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문화사(17)-수원(水原)
경기도청이 자리하고 있는 수원은 마한(馬韓)에 속해 있던 모수국(牟水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온조(溫祚)가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우면서 백제의 땅이 되었는데, 곧이어 고구려가 차지하여 매홀군(買忽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가 다시 신라가 차지하였는데, 경덕왕 때인 757년에 수성군(水城郡)으로 바꾸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수주(水州)로 고쳤는데, 원종 때인 1271년에는 수원으로 고쳤다. 1271년에 고친 수원이란 지명은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다.
수원이란 땅이름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모수’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牟(소 우는 소리 모)는 소가 우는 소리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하여 만든 글자로 지사자(指事字)에 속하지만 여러 가지 뜻과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지명이나 나라 이름 등으로 쓰일 때는 첫째, 흙이 쌓여 있는 높고 넓은 땅(陪), 둘째, 넓고 큰(大, 博大), 셋째, 매우 빼어남, 훌륭함(過, 進) 등의 뜻을 가진다.
水(물 수)는 물을 지칭하는 글자지만 지명에서 이 글자가 맨 끝에 오면 고을, 마을,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등의 뜻으로 쓰인다. 水, 川(내 천), 州(고을 주)가 모두 하나의 뜻으로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이유는 옛날에 사람들이 주로 물 옆 높은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수국이라는 이름은 ‘크고 넓은 땅의 나라’가 된다. 마한에 속한 55개의 작은 나라 중에서 크고 넓은 땅을 가진 곳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미가 후대의 땅이름에 그대로 반영되어 전해온다는 사실이다.
고구려가 차지한 뒤에 수원 지역은 ‘매홀’로 되었는데, 이것은 이두(吏讀) 표기다. 買(살 매)는 고구려 땅이름에 많이 쓰였는데, 지명의 맨 앞에 올 때와 맨 뒤에 올 때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이 글자가 지명의 맨 앞에 올 때는 물(水)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는 일반명사로 쓰이고, 맨 뒤에 올 때는 고을의 뜻을 나타내는 내(川)로 된다. 수원의 옛 지명인 ‘매홀’에서는 앞에 놓였기 때문에 일단 ‘물’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한층 깊은 뜻이 숨어 있다.
忽(문득 홀)은 이두 표기 지명에서 골, 혹은 고을(州), 재(城) 등으로 쓰인다. 한자에서 城(재 성)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싼 공간의 안쪽을 지칭하는데, 높고 평평한 땅이면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말한다. 州는 내(川)와 내 사이에 있으면서 불룩하게 높은 곳으로 평평한 땅을 지칭하는데,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으므로 역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 고구려의 이두 지명 표기에서 忽은 城, 州, 川, 原 등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므로 매홀이란 이름을 한자어로 옮기면 水城, 혹은 水州가 된다.
‘매홀’이란 땅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으로 바뀌는데, 원래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자로 변경했다. 여기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水’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물이라는 뜻으로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대에 따라 땅이름이 약간씩 변화를 겪는데, 신라 때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水가 지금까지도 지명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속에 담긴 뜻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水’는 물이 흐르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로 ‘물’, 혹은 ‘물의 흐름’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이 글자는 물과 관계된 여러 가지 것들을 나타내는 데에도 쓰이는데, 물이 있는 구역(水域) 일체인 江, 河, 湖 , 海, 雨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또한 이 글자는 부수로 쓰이기도 하는데, 물과 관련된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이 지닌 속성을 활용하여 더욱 확장된 쓰임을 가지기도 한다. 물의 핵심적인 속성 중 하나가 어떤 경우에도 높낮이가 없고 들어가고 나옴이 없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것에서 다양한 쓰임이 파생되었다. 그중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물은 어떤 경우에 처하든 고르고 평평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파생된 것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비교, 판단할 때의 근거가 되는 뜻을 가지는 기준(基準)이라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水는 準(준할 준, 평평할 준, 본보기 준)을 기본적인 뜻으로 한다. 즉, 水는 물을 나타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준점, 수준 등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다. 해수면(海水面)을 기준점으로 하여 육지의 높이를 판단하는 것이 물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도 물의 이런 성질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발(海拔)의 개념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일정한 땅을 기준점으로 하여 높낮이를 비교했는데, 이것이 바로 땅이름의 맨 앞에 水가 쓰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가치나 질 따위의 기준이 되는 일정한 표준이나 정도를 수준(水準)이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드는 물의 성질을 근거로 만들어진 말이다. 특히 문화적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지명에 쓰일 때는 기준, 수준, 바탕 등을 중심으로 하는데, 수원이라는 땅이름에서 바로 그런 뜻으로 쓰였다. 즉, 수원에서 ‘水’는 물이 아니라 기준, 표준, 본보기, 바탕 등의 뜻이다.
이제 수원 지역의 땅이름에서 뒤에 쓰인 글자들인 城, 州, 原 등에 대해 살펴보자. ‘城’은 담장이 둘러 있는 곳의 안쪽에서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丁)가 도끼를 들고 지키는 공간을 뜻한다. ‘城’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의 경계 지점에 높고 튼튼한 담장을 사방으로 둘러친 다음 무기를 들고 지키면서 바깥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막아냄으로써 안전하고 평안한 공간을 확보한 상태를 의미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명에 ‘城’이 쓰이면 川이나 州와 같은 의미가 된다. 州는 강과 강, 물과 물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넓으면서 높게 솟아 있어서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피해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땅을 지칭했다. 그러다가 후대로 오면서 점차 큰 도시를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 글자가 들어가 있는 지명들이 많은데, 상당히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땅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原(근원 원)은 비탈진 산기슭 같은 곳의 돌 틈 사이 같은 데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로 泉(샘 천)과 厂(기슭 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회의자(會意字)다. 이 글자는 ‘물이 시작되는 곳’, ‘처음’, ‘시작’, ‘근본’, ‘기원’ 등을 기본적인 뜻으로 한다. 언덕, 들판이라는 뜻은 후대에 와서 가차(假借)한 것인데, 넓고 평평하다(廣平)는 것을 나타내면서 고을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수원 지역을 지칭하는 앞 시대의 지명에 쓰인 ‘城’, ‘州’ 등과 연결해 보았을 때 여기에 쓰인 ‘原’은 고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그러므로 수원이란 땅이름은 ‘한반도 땅의 기준이 되는 지역’, 혹은 ‘기준이 되는 고을’이라는 뜻이 된다. 기준(基準), 혹은 수준(水準)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잘 발견되지 않는데, 수원을 순우리말로 옮긴다면 ‘바탕 고을’ 정도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수원은 우리나라에서 땅의 성질이나 높낮이 등을 평가하는 기준, 혹은 표준이 되는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땅이름이 된다.
일정한 공간의 땅을 기준으로 그것이 가진 성질이나 높낮이를 평가하지만, 그것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 언제나 물이었다는 사실을 보면 현대에 와서 도입된 해발 개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수원은 조상들의 지혜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녹아들어서 오롯이 남아 전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