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10)-양주(楊州)
동에서 서로 서울을 관통하여 흐르는 한강의 북쪽에 있는 양주는 고대 국가 시기에는 고구려의 땅이었다가 백제를 거쳐 신라에 귀속되었던 지역이다. 고구려에서는 남평양(南平壤)이라고 했을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던 곳이 바로 양주 지역이기도 했다. 원래 고구려 땅이었으나 백제가 건국하면서 백제가 그 땅을 차지했다. 빼앗겼던 이 지역을 되찾으려고 고구려 장수왕이 내려와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이 죽임을 당했을 정도이니 서로 간에 양주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전쟁의 결과 백제는 웅진(熊津-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겨야 했고 한강 유역은 완전히 고구려 땅이 되었다. 그 뒤 신라를 거치고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러서는 양주에 속했던 일부의 땅이 도읍지(서울)로 되면서 그 영역이 줄어 들었고, 그 뒤로도 의정부, 동두천, 남양주, 구리 등이 계속해서 분리되면서 면적은 더욱 작아졌다.
이처럼 특이한 역사를 지닌 양주 지역은 고구려 때부터 땅이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매성(買省)이었다. 이것 역시 이두(吏讀)인데, 현재의 양주라는 지명이 가진 뜻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관심을 고조시킨다. 이두로 하는 땅이름 표기에서 買(살 매)는 맨 앞에 오는 경우와 맨 뒤에 오는 경우의 두 종류가 있었다. 지명의 맨 앞에 올 경우는 물(水)이라는 의미로 쓰였고, 맨 뒤에 올 때는 높고 넓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川(내 천)이란 뜻으로 쓰였다. 경기도 수원(水原)의 고구려 때 지명은 매홀(買忽), 인천(仁川)은 매소홀(買召忽)이었다는 점 등에서 ‘買’가 ‘물’이란 뜻으로 쓰였음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경기도 교하(交河)는 어을매(於乙買), 강원도 횡성(橫川, 橫城)은 어사매(於斯買)였다는 사실에서 ‘買’가 ‘川’, 혹은 ‘城’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省’의 옛글자 모양은 ‘眚’으로 사람이 눈으로 초목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본다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관청이나 일정한 행정구역을 지칭하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이두 지명 표기에서는 특정한 공간이라는 것을 취해와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일정한 지역을 지칭하는 ‘城’, ‘州’, ‘川’ 등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州’와 ‘川’은 물 가운데에 있으면서 높고 넓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지칭하고, ‘城’은 높고 평평한 땅이면서 견고한 울타리로 둘러쳐진 안쪽의 공간을 가리킨다. ‘省’은 ‘城’의 다른 표기이며, 사람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하여서 ‘고을’이란 뜻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매성(買省)’은 ‘물가 고을’, 혹은 ‘물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땅이름이 된다. 지금의 지명인 양주(楊州)와 거의 같은 뜻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창화(昌化)로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무척 흥미롭다. 창화는 일정한 지역이 그전까지는 다른 나라의 땅이었다가 전쟁이나 항복 등의 여러 이유로 자기 나라의 것으로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즉, 창화는 귀화한 땅이라는 뜻이다. 양주 지역은 고구려 땅이었다가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웠던 백제 세력에 밀려 빼앗겼었는데, 만약 이 지명이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면 장수왕 시대에 되찾아 오면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땅이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강 하류의 대부분을 접하고 있었던 양주 지역이 한반도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나라들의 치열한 각축장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화라는 지명이 고구려 때부터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창화라는 지명이 붙여진 시기는 10세기 무렵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에 양주 지명을 기록하면서 후대에 붙여진 땅이름을 매성이라는 고구려 지명에 대한 설명에 붙여서 수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귀화한 땅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지명은 신라 시대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양주의 신라 때 지명인 내소(來蘇)라는 땅이름이 그것이다. 이 땅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인 725년에 고친 것인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다. 내소는 후래기소(后來其蘇-왕께서 오시니 우리들이 살았다)에서 온 것인데, 현명한 군주를 기다리는 백성들의 열망을 담고 있는 말이다. 