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져니박 Jyeoni Park Apr 19. 2023

5만 원짜리 사은품 자전거로 종주 1

금강자전거길

'스윙'이라는 삼천리 자전거를 가지게 된 건, 지금으로 부터 약 1년 전 일이다. 다 녹이 슬어 타고 다니기도 민망한 자전거만 남아있던 우리 집에 엄마가 우유배달 사은품으로 5만 원을 추가로 내고 새 자전거를 들이셨다. 나는 비걱거리는 소리하나 없이 잘 굴러가는 자전거에 마음이 들떠서 동네를 돌다가 문득 더 멀리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처음 닿은 곳은 꽤 멀었다. 나는 제주도까지 그 자전거를 가지고 가서는 5일에 걸쳐 자전거길을 완주했다. (그 일화는 '라포르'라는 책 안에 '블루라인' 소설로 엮어 두었으므로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걸어두겠다.) 아무튼 거기서 깨달은 건 내 자전거는 절대 종주를 위한 자전거가 아니라는 거. 다른 날렵한 자전거로 페달을 두어 번만 밟으면 나가는 거리를 내 자전거로는 서너 번은 족히 밟아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도 더 좋은 자전거를 새로 살 생각은 없었다. 좀 느리긴 하나 내 자전거는 1년이 지나도록 멀쩡하고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나는 또 한 번 '스윙'을 끌고 종주를 나가고 싶어졌다. 마침 일하는 곳이 다섯째 주 금요일에 쉰다고 하니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이미 제주도를 한번 다녀와서 그런지 저번 종주 때 썼던 부품들을 찾는 거 빼곤 준비는 수월했다. 출발 하루 전, 자전거 안장에 쿠션커버를 씌우고 짐받이를 달았다. 고무가 빠지고 녹이 슬어 달랑달랑한 휴대폰 거치대도 휴지를 끼워 고정시켰다. 그리고 혹시 몰라 자전거 접는 연습까지 했다. 그렇게 밤새 기차에 자전거를 싣는 꿈을 꾸다가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왔다. 3월 끝자락의 새벽공기는 여전히 쌀쌀해서 기차역까지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달렸다. 예전에 한 번 해봤음에도 기차에 혹여 자전거를 싣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내심 마음이 불안했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어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다독였는데 웬걸,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기차는 제시간에 들어왔고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굴려고 했다. 승객들이 모두 기차에 오른 후에 카페칸 근처 출입문에 자전거를 들어 올렸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무거운 자전거에 가파른 계단까지, 잠깐 애를 먹었다. 그래도 기차에 올라서는 다행히 연습한 대로 자전거를 한구석에 잘 접어 놓았다. 그리고 예매한 자리를 찾아가 한숨을 돌렸다. 눈을 좀 붙였으면 좋았으련만, 이번엔 자전거를 들고 내릴 상상을 하느라 신탄진 까지 뜬눈으로 앉아 있었다. 내릴 시간은 금방 다가왔고 나는 다시 카페칸으로 넘어가 자전거 일으켰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자전거는 아직 다 펴지지도 않은 채 제멋대로 굴러가려고 했다. 나는 무릎을 내밀어 자전거를 고정시키려는데 그만 접히는 부부에 살이 찝히고 말았다. 누군가 꼬집는 것 그 이상의 고통이 찾아왔지만 아픈 티도 못 내고 무릎만 박박 문지르다 내렸다.


대청댐-세종보

벚꽃이 만개한 대청대 인증센터에서 첫 번째 도장을 찍었다.

역 근처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후 출발 지점인 대청댐 인증센터로 페달을 밟았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도심지를 벗어나 다리를 하나 건너자 금세 한적한 도로가 나왔다. 그렇게 몇 분을 달리니 댐이 보였고 그 사이를 통과하니 자전거 길을 표시하는 파란 선이 나타났다. 인증센터까지는 선을 따라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사이 몇 번의 언덕길을 오르느라 벌써부터 기진맥진이었다. 가장 가파른 언덕을 마지막으로 오르니 거대한 벚꽃나무들이 마치 출발을 응원하는 것처럼 줄지어 서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대청댐 인증센터는 절벽 아래 강이 내려다 보이는 운치 있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빨간 전화박스처럼 생긴 그곳에서 나는 첫 번째 인증 도장을 찍고 나와 근처 화장실에서 재정비를 했다. 제주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좀도둑 같은 검은 얼굴가리개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헬맷을 눌러썼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무심코 구매한 만 원대 검은 선글라스까지 써주었다. 얼굴부터 바지까지 죄다 검은색에 챙이 구겨 넣어진 헬맷을 쓴 내 모습이 마치 꼴뚜기 외계인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렇지만 하루종일 햇볕에 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매고 있던 가방까지 짐받이에 묶은 후 다음 인증센터로 출발했다.  


