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금성단, 단종릉, 청령포, 金堂盤石, 피끝마을, 고치령 산령각, 청다리
9월 25일부터 이틀에 걸쳐 國文四人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과 부석사, 영월 일대를 돌았다.
소백산 자락이라서 그런지 가을의 정취가 한층 물씬 풍겼다. 순흥 선비 묵밥 집에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섰다.
鳳棲樓는 飛鳳山의 봉황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지었다는 루이다. 옆에는 봉황의 알을 놓아서 둥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끝마을은 금성대군의 丁丑之變이 있었을 때 사람들이 흘린 피가 죽계천을 따라 4킬로를 흘러 어떤 마을 앞에서야 피 색깔이 없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성대군 신단을 소수서원 옆에 있다. 금성대군, 이보흠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혼령을 제 지내는 곳이다. 그 옆에는 단종이 승하하고 순흥부가 폐지되었을 때 죽었던 은행나무가 230년 뒤 단종이 복위되고, 순흥부가 복원되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鴨脚樹라고 부른다.
竹溪九曲은 죽계천에 있는 아홉 개의 명승지이다. 첫 번째가 金堂盤石인데, 그곳을 답사했다. 초암사 약간 위쪽에 있다. 물과 돌이 매우 잘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文成公 안향의 후손인 安軸(竹溪別曲의 저자) 형제 세 사람과 그들의 아버지가 살았던 마을이 四賢井인데, 당시에 사용하던 우물터가 있다.
청다리는 孝不孝다리라고도 하는데, 소수서원 뒤쪽에 있다. 서원에서 공부하는 젊은 선비들과 순흥 처녀들이 사랑을 해서 낳은 아이를 몰래 버렸다는 곳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 근원지이다.
순흥 지역은 원래 고구려 땅이었는데, 고구려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무덤이 있다. 무덤 입구를 지키는 괴상한 모양의 존재까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죽계구곡 중의 하나인 梨花洞天 앞 裵店에 있는 배순정려비는 퇴계를 사모해서 철로 된 상을 만들어서 삼년상을 모셨던 대장장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의 가게가 있었다고 해서 지명도 배점이다.
浮石寺는 의상이 세운 華嚴宗刹이다. 건물이 배치된 모양이 華의 모습이고, 상당한 높이의 계단을 오르면 安養樓와 無量壽殿이 나온다. 무량수전 옆에는 浮石이 자리하고 있다. 무량수전 앞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흰 구름과 그 위로 올라와 있는 산봉우리가 어울려서 마치 파도치는 것 같아서 이곳을 陸地 龍宮이라고도 한다. 부석은 이 절의 상징인데, 돌 아래 깊은 골짜기를 메워버려서 더 이상 떠 있는 돌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아쉽다.
부석사 서남쪽에는 백두대간을 넘어 영월, 단양으로 가는 통로인 馬驅嶺에 터널이 뚤려서 영월까지 빠르게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소수서원을 포기하고 단종의 릉인 莊陵과 유배지였던 淸冷浦(맑은 물소리가 나는 물가)를 가기로 했다.
장릉은 왕이 승하한 지 240년 뒤에야 복원되어 겨우 왕릉의 모양을 갖추었다. 嚴興道가 몰래 눈 속에 언 땅을 파고 묻은 곳인데, 이 혈 자리가 後絶地이다. 뒤가 없는 형국이니 후손이 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왕릉 앞에는 1999년에 思陵에서 옮겨 심은 精靈松이 있다.
청령포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 깃든 사연을 슬프기만 하다. 魯山君이었던 단종이 서울 방향의 절벽에 올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는 魯山臺와 望鄕塔, 단종이 계시던 御所 등이 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름대로 여러 유적을 탐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