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속초(束草)
속초(束草)라는 지명이 문헌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초기인 단종 재위 2년인 1454년이다. 이때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에 속초포(束草浦)는 양양 북쪽에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의 속초를 지칭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속초포라고 했는데, 강원도 지방을 지키는 군대의 주둔지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배와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말하면서 이렇게 표기했다. 속초라는 명칭이 조선 초기의 국가 공식 문헌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명은 고려시대나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고구려나 신라 시대에는 그리 중요한 지역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만들어져서 입으로 말해지기 시작하면 그 지명은 아주 오래간다는 사실에서 볼 때 속초라는 명칭 역시 상당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그 지역의 인구가 많아져서 행정 구획 상으로 시(市)가 되면서 속초라는 이름을 행정상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지명의 시작은 조선 시대에 속초리, 혹은 속초포로 불리던 작은 마을의 이름이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자로 되어 있는 속초라는 지명의 뜻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에 대한 것이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근래에 속초시에서는 지명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정리를 위해 포럼까지 열었으나 어느 것이 정설인지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속초의 지명 유래에 관한 주장은 네 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다. 첫째, 속새라는 이름을 가진 풀에서 유래했는데, 한자로 표기할 때 속초로 되었다는 주장, 둘째, 영금정 옆에 있는 소나무 동산이 바다에서 보면 나무와 풀을 묶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 셋째, 이곳 지형이 엎드린 소(臥牛)가 풀을 먹는 모양인데, 풀을 묶어서 소가 먹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주장, 넷째, 울산바위를 묶었던 풀로 만든 새끼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지역의 민간에 전해오는 전설 정도일뿐 어느 것 하나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속새라는 풀이 이 지역에 많이 자랐다는 증거나 역사적 정황도 없는 데다가 속새가 왜 속초로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첫 번째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다. 영금정 옆의 소나무 동산이 풀을 묶은 모양 같다는 것 역시 속초의 한자 뜻을 그냥 가져다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서 이것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 와우형이 하필 풀을 먹는 것과 연결되는지도 의문이고, 그렇게 중요한 소가 지명에서 빠진 이유도 설명되지 않아서 속초라는 지명과는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울산바위 전설은 더욱 신빙성이 희박하다. 바위를 묶었던 풀로 만든 새끼줄이 왜 속초로 되었는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들은 속초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천착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글자의 뜻으로만 이해한 후 그에 맞추어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속초라는 지명의 뜻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 지방, 지역, 산천, 거리 등 땅과 같은 특정의 지리적 실재물에 붙인 이름으로 고유명사의 하나인 지명은 일정한 어원이나 유래가 있는 데다가 사람들이 기억하면서 부름으로써 생활의 일부가 되어 역사, 전설, 문화, 풍속 등이 함축된 문화현상으로 되는 특성이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의 지명을 보면, 첫째, 일정한 공간의 생긴 모양과 그것에 담을 수 있는 뜻을 형상적으로 나타낸 것, 둘째, 역사적으로 근거가 될 수 있는 인물이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 등과 연결되어 만들어진 것, 셋째, 사회 구성원의 합의로 일정한 의미를 가지는 상징성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든 것, 넷째, 통치적 차원의 행정상 필요에 따라 만든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는데, 민간에서 만들어 부르던 지명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때에 따라서는 국가에서 이것을 수용하여 공식적 지명으로 한 경우도 있다. 속초라는 지명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데, 속초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형태에만 집착하지 않고 비유적이면서도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속초의 지명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束(묶을 속)과 草(풀 초)가 가지는 뜻을 정확하기 이해할 필요가 있다. 束은 木(나무 목)과 口(입 구)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여기에서 木은 서 있는 나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글자의 윗부분은 풀, 혹은 싹을 나타내는 屮(왼손 좌)이고, 아랫부분은 나무의 뿌리를 나타낸다. 그렇게 해서 뿌리가 있으면서 위에는 잎이 있는 나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좀 더 확장되어 여러 개의 나무토막, 혹은 나뭇가지를 나타내게 되었다. 즉, 이 글자는 여러 개의 나무 같은 것이 뭉쳐져 있는 모양이거나 묶여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木의 중간 부분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口는 물체를 묶는 밧줄의 모양을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束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口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나무와 같은 물체가 口로 인해 하나로 뭉쳐지게 되면서 여러 의미를 표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자를 모양으로 그리면 장작과 같이 생긴 나무 세 개를 네모난 모양처럼 된 밧줄로 중간을 묶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여섯 개의 나무 끝이 중간의 밧줄로 집중되어 나무가 가지고 있는 힘과 기능, 기운 등이 이곳으로 모이면서 이 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束은 묶다, 제한하다, 합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된다. 