대청댐에서 세종보까지 약 37km. 9시가 넘어가니 대청댐 산책로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전문라이딩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중 나는 동네 산책을 나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라이딩하는 사람 같지도 않으니 그들에게 조금 희한해 보였을지 모르겠다. 사실 조금 창피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좋은 날씨 속 벚꽃이 만개한 길가를 달리니 그건 내겐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점심 전까지 세종보에 도착하기 위해 쉼 없이 자전거를 굴렸다. 대청댐을 벗어나니 외진 도롯가와 황량한 강가만이 번갈아 이어졌다. 한 시간 내내 가파른 언덕은 거의 없었으나 그렇다 할 볼거리도 없었으며, 아침 먹은 것이 일찍이 꺼져서는 오로지 짐받이에 묶여 꺼내기 어려운 초콜릿바 생각만이 간절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오래간만에 언덕길을 만나 자전거를 내려서 끌고 가던 중 할아버지 한 분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는 공주까지만 가려고요."

"나는 오늘 군산까지 가려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서울에서 내려온 할아버지와 나는 언덕을 오르고 난 후에도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이번 코스만 완주하면 4대 강을 모두 완주한다고 하셨다. 어제도 다른 코스를 다녀오셨다고 하니 체력이 대단한 분 같았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나는 다시 길을 달렸다. 오로지 표지판에 세종까지 줄어드는 거리 숫자와 파란 선만을 의지했다. 세종보 인증센터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땐 짐받이 끈이 풀어져 가방이 흘러내리려 했다. 그 참에 먹고 싶던 초콜릿 바를 먹었다. 새삼, 끈적거리는 게 싫던 초콜릿바가 이렇게 맛있다는 걸 처음 안 순간이었다.

지구에서 초콜릿 바를 처음 먹어보는 외계인

                                          

세종보-공주보-백제보


세종보에서 도장을 찍은 후 나는 밥을 먹으러 도심지로 들어갔다. 점심시간대라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카페나 식당가 주변을 몰려다녔다. 그에 비해 땀에 젖어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나는 마치 도피를 나온 사람 같았다. 근처 분식집에서 나물 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왔을 때 익숙한 자전거가 옆에 붙었다. 아까 만난 할아버지였다.

"바퀴 앞 뒤가 다 펑크가 나서 그거 때운 다고 여기 두 시간을 있었어."

"점심은 드셨어요?"

"아잇, 난 아침 먹으면 점심은 잘... 그럼 다시 가봅시다."

두 번째로 만난 할아버지는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시곤 또 유유히 사라지셨다. 나는 이런 우연이 있나 싶으면서도 점심도 안 드시고 몇 시간을 자전거를 타신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이후로 뵌 적은 없지만 그날 과연 군산까지 도착하셨을까.


오후 4시가 다되어 공주보에 도착한 나는 내친김에 백제보까지 가기로 했다. 그게 어쩌면 실수였을지 모르겠다. 공주보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되자 체력에 한계가 찾아왔다. 오르막길 하나만 올라도 숨이 차고 기진맥진이라 사탕을 찾아 입에 물었다. 해는 점차 떨어지는 데 나는 여전히 공주지역을 달리고 있었다. 길은 인적이 드문 풀숲길로만 이어졌고 더 이상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부여 표지판을 만났을 땐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곧 길은 다시 나를 풀숲으로 인도했고 혹여 야생동물이 뛰쳐나오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달렸다. 해가 산 봉우리에 걸치기 시작했을 때 반짝이는 강가가 점차 노을색으로 물들어갔다. 무섭고, 빨리는 가야겠는데 풍경은 아름다워서 여러 감정들이 복잡했다. 그러다 너무 지친 나머지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한 개울가에 자전거를 새워놓고는 간식을 먹었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처음 갖는 휴식시간이었다. 등뒤로 노을빛이 개울가를 비춰 반짝거리고 물 흘러가는 소리가 평화로웠다. 그 잠깐의 휴식 덕분에 나는 백제보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라이딩으로 잠시 휴식 중


멀리서 백제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해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고 어스름했다. 백제보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나니 남는 건 막막함 뿐이었다. 난 오늘 어디서 자야 하는가.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았지만 하필 예약이 모두 찬 상태였다. 나머지는 모두 십만 원이 넘는 다인실이었다. 나는 찜질방에서 잘까 하다가 평이 좋은 모텔을 하나 잡았다. 여행하면서 모텔에서 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녁에 도착한 백제보

숙소 예약을 하고 다시 출발했을 땐 이미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심지어 길가에 가로등 불빛도 없어서 고라니나 멧돼지가 튀어나오기 딱 좋아 보였다. 나는 길가가 밝아질 때까지 무서움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부여 중심가에 있는 금동대향로 모형이 보였을 때 비롯소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거기서 모텔까지 찾아가는 데 허벅지가 땅겨오고 엄지발톱은 빠질 것 같이 아팠다. 모텔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서로 꼭 붙어 앞서가는 커플 한쌍을 보았다. 사실 모텔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터라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는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다행히 친절한 사장님과 깔끔한 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 거울 속 내 모습은 먼지와 땀으로 뒤엉켜 세상 초췌한 모습이었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하루간의 피로를 씻어냈다. 예상했던 대로 기차에서 꼬집혔던 무릎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뿌듯함과 후련함에 사로잡혀 별로 아프지 않았다.


1일차 대청댐-백제보 인증완료




관련 여행 영상

https://youtu.be/po5oM1t2IV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