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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계 Jul 25. 2024

먹통의 어원

먹통의 어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먹통이 되었다.”, 혹은 “먹통이다.” 등의 표현을 많이 쓰고, 또 듣는다.

잘 작동해야 할 사회적 장치나 물건, 서비스 등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버렸을 때 보통 이 말을 쓴다. 사리에 밝지 못하면서 자기 생각만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답답한 사람을 놀림조로 말할 때도 먹통이란 것을 썼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이처럼 많이 쓰이는 관용어인 “먹통이 되었다.” 등의 관용구에서 ‘먹통’이란 표현은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먹통은 목공이나 석공들이 나무로 된 통에 먹물을 넣어두었다가 실을 그곳으로 지나가도록 하여 먹물을 묻힌 다음에 자재를 가공하기 위한 선을 긋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를 지칭한다. 먹물이 들어 있어서 먹桶(그릇 통)이라고 쓰는데(표준국어대사전), 이것에서 지금 관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먹통이 되었다는 표현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주장이다. 그런데, 목공이나 석공들이 쓰는 먹통이 무엇인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있으며,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목공이 쓰는 먹통은 검은 물감을 넣어 놓는 것은 맞지만, 뚜껑이 없어서 먹물을 묻힌 검정 솜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검은색을 의미하는 우리 말인 ‘먹’과 통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어 ‘通’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어느 것에도 통하지 않는 것이나 상태를 말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이것 역시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어디에서도 그 유래나 어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관용구에서 먹통이란 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먹통이란 말이 쓰이는 표현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목공이나 석공이 줄 긋는 도구로 쓰는 것, 둘째, 글씨를 쓰기 위해 먹물을 넣어서 다니는 통, 셋째, 검은 물을 몸속에 감추고 있는 오징어의 먹통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먹통이 되었다.”라는 관용어의 유래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바로 오징어의 먹통이다. 오징어는 자기보다 강한 적을 만나면 몸에 가지고 있던 검은 물을 뿌려 상대의 앞을 보이지 않게 한 다음 재빨리 그 위기에서 도망치거나 먹이감을 발견했을 때도 먹물을 뿌려 주변을 보이지 않게 만든 후 잡아먹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벗어나거나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존재가 바로 오징어이며, 그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먹통에 든 먹물이라는 것이다. 오징어의 먹물과 먹통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름의 유래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오징어는 순우리말 같아 보이지만 한자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징어의 한자 이름은, 烏鰂魚(오즉어), 花枝魚(화지어-오징어 다리에 여러 개 붙어 있는 흡반을 꽃이라고 보고, 다리를 가지라고 생각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烏賊魚(오적어), 墨斗魚(묵두어), 墨魚(묵어) 등이 있다. 이 이름 중 하나만 제외하고 모두 검다는 뜻이 들어 있다. 墨은 먹을 지칭하기 때문에 검다는 뜻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烏(까마귀 오)는 검은 털을 가진 새를 본떠서 만든 象形字로 동물을 지칭하지만, 형용사로 쓰일 때는 ‘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까마귀 털이 검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즉어와 오적어가 바로 이 경우인데, 여기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속이다, 사기를 치다 등의 뜻으로 쓰였다. 오적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인데, 이것은 ‘검은 것으로 적을 속이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오징어가 적을 만나면 먹물을 뿌려서 보이지 않게 하는 속임수를 쓴 다음 재빨리 도망가는 것에 착안해서 붙인 이름이다.      


오징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19세기 초에 丁若銓(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가 생활하면서 쓴 �玆山魚譜�에서 까마귀를 잡아먹는 물고기라고 하면서 ‘까마귀의 적’, 혹은 ‘까마귀 도적’이라는 어원을 가진다고 한 이래 그것이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글을 잘 읽어보면, 이것은 섬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으로 논리적인 근거나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글이나 언론에서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재고해 볼 만한 문제이다. 오징어의 주요 먹이는 크기가 작은 연체동물이나 작은 갑각류이기 때문에 땅위에서 주로 활동하는 까마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오징어의 어원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징어의 어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烏鰂魚, 혹은 烏賊魚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烏鰂魚는 우리말로는 ‘오즉어’, 혹은 ‘오직어’로 발음 되는데, 여기에서 ㄱ이 탈락하고 ㅇ이 붙은 형태가 바로 오징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烏賊魚도 마찬가지다. 오적어, 오직어, 오징어로 변화되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검은 것으로 적을 속여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위기 탈출 작전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기를 치는 천재라는 뜻이다. 오징어 먹물이 인간 세상에 알려지면서 또 하나의 사기 수법이 이것으로 인해 만들어졌는데, 오징어 먹물로 계약서를 쓰다는 뜻을 가진 烏賊契(오적계-우리나라에서는 烏賊魚 墨契라고 하는데,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가 바로 그것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에는 선명하게 보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계약서를 쓸 때 오징어먹물로 서류를 작성하여 재물을 빼앗은 다음, 소송을 할 때에는 계약서에 글자 자체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가 되어 승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오징어의 위장술과 탈출 기술이 인간에게 와서는 완전한 사기술로 바뀐 셈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쓴 후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그것을 바닷물에 담그면 글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도 있다. 이 내용은 조선 후기 李德懋가 지은 �청장관전서� 제68권 「한죽당섭필상(寒竹堂涉筆上)」, 오징어 먹(烏鱡魚墨)이란 제목 글 속에 있다.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오징어의 먹물을 담고 있는 먹통이 하나의 관용어로 되면서 무엇인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혹은 무엇인가가 고장이 나서 어느 것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 등을 나타내는 ‘먹통이다.’, ‘먹통이 되었다’ 등으로 쓰이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뒤가 꽉 막혀서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오징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쓸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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