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연

by 루아 조인순 작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아파서 잠을 깼다. 어제 주말농장에서 땅을 팠더니 그런 것 같다. 아직 늦겨울의 끝자락이라 바람은 차갑지만 새들의 지저귐이 높은 것을 보니 봄이 오고 있다. 하늘엔 하얀 상현달과 별들이 떠있는 이른 새벽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봄의 소리가 들린다. 그 길고 지루하던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고 빛이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워간다. 하얀 서리를 덮고 있는 땅은 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흐릿하게 퍼져있는 엷은 안개가 피부에 닿는 촉감이 감미롭고 상큼하다. 매섭게 살갗을 파고들던 겨울바람도 어느 순간 많이 부드러워졌다. 맑게 흘러가는 개울가엔 물안개가 몽글몽글 피어나 바싹 마른 풀잎에 맺혀 하얀 성에가 생겼다.


말라버린 풀들 밑에 성급하게 돋아난 작은 새싹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바람은 아직 냉기를 품고 있어 여린 것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온몸을 떨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강자 앞에 약자는 항상 초라하고 작은 존재지만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버티고 있다. 산다는 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에게 버거운 일인 것은 확실하다. 한낮엔 기온이 올라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봄의 정령인 매화는 벌써 활짝 폈고, 목련과 개나리 산수유도 꽃망울이 맺혀 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면 봄의 축제가 시작된다.


마른풀을 덮고 있던 밭을 트랙터가 갈아엎어 딱딱한 흙이 카스텔라처럼 포슬포슬해졌다. 꾹꾹 눌러 참았던 한숨을 토해내듯 흙냄새가 진하게 난다. 몸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몸이 전하는 언어다. 그 언어에 관심을 갖고 관찰해야 무탈하게 살 수 있다. 몸의 언어는 들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어 속일 수가 없다.


진한 흙냄새를 맡으니 봄나물과 고향이 그리워진다. 봄이 오면 바구니를 들고 언니를 따라 논두렁 밭두렁에서 쑥과 냉이, 씀바귀와 달래들을 캐던 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취나물을 뜯어다 된장에 무쳐먹던 그 향긋한 봄나물들도 그립고, 쑥버무리도 먹고 싶어진다.


올봄엔 운이 좋아 이웃사촌에게 밭고랑 하나를 분양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채소나 심어 먹을까 해서 오랜만에 노동을 했더니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 우리의 몸은 하는 일에 따라 쓰는 근육이 모두 다르다. 자주 쓰는 근육은 적응이 돼 괜찮은데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면 이렇게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앞으로 일주일가량은 더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다녀야할 것 같다. 아파트에 살면서 평소 손바닥만 한 땅 한 평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그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딱딱한 땅을 파기가 만만치 않다. 삽으로 땅을 파헤쳐 쇠갈퀴로 뭉개니 흙이 떡가루처럼 부드러워졌다. 잠깐이면 될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고랑을 치고 둔덕을 만들어 배수가 잘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흙에다 퇴비를 얻어다 뿌리고, 작은 고랑을 만들어 그곳에 각종 채소를 심을 생각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농사를 짓기는 처음이다.


이웃에게 씨앗까지 얻어 답답한 비닐봉지 속에 갇혀있던 씨앗들을 꺼내 포근한 땅에 뿌려주었다. 땅속에 묻힌 씨앗들은 무슨 꿈을 꿀지 궁금해진다. 상추와 열무, 얼갈이와 쑥갓을 심고, 절반은 감자를 심었다. 달콤한 꿀잠을 자고 나면 봄비가 내려 하나 둘 발아해 귀엽고 예쁜 연둣빛 싹이 돋아날 것이다. 밭고랑 앞에 서 있는 벚나무에 벚꽃이 활짝 피면 온 산과 들엔 봄의 향연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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