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문화사(8)-춘천(春川)
강원도청이 자리하고 있는 춘천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복잡한 지역 중의 하나였다.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펼 때는 그쪽 땅이었고, 백제가 북진 정책으로 일관할 때는 다시 백제의 땅이 되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신라가 북쪽으로 팽창하면서는 또 신라의 땅이 되었다. 특히 신라에 있어서는 북쪽과 북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더욱 중요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땅이름은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오근내(烏斤乃), 우수주(牛首州), 수차약주(首次若州), 수약주(首若州), 삭주(朔州), 춘주(春州), 광해주(光海州) 우두주(牛頭州), 수춘(壽春), 봉산(鳳山), 춘천(春川) 등인데, 우리 역사에서 이처럼 다양한 이름을 가졌던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춘천 지역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춘천의 땅이름에 사용되었던 ‘烏’, ‘牛’, ‘首’, ‘朔’, ‘春’, ‘鳳’, ‘壽’, ‘光’ 등에 들어있는 뜻이 시대를 관통하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한데, 가장 오래된 지명부터 차례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로 볼 때 오근내라는 땅이름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고구려의 것이라는 기록이 없는 관계로 신라에서 붙인 지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삼국사기 등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옛 지명은 대부분이 이두(吏讀)로 되어 있는데, 오근내는 그렇게 보기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만 신라에도 이두가 있었던 만큼 신라식 이두일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후대에 붙여진 땅이름과 연관시켜 분석하여 ‘오근내’를 풀어내면 ‘북쪽에 있는 으뜸가는 고을’이라는 뜻이 된다. 몸 전체가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새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烏’는 ‘까마귀’가 대표적인 뜻이다. 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임이 확대되는데, 형용사로 쓰일 때는 ‘검은(黑)’이라는 뜻으로 된다. 또한 지시대명사로 쓰일 때는 어찌(何), 감탄사로 쓰일 때는 슬플 때나 탄식을 나타내는 소리(嗚呼)로 쓰이기도 한다.
‘검은’은 문화적 상황과 결합함으로써 그 쓰임이 한층 넓어 지는데, 물, 북쪽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검은’이 ‘북쪽’과 연결되는 이유는 ‘물’의 색을 검은 것으로 보아서인데, 지구의 북반부에 있는 대부분의 땅은 물이 북쪽에서 나와 남서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오근내에서 ‘烏’는 ‘북방’, 혹은 ‘북쪽’이라는 뜻으로 쓰여서 문화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라에서 이런 뜻으로 땅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경주에서 봤을 때 춘천은 최북방의 지역인 데다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신라는 서울인 경주가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통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의 주인이 된 뒤 경덕왕 시대에는 신라 전역을 아홉 개의 주(九州)로 나누고 다섯 개의 작은 서울(五小京)을 두어 통치를 원활하게 할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에서도 어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강 유역은 서쪽으로 중국과의 교통을 위해 중요했을 것이고, 춘천 지역은 북쪽과 북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의 구실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춘천 지역은 북방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烏’는 북방을 나타내기 위한 땅이름의 구성요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후대의 땅이름인 우수주의 ‘牛(소 우, 아홉째 별자리 우)’와 경덕왕 시대에 고친 삭주의 ‘朔(북방 삭, 처음 삭, 초하루 삭)’ 등과 대응하고 있다.
‘斤(도끼 근)’은 굽은 자루가 달린 도끼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목공 용구의 하나였던 이것은 나무를 자르거나 땅을 가는 데에 쓰이는 생산 도구이기도 하고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무기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전쟁에서는 창이나 칼처럼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도끼는 도구로서나 무기로서나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존재인데, 창이나 칼 등은 전쟁이라는 것이 생겨난 뒤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도끼는 생활상 필요에 따라 구석기 시대나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날을 이용해서 나무를 자르거나 쪼개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했으니 오랜 역사를 가진 도끼가 목공 도구나 무기 중에서도 으뜸일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도끼의 머리를 본떠서 만든 글자인 ‘斤’은 ‘머리’, ‘꼭대기’ 등의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乃(이에 내)’는 매우 어려운 글자다. 이 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조차 알기 어렵고 그 모양에서 무엇인가를 뽑아내기도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이 글자가 우리말에서 어떤 용법으로 쓰였느냐를 알아내는 것도 어렵고 이두에서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두는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인데, ‘오근내’의 ‘乃’는 소리를 빌려 온 것으로 보인다. ‘오근내’에 대응하는 후대의 땅이름인 우수주, 수약주, 수차약주, 삭주, 춘주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乃’는 시내보다는 크고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를 뜻하는 ‘내’가 되는데, 한자로는 ‘川’, 혹은 ‘州’로 연결되기 때문에 ‘고을’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현전하는 자료로 볼 때 춘천의 가장 오래된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오근내’는 ‘신라의 북방에 있으면서 으뜸이 될 정도로 중요한 고을’이라는 뜻이 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이보다 후대에 생긴 지명으로는 ‘우수주’가 있는데, 이것은 ‘오근내’가 품고 있었던 뜻을 없애거나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더욱 절묘하다. ‘우수주(牛首州)’는 선덕여왕 때인 637년에 춘천 지역 땅이름으로 정했는데, 문무왕 시대인 673년에는 수약주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꾸었다. 수차약이라는 이름도 있다고 했으나 어느 시대에 이런 이름이 정해졌는지를 기록한 자료는 없다. 우수주 같은 명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는데, 우리말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烏’와 ‘牛’를 우리말 소리로 보고 해석하려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牛’는 하늘의 방위를 나타내는 28수(二十八宿)의 두우성(斗牛星)을 지칭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두우’는 북쪽을 지칭하는 일곱 별자리(斗牛女虛危室壁)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것으로 북방을 대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두칠성 자리인데, 두 별을 각각으로 보면 두성은 북두칠성이고, 우성은 견우성이 된다. 모두 북쪽을 대표하는 신령한 별자리다. 그러므로 우수주에서 ‘牛’는 ‘烏’와 마찬가지로 북방이 된다.
