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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계 Aug 20. 2024

매를 번다 어원

‘매를 번다’의 유래, 혹은 어원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중에 ‘매를 번다(벌다).’, ‘매를 벌어요.’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것은 명사 ‘매’, 목적격 조사 ‘-를’, 동사 ‘벌다’의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한 문장인데, 명사와 동사의 연결이 일상적인 언어 현상과는 좀 거리가 있다. ‘벌다’라는 동사는 ‘일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하여 돈 따위를 얻거나 모음’이라는 것이 기본 뜻이기 때문에 긍정적이거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됨을 나타낸다. 그런데, ‘매’라는 것은 자기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 할 수 있어서 ‘벌다’라는 말과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이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두 개의 말이 어떤 사연으로 이렇게 결합해서 지금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낸 것일까! 여기에는 과거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일정한 사회적 현상이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매를 벌다’라는 표현이 가지는 특징부터 살펴보자.      


사람이나 짐승 등을 때리는 막대기, 몽둥이, 회초리, 곤장(棍杖), 방망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 ‘매’가 중심을 이루는 우리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매를 벌다’라는 것과 대비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에 ‘매맞을 짓을 했다.’, ‘매를 맞아도 싸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것은 ‘매’라는 물질을 통해 육체적으로 이미 고통을 받은 물리적 현상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과거형인 데다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임을 강조한다. 즉, 이 말은 직설적, 현상적, 노골적 표현으로 됨과 동시에 징벌적 고통을 강조하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것이 된다. 한편, ‘매를 벌다’라는 말은, ‘매를 벌어요’, ‘매를 벌어라’, ‘매를 버네’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쓰이는데, 미래형인 데다가 말하는 사람의 정서적인 감정이 상당히 많이 실려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 문장에 실려서 표현되는 감정은 혐오나 미움이 아니라 살뜰한 애정이나 긍정적 관심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 표현은 말하는 사람과 상대가 되는 사람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이 표현이 위와 같은 느낌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벌다’라는 말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가난한 서민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매우 극한적인 직업 같은 것이 여럿 있었는데, 누군가를 대신하여 매를 맞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매 벌이’, 혹은 매품팔이(代杖)’라는 것이 있었다. 어느 시대나 범죄행위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그 대가로 벌을 받는데, 조선 시대에는 죄를 지은 정도에 맞추어서 곤장을 맞아야 하는 형벌이 있었다. 곤(棍)은 버드나무로 넓적하게 만든 긴 막대기이며, 장(杖)은 가시나무로 만든 가느다란 몽둥이를 말한다. 죄를 지어서 곤장의 형벌을 받는 사람에게 돈으로 대신 내도록 하는 속전(贖錢)이라는 제도를 나라에서 만들었는데, 이것이 점차 변질되어 민간으로 퍼지면서 ‘매품팔이’ 같은 이상한 직업 아닌 직업이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은 이 방법으로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으므로 점차 널리 퍼졌는데, 고전 소설 중 ‘흥부전’에도 ‘매품팔이’가 등장한다. 흥부가 관청에 가서 돈을 받고 매를 대신 맞으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다른 사람에게 새치기당해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18세기의 사대부인 성대중(成大中)이 지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매품팔이’를 하다가 봉변을 당했거나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소설에 등장할 정도라면 이런 일이 조선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 현상은 ‘매로 돈을 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니, ‘매’와 ‘벌이, 벌다’가 연결될 가능성을 이미 확보한 셈이 된다. 지금의 문장만으로 보면, ‘자기 스스로가 원해서 매를 맞으려고 한다’라는 뜻이 되어 ‘매를 더한다.’, ‘매를 만든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근원을 따져 들어가 보면 과거의 사회적 현상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부인의 강요에 따라 곤장 100대씩 맞고 돈을 받는 일을 하루에 세 번이나 했다가 죽음에 이른 이야기가 �청성잡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면, 매로 번 돈을 받는 사람에게는 ‘매 벌이’가 쏠쏠한 수입원이 되면서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 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매를 맞고, 혹은 매로 돈을 버는 사회적 현상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의 ‘매를 벌다’라는 표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     


죄를 지어 곤장의 형벌을 받게 된 사람 대신 매를 맞고 그 대가를 돈으로 받았던 조선 시대에는 ‘매로 돈을 벌다’, 혹은 ‘매를 맞고 돈을 벌다’ 정도의 표현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두 문장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로’와 ‘를’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로’와 ‘를’이 서로 교차해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임의 방향이나 경로를 나타내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조사인 ‘로’는 수단, 도구, 원인, 이유, 지위, 신분, 시간 등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특정의 동사와 함께 쓰여 대상을 나타내는 격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여금’, ‘더불어’와 같은 말을 뒤에 오게 하여 목적이 되는 대상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로 하여금(나를) 정의와 진리의 헌신자로 되게 하소서’ 같은 문장이 그것이다. 이런 방식의 표현은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영남 지방에서 널리 쓰였는데, ‘나를 가지고 자꾸 그러지 말라’라는 뜻의 문장을, ‘날로 가지고 자꾸 그러지 말라’ 같은 문장으로 사용했다는 것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위의 두 문장에서 ‘돈을’과 ‘맞고 돈을’이라는 표현을 제거하면, ‘매로 벌다’, ‘매를 벌다’와 같은 방식으로 된다. 현재는 ‘를’로 통합되면서 ‘로’를 쓰지 않게 되었지만 ‘매로 벌다’가 ‘매를 벌다’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사회가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과거에 매우 풍부했던 어휘들이 어느 한 방향으로 통합되면서 단순화됨으로써 표현의 퇴보를 불러오고 있는데, 이 경우가 바로 여기에 들어가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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