 열수 없지만 문은 가능했다. 그런데 손잡이를 뜯어낸 문은 안이 훤하게 보여 괴기스러울 정도로 흉측했다.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문이 서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나였다. 세상에 전라의 몸으로 던져진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보였다. 문 안에서 때로는 자존감 상실에 분노와 울분을 토하고, 슬픔에 잠겨 밤을 지새우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대고, 괴로움에 몸을 떨며 며칠씩 생각에 잠겨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며 가슴 아파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기쁘면 박장대소로 눈물이 날정도로 배를 움켜잡고 웃어대던 곳이 민낯을 드러내 흉물스러웠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열소공은 서둘러 새로운 손잡이를 달았다. 이젠 더 이상 그 끔찍하고 괴기스러운 문이 아니다. 심플하게 정장을 빼입은 멋진 신사 같다. 문은 다시 충실한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