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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Nov 13. 2024

영순이

어릴 적 내 친구 영순이는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집 맏딸이었다

칠 남매의 맏딸인 영순이

한겨울에도 맨 손으로

아버지 따라 산에서

나무를 해다 읍내 장에 내다 팔았다

영순이 아버지가

나무를 판돈으로

국수를 한 뭉텅이 사 오면

영순이 엄니는 가마솥에

김치꼭지를 숭숭 썰어 넣고

국수를 한주먹 넣고 푹 고았다

사골을 고는 것처럼

가마솥에 고아진 가난

한참을 그렇게 국수를 끓이면

국수가 퍼져서 걸쭉한 죽이 된다

퍼진 국수 죽을

한 사발씩 먹는 날이면

울 집에 와서도

배가 부르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

가난을 뼈에 새기며 열심히 산 덕분에

지금은 풍요를 누리고 살면서도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허한 날엔

그때

가족과 함께 먹던 그

국수 죽이 미치도록 먹고 싶다는

내 친구 영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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