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汝矣島)의 어원(지명 유래)
한강 가운데에 있는 섬(河中島)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속해 있는 여의도는 대한민국 정치, 금융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서쪽 끝에는 국회의사당이 있으며, 동쪽 끝에는 63빌딩이 있고, 가운데에는 서울국제금융센터 (IFC), LG트윈타워, 전경련회관, 파크원 타워, 증권거래소 등 주요 기관과 기업의 사옥들이 즐비하다. 그야말로 여의도는 대한민국 수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이 원래부터 중요시되었던 곳은 아니었다. 여의도는 조선이 세워지면서부터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제사 희생물을 공급하기 위해 돼지와 양 등의 가축을 기르는 장소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 소속되어 음식을 만들거나 가축을 기르는 일을 했던 노비(典僕)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동물을 길렀는데, 그들의 생활이 매우 문란하여 명종 때부터는 남자만 이곳에 머물면서 일을 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여의도, 나의도, 잉화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여의도라는 명칭이 중심을 이루었다.
한자표기로만 보았을 때는 여의도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한자의 뜻풀이만으로는 그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었다’, ‘-리라’, ‘-뿐이다’ 등의 뜻을 가지면서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인 ‘矣’가 중간에 들어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여의도라는 지명의 참뜻과 어원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민족 대백과사전에서 여의도 명칭의 유래를 찾아보면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은 홍수로 섬이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되면서 이런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만든 백과사전에서 이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증거 자료로 남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간에서 어떤 호사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 것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한자의 뜻만으로 해석이 안 된다는 것은 향찰(鄕札) 표기임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향찰은 고구려에서 만들어져 신라에서 완성된 것으로 한자의 뜻(訓)과 소리(音)을 가져다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우리말은 명사+조사, 어간+어미의 두 가지 결합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명사와 어간에 해당하는 것은 한자의 뜻을 가져오고 조사와 어미에 해당하는 부분은 소리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향가가 대표적인 향찰 표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보다 더 풍부한 것은 땅이름(地名)이다. 전국의 수많은 땅이름 중 향찰로 되어 있는 것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지명도 이 중의 하나이다.
여의도의 우리말 표기는 ‘너ᄫ긔섬’이다. 지금의 말로 하면 ‘넓은 섬’ 정도가 된다. 한강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크고 넓은 섬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그림을 보면 잠실도(蠶室島)가 매우 큰 것으로 나오지만 그래도 여의도만큼 크지는 못했고, 지금도 이보다 더 큰 섬은 없다. ‘넓다’는 ‘너ᄫ그다’에서 ‘넙으다’로 되었다가 다시 ‘넙다’로 변했다가 지금의 ‘넓다’로 되었다. 한글에서 ‘ㅸ(순경음 비읍)’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분리되거나 생략될 가능성이 있는 자음이다. ‘ㅂ’이 ‘ㅇ’에서 분리되어 앞의 글자로 붙으면서 ‘넙으다’로 되었다고 보면 된다. ‘‘너ᄫ긔’에서 어간은 ‘너’가 되는데, 이것이 향찰로 표기할 때는 ‘汝(너 여)’로 되었다. 즉, ‘汝’는 어간인 ‘너’를 의미하기 때문에 뜻을 취해서 이렇게 만들었다. ‘너ᄫ긔’에서 어미에 해당하는 것이 ‘ᄫ긔’인데, ‘ㅂ’이 생략되거나 앞으로 붙으면서 사라지고 ‘의’만 남게 된다. 이것은 어미이기 때문에 향찰로 표기할 때는 소리를 취하기 때문에 ‘矣(어조사 의)’로 되어 ‘의’로 발음 나게 된 것이다. 마지막 글자인 ‘島’는 명사이기 때문에 ‘섬’이라는 우리말을 그대로 살려서 한자의 뜻을 취해서 표기했다.
‘너ᄫ긔섬’, 혹은 넓은 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섬을 향찰로 표기하면서 汝矣島로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섬은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차오르고 인천 앞의 바닷물이 역류하면 잠기는 일이 빈번하였다. 물이 들어왔다 나간 뒤에는 모래가 쌓이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여의도는 모래땅이 되었다. 물이 빠진 모래땅은 매우 단단하므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이곳에 비행장을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1968년도에 발표된 ‘마포종점’이란 노래 가사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라는 표현이 이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한강을 정비하면서 행주산성 아래쪽에 행주 수중보를 만들어서 바닷물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에는 선유봉(선유도)의 돌을 캐서 윤중로 둑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인해 여의도는 홍수에서 자유롭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