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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Feb 25. 2024

여자인가, 여자가 아닌가

  여성은 남성보다 불편한 것이 참 많다. 먼저 신체적으로 매우 불리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을 함께 운동을 가르쳐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여학생은 디테일하고 자상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반면 남학생은 같은 말을 두 번 하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딴짓을 한다. 잔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고에 재직 중인 친구는 한 학기가 끝나면 보약을 한 제씩 먹어야 버틴다고 한다. 날마다 소리를 질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아들만 키워본 엄마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키운 엄마는 미친년, 아들 둘 키운 엄마는 정신 나간 년, 아들 셋 키운 엄마는 제정신이 아닌 년’이라고. 그만큼 수컷들을 상대하기가 힘이 든다는 말이다.

  어쨌든 여성은 몸이 남성과 달리 무겁다. 그 이유는 여성은 아기집인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 여성이 남성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일단 그 궤도에 올라가면 여성은 남성보다 잘한다. 여성은 섬세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남성보다 낫다.

  그러나 신체적인 면은 여성이 남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매직에 걸리면 극로도 예민해진다. 가슴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고 팽창되어 스치기만 해도 아파 눈물이 나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누군가 시비를 걸어오면 그 상대가 누구든 제삿날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진다. 그만큼 예민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필자에게도 갱년기가 찾아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청춘은 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 온 것이다. 완경이 와서 그 지긋지긋한 거리에서 벗어났을 때는 홀가분해서 좋았다. 집에 쌓여 있던 생리대를 미련 없이 다 버렸다. 그런데 몸이 좀 이상했다. 잘 돌아가던 기계에 나사못 하나가 빠진 것처럼 몸이 조금씩 균형을 잃어갔다. 피부와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어가고, 조금만 무리를 하면 몸이 파업을 하는데 그 횟수가 점점 길어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이 든 노인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별은 분명 여성인데 완경 한 여성은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고 한다. 자연과 사회가 그렇다고 한다. 쉽게 말해 생산능력이 없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자연과 현실이 그렇다는데 수긍할 수밖에. 감정 기복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닌데 면역력이 떨어져 몸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먼저 완경을 맞는 선배들이 한 마디씩 했다. 나이가 들면 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몸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고. 그러다 큰일 난다고. 평생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어느 날 산에서 바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숨 쉬기가 불편해 병원을 찾았더니 갈비뼈가 떨어져 심장을 누르고 있다고.

  결국 삼 개월을 누워서 보내고 일어나 골다공증 약을 먹었다. 이처럼 갱년기 여성들은 대개 자신이 골다공증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필자처럼 뼈가 부러지고 나서야 약을 먹는다고.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죽는 것은 무섭지 않은데 아픈 것이 무서웠다. 건강하지 못한 몸은 심신을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갱년기는 여성만 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도 오십 대가 되면 갱년기가 온다. 여성처럼 급격하게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들도 몸에 변화가 온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성이 갱년기가 오면 먼저 말이 많아지고, 여성들처럼 잘 삐지고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감성이 풍부해진다고 해서 아내를 연애시절처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남성이 갱년기가 오면 성욕도 없어진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잘 울고, 남성은 서서히 여성화가 되는 것이다. 옆에 있는 옆지기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빈정대거나 핀잔을 주지 말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쓰담쓰담해 주시길. 완경 한 여성에게도 고생했다고 토닥토닥해줘야 한다.

  반면 여자는 갱년기가 오면 말이 없어진다. 여성은 남성이 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대수롭지 않다. 왜 그런 반응이 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담담하다. 반응이 무반응이다. 예를 들어 예전엔 집에 바퀴벌레가 보이면 비명을 지르고 가족에게 빨리 잡으라고 난리를 쳤는데, 이젠 벌레를 봐도 가족을 부르지도 않고 그냥 알아서 책으로 탁 잡는다. 좀 징그럽기는 해도 옛날처럼 기겁을 하며 날뛰지 않는다. 여성도 중성화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자가 완경 했다고 해서 더 이상 여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예쁜 옷도 입고 싶고, 눈이 시원해지는 멋진 남자가 지나가면 고개도 자동으로 돌아가고, 관심과 사랑도 받고 싶다.

  그러므로 생산능력이 없다고 더 이상 여성이 아니라는 말은 좀 그렇다. 생산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여성이므로 자연이 시키는 일을 완수했으니 편히 쉬면서 멋지고 아름답게 늙어갈 권리는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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