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성인이 되면, 서울에 가면 전부 흥미진진할 줄 알았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밌는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누구나 기대하는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삐끗했다. 간절히 원하는 대학이 없었을뿐더러 명확하게 원하는 전공도 없었다. 수많은 직업이 있고 수많은 전공이 있는데 19년 동안 시골에서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진로를 결정할 수가 있나? 싶은 의문뿐이었다. 그 결과 역시나 나를 원하는 대학은 없었다. 수시로 넣었던 원서는 모두 의미 없는 종이쪼가리가 되었다.
다행인 건지 그 일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시를 넣으면 되고 재수를 할 수도 있고 군대를 갈 수도 있고 워홀을 떠나버릴 수도 있고.. 선택지는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시나 가벼운 마음으로 정시 원서를 넣었다. 뭐 여차저차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는 성공했다. 사람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경험을 마음껏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살 대학생활 역시 마찬가지였고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갓 대학에 들어간 남학생답게 이성에 관심이 많았다. 두근두근 연애생활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다들 하지 말라는 CC(Campus Couple)가 되었고 다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1년 동안의 다사다난한 연애생활을 마친 후 도피처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입대를 하는 수순을 거쳤다.
외국에서의 생활은 나를 꽤나 변화시켰다. 소심해서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내가 이제는 여유롭게 사장님에게 장난도 칠 줄 알게 되었고 다른 음식, 다른 사람들, 다른 문화를 느끼며 더 넓은 세상을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전역 후에 세계일주 계획을 매일 상상했다. 하지만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역 4개월을 남겨둔 시점에 코로나라는 질병이 전 세계를 장악했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나. 바로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하나? 저 넓은 세상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채 사회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너무 싫었다. 고민 끝에 휴학을 1년 더 했고 코로나가 끝나길 기도하며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일을 했던 시간은 나에 대해 깊게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초중고, 대학, 군대를 경험하며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항상 친구, 애인, 동기들과 함께 했고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일하던 곳에서는 나 혼자 일을 했고 집-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나는 혼자 있으면 기운을 잃는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구나.
'우울'을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것들. 과거를 돌아보니 항상 어딘가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던 순간이 내게는 행복이었고 다양한 경험을 원했다. 앞으로의 삶을 상상해 봤다. 다들 그렇듯이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는 삶은 도저히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그게 가능한 삶이 있을까 찾기 시작했고 당시 열풍이었던 개발자가 적합이었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국비지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료 조사 끝에 도달한 최종 결론은 스타트업이었다.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가치를 제공하고 돈으로 보상받는다. 그 금액은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세상을 만만하게 바라보던 나는 역시나 만만한 마음가짐으로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