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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우 Oct 11. 2023

악어와 함께 게 낚시 / 블루크랩 후크 선장

플로리다에서 게 낚시 하다가 악어에게 물릴 뻔한 사연

예전엔 보통 집에서 한 시간이면 가는 St. Marks 등대 근처에서 게 낚시를 하곤 했다. 이곳에도 게가 많고, 내셔널 레퓨지 National Refuge 답게 다양한 생태계와 더불어 풍경도 정말 근사한데

2021년 게 낚시의 추억


최근 낚시에 진심인, 열정 가득 지인 덕분에 알게 된 또 한 곳의 게 낚시 명당. Big Bend WMA Hickory Mound Unit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해서 차는 좀 고생


집에서 1시간 20분만 달려가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게 낚시터 대자연이 나타난다. 두 번째 방문인데 오늘도 참 재밌는 일이 많았다. 일단 우리를 반겨준 특별한 동물 이야기부터!

블루크랩을 잡는 건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닭다리에 털실이나 튼튼한 끈을 묶어 던지고, 게가 그걸 맛있게 냠냠하느라 정신이 팔렸을 때 뜰채로 게를 잡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닭다리로 게를 잡지만 닭다리는 다른 것도 유혹할 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악어! 잘 안 보이지만, 사진 속 저 빼꼼 올라온 것이 바로 악어 얼굴 되시겠다.

우리와 같이 게 낚시를 하기로 한 분들이 물가에 갔을 때, 줄 끝에 게가 아닌 악어가 닭을 물고 있었다고 한다. 늦게 온 우리는 그건 보지 못하고 "악어가 물속에 있으니 조심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게 낚시가 진행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악어의 존재는 알았지만 워낙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 속에서 게도 잘 안 잡히네? 방심한 나는 물에 좀 더 깊이, 그것도 아까 다른 분들이 악어를 보셨다던 수풀 쪽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물속에서 뭔가가 파드닥 흙탕물을 튀기며 움직였고, 나도 놀라서 냉큼 뭍으로 돌아갔다. 근데 그게 바로 아까 닭고기 맛을 본 그 악어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맙소사.

다행히 부상자 없이 낚시를 마치면서 남는 닭다리를 우리 때문에 많이 고생한(?) 게와 물고기들에게 보시하고 있었는데 악어가 "나 줄 건? 없나?" 이런 느낌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뜨악한 나는 저 생명체가 악어인 걸 확인도 할 겸 닭다리 하나를 던졌고...

악어는 받아먹었다. 그것도 우리 보란 듯 얼굴을 내밀고 닭다리를 물고 유유히 헤엄치다가 우적우적 신나게 잡수셨다. 졸지에 악어 피딩쇼를 본 우리는 뭐에 홀린 듯 박수까지 쳤다. 영상은 유튜브에...

https://youtube.com/shorts/ysKeSlPMs-0?feature=shared



물론 전체 길이가  내 팔보다도 짧고 얼굴도 작은,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악어였지만 그래도 적잖이 놀랐다. 플로리다 올 때 가장 신경 쓰이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악어이기도 했던 터라... (나머지는 총과 대형벌레)


아무튼 저곳에 게 잡기 하러 가시는 분들은 앞으로 악어를 조심해야 할 듯. 먹을 닭이 많아서 사람을 공격하진 않겠지만 행여 짝짓기 시기에 예민한 악어를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또 하나 조심해야 할 존재는 바로 개미.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닭이나 음식 부스러기 때문에 개미들이 잔뜩 모여있는 개미 지뢰밭이 많았다. 나 포함 우리 일행들이 참 많이도 물렸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개미한테 물린 발이 퉁퉁 부어 있는데 한편으론 개미독(?) 덕분에 정신이 번쩍 나는 느낌. 누가 벌에 물리면 수명이 늘어난다는데 (이런 연구는 누가 하시나요?) 개미독에도 그런 성분이 있으려나. 하하.

수명 얘기하니 또 생각나는 이야기. 마침 오늘 함께 게 잡이 하신 분들이 비행기 캠핑카 크루즈 총동원해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신체나이 측정기로 검사를 해보니 남자분은 신체나이가 무려 5년, 여자분은 3년이 늘어 있으셨다고 한다. (한마디로 늙으셨다고...) 신체나이가 늘었다고 꼭 수명이 주는 건 아니지만 단순하게 따져봐도 좋을 건 없다. 여행이 수명을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는 거였나? 미 45개 주, 캐나다도 몇 주 여행한 우리는 오또카지... 신체나이 줄이고 수명 늘리러 어디 가서 벌에나 쏘이러 가봐야 하나.