‘首(머리 수)’는 상형자(象形字)인데, 위는 머리털의 모양을 그린 것이고 아래는 머리 모양을 그린 것이다. 동물에게 있어서 머리는 몸의 맨 위에 있는 것이면서 유기체의 신경중추계를 관장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이 글자는 ‘첫 번째’, ‘재상(宰相-총리)’, ‘우두머리’, ‘으뜸’ 등의 뜻으로 쓰인다.
州(고을 주)는 내를 의미하는 川(내 천)과 丶(점 주) 세 개가 있는 모양을 가진 글자로 상형자다. 이 글자는 강과 강 사이에 있는 땅이면서 높고 평평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고을, 마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점차 큰 도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우수주라는 땅이름은 ‘북방의 으뜸가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되어 오근내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수주는 문무왕 시대인 673년에 수약주, 혹은 수차약주로 바뀌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시대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 군대는 대동강 이북으로 물러가서 명실공히 신라가 한반도의 주인이 된 때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이 시대에는 굳이 북방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서 수약주라는 지명으로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若(같을 약)’의 사람이 손을 올려 머리털을 정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따르다, 순응하다 등을 기본으로 한다. 후대로 오면서 여러 분야에서 가차(假借) 되었는데, 모양(像), 도달(到達), 2인칭 대명사(您, 乃), 만일(假如), 높은 곳(高處) 등을 표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이 글자는 사람이 모여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높고 평평한 땅을 뜻하면서 지명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이 뜻으로 쓰였다.
수약주와 비슷한 땅이름으로 수차약주(首次若州)가 있는데, 首次는 시간의 앞과 뒤를 나타내는 시간부사이다. 맨 앞, 첫 번째, 처음, 머리 등의 뜻을 가지면서 시간적 서열 중에서 제1차로 발생하는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표현과 ‘首’는 같거나 비슷한 뜻이 될 수밖에 없다. 수차약주는 수약주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춘천 지역은 광해(光海) 수춘(壽春)ㆍ봉산(鳳山) 등의 지명으로 불린 적도 있는데, 모두 ‘으뜸으로 큰’, ‘으뜸으로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모두 오근내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수주, 수약주 등 신라 때의 땅이름과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춘천 지역의 지명은 고려 태조 때인 940년에 춘주(春州)로 바뀐다. 이때 비로소 ‘春’이라는 글자가 정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은 그대로 쓰이고 있다.
‘春’은 세 개의 “木(나무 목)‘과 하나의 ‘日(해 일)’이 아래위로 있고 중간에는 ‘屯(처음 올라오는 싹 둔, 진칠 둔)’이 자리하고 있는 형태의 글자다. 태양이 비취면서 풀과 나무의 씨앗이 움을 틔워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지칭한다. 이 글자는 ‘봄’이 기본적인 뜻이지만 확장되어 쓰이는 의미는 매우 넓다. 천지의 개벽, 시작, 처음, 일 년의 시작, 사계절의 시작, 으뜸, 첫째, 머리 등이 그것이다.
이 글자가 땅이름에 쓰일 때는 ‘봄’이라는 뜻을 취하지 않고, 확장된 의미를 중심으로 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춘천에서 ‘春’은 ‘으뜸’의 뜻으로 쓰였다. ‘川’이 높고 평평한 땅으로 사람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이어서 ‘고을’, ‘큰 도시’ 등의 뜻을 가지는 ‘州’와 같은 용법으로 쓰이므로 ‘춘천’은 ‘으뜸 고을’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던 신라는 북방으로 진출하여 국력과 영토를 키워야 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북방의 으뜸 고을’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오근내’, ‘우수주’, ‘수약주’ 등이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는 ‘으뜸 고을’이란 의미를 가지는 ‘춘주’와 ‘춘천’으로 되었고,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으니 놀라울 정도로 경탄스럽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