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사라지는 이유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명절, 제사, 잔치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통과의례(通過儀禮)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철저하게 지키고 보존해 왔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 특히 21세기에 이르자 명절은 대부분 사라지고 새해와 추석 정도만이 남았다. 또한 제의도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과거의 복잡한 절차는 거의 생략되었으며 그것을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잔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준비하고 먹고 마시면서 돐, 결혼, 환갑, 장례 등의 여러 의식(儀式)을 치렀지만, 지금은 축의금, 부의금 같은 것이 중심을 이루는 문화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사회가 개인주의화 되고 자본주의화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명절, 잔치, 장례, 제사 등의 의례가 엄청난 변화를 겪음과 동시에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사회의 변화라는 두루뭉술한 이론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만 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명절이나 제사 같은 집안 의례에서 반드시 만나야 하는 가족들과 부딪힐 수 있는 여러 문제로 인해 결혼을 망설이기도 하고, 명절 기간에 생긴 갈등으로 인해 이혼도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이런 설명들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불편하기도 하고, 거부감이 생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명절, 제사, 잔치, 장례 등에 대한 본질적 성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명절, 제사, 잔치, 장례 등 다양한 종류의 의례(儀禮)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좀 불편할지는 몰라도 명절, 제사, 잔치, 장례 등의 의례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단백질 섭취, 혹은 보충에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의례가 발생하게 된 유래와 원인을 살펴보면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민족이나 그렇지만 우리 민족도 오랜 옛날부터 만들고 지켜왔던 다양한 명절, 제사, 잔치, 장례 등의 여러 의례가 있다. 명절은 달(月)마다 있었고, 제사는 집안에서 지내는 것에서부터 마을 등의 공동체와 나라에서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종류가 있었다. 잔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결혼식이 가장 성대하지만 돌(돐)잔치, 생일잔치, 관례(冠禮), 환갑, 칠순 등도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볼 문제는 왜 이런 종류의 의례들이 이처럼 많아야 했는지다. 삶의 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이 많았던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활 속에서 만드는 문화현상의 하나로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의례는 모두 신(神)과 관련되어 있는데, 온갖 정성을 다해 신을 모시고 떠받는 것이 핵심이다. 신을 모시는 모든 의례에서는 소원을 비는 것, 기도를 올리는 것, 찬양하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주술을 행하는 것, 최고급의 음식을 바치는 것 등등이 있다. 이 과정 전체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기도나 찬양처럼 신을 축복하고 높이는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최고급의 음식이 언제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또한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최고급 음식이 신에게 바쳐지는데, 여기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이 육고기(肉類), 물고기 등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육고기는 소, 돼지, 닭, 양 따위의 짐승 고기를, 물고기는 척추동물인 어류를 지칭하는데,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언제나 이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전통임과 동시에 거의 모든 의례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음식은 물리적 형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되는 신에게는 별 쓸모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이런 것들이 의례에서 중심을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에게 바쳐졌던 음식은 의례를 주관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데, 신에게 바치는 음식에서 고기가 중심을 이루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고분자 유기물질인 단백질은 사람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인데, 육고기를 통해 섭취하는 것이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얻는 것보다 비교적 쉽다. 단백질은 식물, 어물 등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으나 육고기에 비하면 함량도 약한 데다가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먹을 것이 매우 부족해서 무엇이나 아껴야 했었는데, 그보다 더 오랜 과거에는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을 만들어 내야 했던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정과 국가 등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지혜롭게 등장한 것이 인생에서 일이 잘 풀리는 만사형통과 살아생전에 큰 복을 받는 발복(發福)이 가능하다고 함과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고 구성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제의(祭儀)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의례(儀禮)였는데, 여기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육고기와 물고기 등이 중심을 이루는 제물(祭物)이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하늘과 신과 조상들께 진심 어린 바람을 빌고 찬양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음식을 바치는 제의나 잔치 등의 의례에서는 가장 좋은 재료로 온 정성을 다해 장만한 음식을 바치면서 다양한 종류의 금기(禁忌)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준비했던 음식들은 의례가 끝난 뒤에 그것을 주관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데, 이것을 음복(飮福)이라고 한다. 명절, 제의, 잔치 등 다양한 형태의 의례는 가정, 마을, 국가 등과 같은 공동체 단위로 행해지는데, 이때는 모든 구성원이 좋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이 과정에서 부족했던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이다.
사람이 삶의 과정에서 치르는 다양한 형태의 의례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으로 나누어 본다면 숭배 의식은 표면적인 본질이 될 것이고, 단백질 섭취는 이면적인 본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신이나 자연 등에 대한 숭배 의식은 점차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21세기의 우리 사회 역시 이 범주에 속해 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서 특별하달 것은 없지만, 심리적으로 다소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단백질 섭취라는 이면적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세기에 어려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지금과 같은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는 말은 과거에 비해 먹고 사는 데에 어려움이 훨씬 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단백질 섭취 역시 옛날처럼 그렇게 어렵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의례에서 쓰는 음식을 통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제의, 명절 등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명절이나 제의 같은 집안 행사에서 세대 간, 부부 간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이 바로 음식 준비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명절이나 제의 같은 가정의 행사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지는 상당이 오래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부분을 제대로 짚어보지 못함으로써 아직도 음식을 중심으로 하려는 관습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명절이나 제의 등 의례의 본질이 단백질 보충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한층 더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명절과 제의 등의 의례에서 음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서 의례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합당한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하겠지만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