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지 않은 기억
중, 고등학교 때에 나를 돌아보면 많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무엇 하나에 깊게 빠져본 기억이 없어서 그렇겠지.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계곡을 놀러 다니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기만 했다.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하면 옆에서 구경을 하거나 집에 갔다. 집에 가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소위 '양아치'라고 불리는 선배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6년을 함께 했기에 뉴스에서 나올 법한 심한 왕따라거나 폭력은 없었지만 큰 덩치를 이용해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정도의 일은 있었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그런 나쁜 물을 먹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 놀았다. 집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만화를 보는 친구와 놀며 충분히 재밌고 행복했다.
고등학교를 가서 분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놀기만 하던 친구들은 계속해서 놀기만 했고,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꾸준하게 공부했고, 노는 게 지친 아이들 중에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친구도 있었다. 나는 적당히 공부해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터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대학교를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취업을 하고 살아가는 그런 모습..
재미없다고 느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한 대학교에 갔다가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평생을 일하는 것이.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시작했다. 단순 암기로 적당한 성적을 유지하던 나는 제대로 이해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니 문제가 술술 풀렸다. 점수 잘 나오겠는데?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전교 1등을 할 줄은 몰랐다. (전 과목은 아니고 3과목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 방향이 아닌 다시 적당히 하는 것을 선택했다. 역시 한다면 하는 놈이야 라고 자기 입증에 성공한 듯 생각했고 그 후로 원래 점수를 찾아갔다.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지 깨닫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