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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pr 07. 2024

이성이 가출하는 밤

  우린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닥치면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의 안위를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해도 이성적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기 때문이고, 반사 신경에 의해서 살고자 하는 본능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린 위험이 닥치며 이성보다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 살아야 하니까.

  필자는 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막상 위험이 닥치니 이성적이지 못 했다.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어도 문은 꼼짝도 안 했다. 며칠 전부터 방문 손잡이가 삐거덕 거렸는데 이렇게 한밤중에 고장이 날줄은 몰랐다. 혼자서 방 안에 갇히게 되니 겁이 덜컹 나고 진땀이 났다. 휴대폰은 거실에 있고 아들은 출장 중이고…….

  얼마 전 친구도 욕실에 갇힌 적이 있었다고 했다. 씻으러 들어갔다가 욕실에 갇혔는데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되었다고. 하루 종일 굶고 딸이 저녁때 퇴근할 때까지 욕실에서 기다렸다고. 뉴스에서도 혼자 사는 할머니가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다가 문이 고장 나서 욕실에 갇혔다가 며칠 만에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봤다.

  그래서일까. 그때부터 생각이 널뛰기를 하면서 이성이 자꾸만 가출을 하려고 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별의별 생각에 도망가려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한밤중에 달그락 거리면 이웃들의 단잠을 깨울 것 같아 잠자리에 다시 누워 잠을 청해 봐도 잠은 이미 멀리 도망가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혼자서 위기가 닥치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숨 쉬기도 불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욕실이 아니고 방이라는 것이다.

  내 평생 이렇게 긴 밤은 처음이다. 이성적이지 못했다. 밤이 너무 길어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누군가 새벽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아침은 오지 않았다. 하룻밤이 십 년같이 길었다. 지루한 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자 조심스럽게 안방 창문을 넘어 베란다를 통해 거실로 들어갔다. 드라이버와 망치를 챙겨 다시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 손잡이를 해부했다. 아무리 해도 해부가 안 돼 인터넷을 보고 여러 번 반복하니 한나절 만에 간신이 잠겼던 방문이 열렸다.

  그렇게 이성이 가출하는 밤을 보내고 난리를 치며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고 난 후 유비무환으로 베란다로 연결이 안 된 방과 욕실에다 드라이버와 망치를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도둑이 들어오면 잡으려고 갖다 놓은 게 아니고, 지금처럼 혼자 안에 갇히게 되면 당황하지 않고 손잡이를 부수고 나오기 위해서다. 철물점에 가서 방문 손잡이를 사다가 교체하고 나니 뿌듯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어깨와 손목이 엄청 쑤시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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