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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싫다 와 보기 싫다

by 죽계

‘보기 싫다’와 ‘보도 싫다’의 차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말 중에 ‘보기 싫다’라는 표현이 있다.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매우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이다. 현대사회는 우회적이고 부드러운 것보다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것들이 성행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보기 싫다’도 이런 종류의 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직설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지만 ‘보기 싫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것 중에 ‘보도 싫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보기도 싫다’라는 말에서 ‘기’를 뺀 것인데, 매우 부드러운 데다가 말하는 사람이 정말로 전달하려고 하는 바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그저 그런 말인 것처럼 듣거나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회적이면서 부드러운 듯한 이 표현에는 날카로운 칼날보다 더 무서운 의도와 의미가 감추어져 있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말에서 ‘보다’는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안다는 뜻을 가진 동사이다. 그리고 ‘싫다’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지칭하는 형용사이다. 이 두 낱말이 합쳐지면, 어떤 대상이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보는 것이 매우 싫다는 뜻이 된다. 현재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보기 싫다’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기도 싫다’의 줄임말인 ‘보도 싫다’라는 표현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뜻과 무서운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너의 모든 것이 매우 싫은데, 이제는 보는 것조차도 싫다는 뜻이다.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네가 싫다는 뜻이다. 얼마나 싫으면 나머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보는 것조차도 싫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표현이 바로 ‘보도 싫다’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도’이다.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도’는 ‘이미 무엇 무엇도 있지만 그 위에 이것도 더해서 강조하고 싶을 때 붙이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 무서운 말이지만 겉으로는 점잖다고 할 정도로 태연하고 부드럽다.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선조들이 만들어낸 우회적 표현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이런 것들을 지금 우리들은 모두 잃어버렸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마음에 맺힌 것이 많고 커서 매우 분한 상태를 나타낼 때 ‘이가 갈린다’라고 한다. 그러나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뜻으로 ‘송곳 같은 이가 맷돌같이 갈린다’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이런 종류의 말들은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비유적인 표현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만들면서 분함을 누그러뜨리도록 하니 난폭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가졌다. 생활 속 대부분의 언어가 이런 방식의 표현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보면 된다. 선조들의 이런 지혜와 슬기를 다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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