어떤 사물 현상을 이루는 모든 것은 묶는 줄이 있는 곳으로 모이면서 그것에 의해 통제받는 그런 상황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가 바로 束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草의 뜻은 풀이다. 그러나 풀이라는 것은 일정한 사물이나 현상 등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가 없을 때 이미 존재하는 다른 글자를 빌려다 사용하는 방식인 假借(가차)로 인해 생긴 의미이다. 풀을 나타내는 글자로 가장 오래된 것은 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艸(풀 초)인데, 이것이 부수로 쓰이게 되면서 형태가 艹로 바뀌어 더 이상 글자로 쓰기 어렵게 되자 풀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로 草를 가차해서 이렇게 사용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본래의 뜻보다 가차된 의미가 더 많이 알려지면서 대표적인 뜻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원래 草는 皁(하인 조, 검을 조, 도토리 조)와 艹(풀 초)가 결합한 것인데, 아래에 있는 皁의 뜻이 이 글자의 원래 의미였다. 皁는 상수리나무의 열매인 도토리(櫟實)를 가리킨다. 아래의 十은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이고, 위의 白은 도토리 열매를 나타낸다. 옛날에는 염색약이 귀하거나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재료를 많이 썼는데, 검은색으로 염색할 때는 도토리 열매를 썼다. 도토리 열매가 천을 검은색으로 잘 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皁와 艹 가 결합한 형태인 草의 원래 뜻은 검다, 검은 등의 뜻을 기본으로 했다. 나중에는 皁가 早로 바뀌면서 해가 벼룩처럼 앞다투어 솟아오르려는 모양을 나타내게 되었고, 艸와 早가 합쳐져서 봄을 맞이하여 경쟁적으로 먼저 나오려는 싹을 기본적인 뜻으로 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서 원래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싹, 풀의 뜻이 강조되고 확장되면서 풀, 처음, 어설픈, 거친, 시작하다, 천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글자가 빌려 쓰이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것이 기본적인 뜻으로 되었지만, 원래는 검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였다는 것을 상기해 둘 필요가 있다.
묶다, 가운데, 중심 등의 뜻을 가지는 束과 검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 草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속초라는 지명은 그것이 품은 뜻이 매우 깊고, 비유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 현상의 모양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단히 상징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을 지닌 이름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조선 시대에 속초리, 혹은 속초포(束草浦)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해안의 경비와 방어에 중요한 요충지라서 배 3척, 군사 200명이 머물면서 지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은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포구인 데다가 남북으로는 영랑호와 청초호가 에워싸고 있다. 또한 바다 쪽을 제외한 모든 곳이 설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동서남북의 사방(四方)과 남동, 북서, 남서, 북동의 사우(四隅)을 합쳐서 지칭하는 여덟 방위(八方) 중 바다가 차지한 세 방향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이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즉 옛 속초리라는 공간은 사방팔방이 산과 물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기운, 혹은 힘이 모두 모여드는 중심점이라는 것이다.
흙과 돌 등으로 이루어진 땅의 표면이 높게 솟아오른 부분을 산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주로 풀과 나무 등이 자란다. 풀과 나무는 가까이에서 보면 녹색, 혹은 푸른색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은 푸른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푸르다는 것보다 검은색에 가깝거나 검푸른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과학적으로나 이론상으로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산은 검은 염색약으로 쓰이는 도토리와 연결된 가능성이 생길 수 있게 된다. 바다와 호수처럼 수심이 깊은 물은 하늘에서 보면 검게 보이는 특성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물을 검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양오행설에서 물은 북쪽을 나타내며, 색은 검다고 한 것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선이 하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찍은 사진에 물로 이루어진 바다가 모두 검게 나타난다. 바다와 호수 등은 기본적으로 푸르다고 해야 하지만, 멀리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검은색에 가까우니 이렇게 인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영랑호와 청초호 같은 호수와 동쪽에 있는 바다 모두 검은색을 띤 것으로 인식되어 도토리와 연결된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해놓고 보면 이제 속초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이유를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초라는 지명을 가진 마을은 사방팔방이 모두 검은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며, 그 기운이 하나로 모인 곳이 바로 이 공간이 된다. 束이라는 글자가 나무를 묶어 놓은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물의 기운을 한곳으로 모아 묶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을 나타내는 글자가 바로 草가 되니 속초는 물과 산의 기운을 검은 것으로 상징화하여 그것이 모인 곳이라는 것과 제왕의 덕을 의미하는 수덕(水德)이 모인 곳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예술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지명임과 동시에 물의 기운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뜻을 기반으로 하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속초의 뜻을 풀 묶음으로 풀이하는 것은 이 지역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