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字一言-穴
‘穴’은 ‘구멍, 굴, 구덩이, 움집, 무덤, 혈 자리’ 등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이 글자는 상(商)나라 시대의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의 글자는 지붕 같은 덮개가 덮여 있는 모양의 아래에 개(犬) 모양을 한 것이 엎드려서 숨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이 글자는 움푹 파인 웅덩이 같은 것이면서 위, 양옆, 앞뒤가 막혀 있는 공간 속에 무엇인가가 숨어 있거나 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내기 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뚫어져 있거나 사람이 땅을 파낸 자리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인 ‘구멍’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구멍의 안에 있는 공간의 성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랜 옛날 고대사회에서 인류는 동굴에서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가장 오래된 주거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점차 땅을 파서 만든 인공 동굴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경우 평평한 땅에 아래쪽으로 구덩이를 파고 윗부분은 나무 조각이나 흙 등으로 덮은 뒤 그 속에서 거주했다. 은나라,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등의 시대에 청동 그릇 같은 것에 새겨진 글자인 금문(金文)에 이르면, 글자의 위에는 돔 모양의 구조가 있고, 아래쪽에는 두 개의 점이나 두 눈 같은 모양이 나타난다. 돔 모양은 덮개인 지붕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아랫부분은 나무 같은 것이면서 지붕을 지탱하거나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 혹은 통풍구로 보이기도 한다.
‘穴’의 위에 있는 ‘宀(집 면)’은 동서남북의 사방이 막혀 있어서 숨기에 좋은 깊은 방이라는 뜻이다. 옛날의 집은 사방이 연결된 벽으로 구성된 모양이었다. 이 글자는 ‘丨(뚫을 곤)’과 ‘冖(덮을 멱)’이 합쳐진 모양이다. ‘冖’은 옆으로 퍼져서 아래로 늘어뜨린 것이니 덮은 것을 나타내고, ‘丨’은 아래위로 통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위로 솟아난 것을 지칭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지붕, 혹은 집을 의미하게 되었다.
글자의 아래에 있는 ‘八(여덟 팔)’은 원래 나누다, 쪼개다 등의 뜻을 가진 것이었다. 즉, 어떤 사물이 둘로 나누어져서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글자는 ‘半(반 반)’, ‘分(나눌 분)’ ‘掰(늘어놓을 배)’ 등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둘로 나누어진 것, 쪼개진 것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숫자로 쓰이는 여덟이란 뜻은 나중에 가차(假借)되어 쓰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穴’에서 쓰인 ‘八’은 덮개 같은 것의 아래에 있으면서 양편으로 나누어진 것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원래의 뜻에 제대로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 ‘穴’은 움푹 파인 곳이면서 일정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 아래, 혹은 안의 공간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단순하게 구멍만을 나타내지 않고 매우 다양한 뜻으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구멍이 있는 내부 공간을 안이라고 한다면 외부 공간은 밖이 되는데,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게 되어 매우 중요한 곳(要處), 봉쇄(封鎖), 자물쇠, 걸쇠, 잠그다, 폐쇄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쓰임은 더욱 확대되어서 움을 파고 시신을 넣는 무덤 자리, 풍수지리에서 용맥(龍脈)이 모이는 자리, 사람의 몸에서 내부의 반응이 신체의 외부에 나타나는 경로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穴’은 어떤 공간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는 곳(要處) 혹은 그런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봉쇄, 막음 등의 쓰임이 중요하다. 이런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이 글자가 땅이름에 들어갈 때 한층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강화(江華)의 고구려 시대 이름인 ‘穴口’ 같은 지명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穴口’를 ‘구무’라는 우리말로만 해석하여 지금 쓰고 있는 ‘구멍’으로 보는 주장은 다시 살펴봐서 정확하게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