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다’의 어원
국어사전에서는 ‘어이없다’의 뜻을,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로 풀이하면서 ‘어처구니없다’와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어이’와 ‘어처구니’의 뜻을 찾아보면,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풀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표현의 뜻과는 아주 거리가 멀거나 전혀 엉뚱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실제 말을 할 때는 이런 뜻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참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이’와 ‘어처구니’가 실제로 쓰인 문장에서 쓰인 뜻과 사전에서 말하는 뜻이 너무 맞지 않아서 아무리 봐도 사전의 설명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다면, ‘어이’라는 단어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현존하는 문헌으로 볼 때 ‘어이없다’라는 말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나타난 것으로 파악된다. 16세기 자료로는 순천김씨묘를 이장하다가 출토된 언문 편지(簡札)가 있고, 17세기 이후 것으로는 첩해신어(捷解新語), 계축일기(癸丑日記), 남원고사(南原古事) 등이 있다. 이 기록들에서는 ‘어히업시’, ‘어히업서(셔)’ 등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어이’는 ‘어히’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ㅎ’, ‘ᅟ긍’, ‘ㅇ’ 등은 연결되어 있는 데다 ‘ㅇ’은 음가가 없었으므로 현대어에서 ‘ㅇ’은 ‘ㅎ’로 표기되었다. 그러므로 ‘어히’는 현대어의 ‘어이’가 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늙은 인들이 의인 왕후 겨오신 웃뎐 셤기던 일을 보아다가 어히업시 너기더이 이 말을 뎐이 듯고.(계축일기)
어와 어와 어히업시 니심이야 五十 束 드린 公木을 다 나므라고.(첩해신어)
어 먼니 셔셔 모녀의 거동을 보다가 어히업고 긔가 막혀 눈물을 먹음고 날호여 나아가 말이 츈향어미 등불 드쇼 얼골이나 셰 보셰(南原古事)
위 자료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어이없다’와 같은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표현은 ‘어이(어히’와 ‘없이(업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형태로 파악되므로 ‘어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알면 그 어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이’의 어원이나 유래 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어떤 이는 ‘어의(語義, 語意)라고 하면서 말의 뜻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어이(어히)’는 ‘어떻게’, ‘어찌하여’라는 뜻이라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말에서 서술어 앞에는 부사어가 직접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사어 그 외에도 ‘어디’라는 뜻을 가진 ‘어처(於處)’에서 변형되었다는 주장, ‘어찌’라는 부사어가 변형되었다는 주장 등이 난무하지만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추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이’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에 대한 어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없다’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서 ‘없다’라는 말은 매우 다양하게 쓰이는데, 사람, 동물, 물체 따위나 어떤 사실이나 현상 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가장 중심적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형용사이기 때문에 서술어로 쓰이는데, 위와 같은 뜻으로 쓰일 때는 ‘없다’ 앞에 주어나 목적어가 오는 것이 정상이다. 주어와 목적어는 명사이어야 하며, 그것 뒤에 조사가 붙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없다’ 앞에는 주격이나 목적격 조사인 ‘가’, ‘는’, ‘이’ 등이 오며, 조사 앞에는 명사가 온다. 그러므로 ‘없다’ 앞에는 ‘어찌’, ‘어떻게’ 같은 부사가 올 수 없다. 우리말에서 조사는 생략될 수 있으므로 명사와 ‘없다’가 직접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이없다’가 가능하게 된다. 물론 ‘어이가 없다’도 가능하다.
이처럼 ‘어이’는 명사임이 명백하므로 이것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순우리말처럼 보이는 ‘어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떤 문헌이나 자료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소리가 비슷하다고 하여 무조건 연결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명사의 9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라는 사실을 참고하면 한자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없다’라는 서술어 앞에 오는 명사는 대부분이 한자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귀신이 없다, 기회가 없다, 이유가 없다 등의 표현에서 한자어 명사가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없다’, ‘개구리가 없다’, ‘물고기가 없다’ 등에서처럼 사물을 지칭하는 순우리말 명사도 올 수 있지만, 이보다 복잡한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말 중에는 한자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어이’를 순우리말 명사로 볼 때는 관용적으로 쓰는 뜻과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이 성립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 하면, ‘어이없다’에서 ‘어이’는 ‘魚耳’에서 어원을 찾는 것이 단어의 뜻으로 보나 관용적 표현이 가지는 의미로 보나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사람이 중심을 이루는 육지 동물과는 달리 물고기의 귀는 겉으로 돌출되거나 드러나 있지 않다. 물고기는 외이와 중이는 없고, 안에 있는 내이(內耳)만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 귀는 머리 속에 들어 있어서 소리를 듣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밖에서 볼 때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고기에 귀가 없다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기원전 2세기경에 지어진 회남자(淮南子)에는, ‘새삼[兎絲]은 뿌리가 없어도 나고, 뱀은 발이 없어도 다니고, 물고기는 귀가 없어 듣고, 매미는 입이 없어도 마신다(兎絲無根而生 蛇無足而行 魚無耳而聽 蟬無口而飲).’라고 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어무이(魚無耳)라는 글에서, ‘물고기의 귀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다(未知魚之有耳與否耳)’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있다. ‘물고기에 귀가 없다’, ‘물고기 귀는 없다’에 해당하는 한자 표현으로는 몰어이(沒魚耳), 무어이(無魚耳), 어무이(魚無耳) 등이 가능한데, 이것을 주어나 목적어로 쓰이는 명사는 한자로 쓰고, 서술어로 쓰이는 것은 우리말의 동사, 형용사를 써서 결합한 표현인 ‘어이없다’, 혹은 ‘어이가 없다’ 등의 문장 결합 방식이 가능함을 알 수 점칠 수 있게 된다. 물고기에 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야말로 사람이나 여타 육지 동물과는 매우 크게 다르기 때문에 말문이나 기가 막힐 정도로 황당한 현상이나 일에 대해 말할 때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척군(魚脊群)+이’가 ‘어쳑군이’로 되었다가 점차 ‘어처구니’로 된 것과 같다.
물론 이런 주장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표현과 완전히 같은 뜻으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는 문헌적 자료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엉터리 주장이라고 치부해 버려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고자 하는 글이나 국어사전 등 어떤 곳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서 그 말의 어원이나 유래를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수많은 문헌과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