낭군에게도 웃긴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집게 다리가 하나 없는 외집게다리게와의 신경전! 낭군이 닭다리를 물 안에 던질 때마다 번번이 커다란 게 한 마리가 다가와서 닭을 냠냠 먹고는, 낭군이 줄을 슬슬 끌어당겨 뜰채로 잡으려고 할 때마다 눈치를 채고 스슥 도망을 가버리는 게 아닌가! 닭은 점점 너덜너덜, 낭군의 멘탈도 너덜너덜. 진짜 사람을 가지고 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히게 똑똑하고 노련한 게였다. 하필 집게발이 하나 없어서 더 빠르게 닭을 놓고 사라질 수 있었고, 알아채기도 쉬웠다. 낭군은 "내가 저 게만은 기필코 잡고 말겠다!" 선언했지만 아쉽게도 낭군의 패배. 우리는 그 게에게 이름까지 붙여줬다. 후크선장이라고... (악어가 그 집게발을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생각난 외팔게 이름이 그것뿐이었다. 허허)

문득, 게들의 입장에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Hickory Mound Unit에 사는 블루크랩들이 자주 모이는 술집 블루클럽. 젊고 패기 넘치는 영게(Young crab?) 한 마리가 신이 나서 친구에게 영업을 하고 있다.

"너 그거 알아? 저기 언덕 너머에 손질된 닭다리가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치킨 뷔페가 있대!"
"게 깝치지마. 요즘같이 퍽퍽한 흉년에 뭔 닭다리 두드리는 소리야?"
"진짜라니까! 우리 동네 이장 게장 아저씨가 엊그제 가서 신선한 닭다리를 두 번이나 물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고 얼마나 자랑했는데?"
"진짜?"
"게장 아저씨는 거짓말 못 하는 참게야. 내일 나랑 가볼래?"
"뻥 치는 거면..."
"내 집게다리를 건다!"

그때, 옆에서 쾅!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게딱지 철딱서니 없는 두 영게들이 소리 나는 곳을 게눈으로 흘겨보니, 그곳에는 집게다리 한쪽을 잃은 후크 선장이 쓸쓸하게 게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동네에서 이름난 블루크랩 후크 선장을 모르는 게는 이 바닥에 없었다. 일단 덩치가 매우 크고,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번번이 살아 돌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한쪽 집게다리를 잃어서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쾅' 소리는 그 후크 선장이 아니라, 선장 앞에서 술을 따르던 주인장이 화가 나서 낸 소리였다.

"암튼 요즘 어린 게들은 정신머리가 없어. 가긴 어딜 가? 죽으려고?"

영게들이 영문을 몰라 눈만 굴리고 있자, 주인장이 선장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게걸음으로 젊은 친구들 앞으로 다가왔다.

"야 이 게 새끼 들아. 늬들 저기 계신 선장님이 어쩌다 한쪽 집게발을 잃었는지 못 들었어?"

영게들은 여전히 눈알만 굴렸다.

"언덕 너머에 닭다리가 넘쳐난다는 얘길 듣고, 온 선원들 다 데리고 갔다가 혼자만 살아서 돌아오셨잖아. "

그랬다. 추운 겨울이 막 끝난 어느 날, 후크 선장은 굶주린 게선원들과 함께 닭다리 사냥에 나섰다. 언덕 너머 물속은 정녕 블루크랩들에게는 천국이었다. 과연 전설대로 사방에서 닭다리가 퐁당퐁당 나타났고, 심지어 털을 발라먹을 필요도 없이 깨끗하고 신선했다. 처음 맛보는 이 귀한 음식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선원들과 후크 선장은 닭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장님! 살려주세요오오!"
"선장-!"
"우와아악!"

갑자기 검은 그림자와 함께 거대한 뜰채들이 나타나 블루크랩 선원들을 하나 둘 채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후크 선장은 눈앞에서 사라지려는 선원게를 한 마리라도 살려보려고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쇠로 된 뜰채와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 자신마저 잡힐 위기에 처했으나, 잽싸게 집게발 하나를 포기하고 겨우 달아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영게 두 마리는 졸지에 숙연해졌고, 주인장은 그런 그들에게 게맥주를 한 잔씩을 건네며 말했다.

"알겠냐? 언덕 너머에 가는 건 꿈도 꾸지 마. 닭다리 편하게 먹으려다가 양념게장 되는 거야."

영게들이 작은 입으로 홀짝홀짝 맥주를 들이켤 때, 술집 창문 밖에서 그 모든 얘길 듣던 누군가의 툭 튀어나온 눈이 반짝였다.

"호오, 공짜 닭다리 천국이란 말이지... 맛있겠는데?"

몸집이 너무 커서, 야외 테이블에서 혼자 꼬냑을 마시던 악어는 허기진 배를 문지르며 슬슬 몸을 일으켰다.

"가자! 오늘 안주는 치킨이다!"

- 블루크랩 후크 선장과 악어 이야기 끝 -


...이런 사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블루크랩 후크 선장을 만나 농락당하고 악어도 만났다고 한다. 아, 개미 얘기가 빠졌나... 게 잡아가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육상 비밀요원 불개미, 제임스 퐈이어 씨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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