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字一言, 興
우리말로는 약하거나 희미하던 것이 성(盛)하게 되거나 위로 솟아오르다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興은 몇 개의 글자 요소가 합쳐져서 새로운 뜻을 나타내도록 만들어진 회의자(會意字)이다. 이 글자는 갑골문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초기 문자에서는 글자의 중앙에는 들것, 혹은 가마처럼 생긴 모양이 있고,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사람 손이 그려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사람 넷이 네 귀퉁이에서 중간에 있는 물건을 들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興은 여러 개의 손으로 힘을 합쳐서 무거운 어떤 물체를 들어서 올리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올린다)는 뜻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후대로 오면서 이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는데, 구체적이면서 물질적인 어떤 것에서부터 추상적인 부분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의 興은 글자의 중간 부분이 하나의 커다란 대야, 혹은 쟁반, 가마, 들것 등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목욕이나 세면을 하는 용기로 일종의 큰 쟁반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사람을 태워서 옮기는 가마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에 사용되는 도구인 들것의 형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매우 무거운 물건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은허 유적에서 발견된 유적을 보면, 네 귀퉁이에 있는 손잡이에 구멍이 2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밧줄을 매어서 어깨에 메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갑골문에서 등장하는 글자가 네 귀퉁이에 네 개의 사람 손이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네 귀퉁에 네 사람의 손이 가마(肩輿)를 들어 올리는 것을 형상화하여 나타낸 글자가 바로 興의 초기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주(西周) 시대에 이르면 가마의 모양 아래에 口(입 구)가 추가되는 모양을 보이는데, 이것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힘을 주어서 무거운 것을 효과적으로 들어 올리도록 하기 위한 신호음(口令)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진(秦)나라 때 소전(小篆)에 이르러서는 아래와 위의 손 모양에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가마의 모양에 口가 추가된 형태였던 글자의 중간 모양은 同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나라 때 예서(隸書)에 이르러서는 위의 두 개 손 모양은 臼(절구 구)로 바뀌고, 아래 두 개의 손은 一과 八처럼 생긴 기울어진 두 개의 획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모양의 예서를 바탕으로 해서(楷書)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모양과 같은 興으로 정착되었다. 초서체에서는 兴으로 썼는데, 지금의 간체자(簡體字)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를 함께 들어 올린다는 것을 기본적인 뜻으로 시작했던 興은 아직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았지만, 곧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일어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면서 시작하다, 발사하다, 창립하다, 흥기하다, 번창하다, 성공하다, 창성하다, 좋아하다 등의 뜻으로 더욱 확대되었고, 문학에서는 외부 사물 현상에 의탁하여 화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 기쁨의 정취를 나타내는 표현 방법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 말에서는 흥을 일으키다 같은 표현도 가능하게 되었다. 興은 참으로 재미있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