商 나라의 초대 군주인 탕왕(湯王)이 천하를 정벌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모두 살렸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고구려의 땅이었다가 신라에 귀속된 역사적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양주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강조하기 위해 붙인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양주 지역의 땅이름이 가지고 있었던 귀화한 땅이라는 의미의 지명은 고려 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현(견)주(見州)가 바로 그것이다. 현(견)주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때에 정한 땅이름이다. 이 지명은 현종 9년인 1018년에 양주라는 이름으로 바뀐다(顯宗九年屬楊州-屬은 ‘잇다’, ‘바꾼다.’라는 뜻). ‘見(보일 견, 바칠 현)’은 어떤 사물 현상이 자기의 눈앞에 나타나서 보이게 되거나 다른 사람이나 나라에 속했던 것이 바쳐져서 나의 것으로 되었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러므로 ‘현(견)주’라는 땅이름은 신라의 땅이었다가 고려에 바쳐져서 귀화한 땅, 혹은 고을이란 뜻이 된다. 신라가 고려에 귀순해서 한강 유역의 중심인 양주 땅이 고려의 것으로 귀속된 것을 강조한 것이다. 창화라는 지명이 고려 때에 붙여진 것이라면 이런 의미에서 지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양주의 ‘楊(버들 양)’은 木(나무 목)과 昜(볕 양)이 결합한 형태의 글자인데, 昜은 태양을 나타내는 陽(볕 양)의 원래 글자이다. 그래서 그런지 楊과 陽은 서로 통해서 쓰기도 한다. 태양이나 햇볕 등의 뜻을 가진 昜, 혹은 陽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으면서 높은 지역으로 볕이 잘 드는 곳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볕이 잘 들 정도로 높은 곳이면서 밝은 지역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뜻을 가지는 昜이 나무를 나타내는 木과 결합한 형태인 楊은 햇볕이 잘 드는 물속이나 물가에 자라는 나무를 지칭하게 되어 갯버들이라는 의미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다가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물이 풍부한, 물이 넘실거리는, 물이 아름다운, 물을 품고 있는, 물이 있으면서 높고 따뜻한 땅 등으로 쓰이게 되었다. 땅이름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모두 이런 뜻이라고 할 수 있다.
川(내 천)과 州(고을 주)는 모두 물을 끼고 있으면서 높고 넓고 평평한 땅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공간을 지칭한다. 州는 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면서 넓고 높은 땅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川이 지명으로 쓰일 때는 州와 같은 뜻으로 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내, 혹은 강으로 이해하면 그 땅이름의 뜻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春川)은 ‘으뜸 고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해야 하는데, ‘봄내’로 해석하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 따위를 예로 들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양주 지역이 도읍지로 정해지면서 한양을 내어주기 전까지는 매우 넓고 큰 지역이었다. 양주에 속한 땅의 경계는 동쪽은 북한강 너머까지였고 남쪽은 한강까지였으며 북쪽은 한탄강과 임진강까지였다. 또한 서쪽으로는 한강하구 부근까지였으니 매우 크고 넓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양주는 동서남북 모두가 강에 의해 방어벽이 형성되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사방이 모두 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은 없다고 할 정도로 특수한 지형적 환경을 가지고 있는 땅이 바로 양주가 된다.
한강과 임진강이 모두 서해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고대 국가 시대에는 중국과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강 하류의 대부분을 접하고 있었던 양주 지역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창화, 내소, 현(견)주 등의 지명이 모두 다른 나라의 것이었다가 내 나라의 땅으로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내소는 고구려의 땅이었다가 신라의 땅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창화나 현(견)주는 백제의 땅에서 고구려 땅으로 되었다는 것이나 신라의 땅이었다가 고려의 땅으로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지명이라는 것이다. 양주 땅의 주인이었던 각 시대의 나라들이 이 지역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야 고구려의 땅이름과도 연결되는 이름인 ‘양주’로 되면서 ‘물이 아름답고 높으면서 평평한 땅의 고을’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공식적 행정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이 분리되어 나가면서 원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물과 땅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뜻이 양주라는 땅이름에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그것을 잘 살려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역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