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발리의 길리 아이르라는 섬에 있다.
오후 5시까지 숙소에서 수영을 하다가 저녁먹기 전 잠시 잠을 청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더워진 방과 어수선한 소리에 일어났다. 에어컨이 작동을 멈췄다. 숙소에 처음 온 날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다가 정전이 된 경험이 있어서 다른 방에서 드라이기를 사용했겠거니 생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에어컨이 작동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마을 전체가 정전되었다고 한다.
길리 트라왕안이라는 다른 섬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날은 양초 하나 켜놓고 숙소 직원들과 2시간동안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저녁을 먹어야해서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일부 식당들은 개인발전기를 가지고 있어서 장사를 계속 한다. 우리가 가고 싶었지만 며칠동안 닫는다는 가게가 마침 오늘 열었다. 기분좋게 식사를 했지만 맛은 기대이하였다.
이제 조용한 숙소에서 전기가 들어오길 마냥 기다릴지 암흑세상인 섬을 구경할 지 고민이었다. 식당 가는 길에 잠깐 올려다 본 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바다쪽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왠걸. 깜깜한 섬 안쪽과는 상반되게 바닷가에 있는 식당들은 전등이 반짝였다. 모두 발전기를 가지고 있나보다.
지나가는 길에 “안녕하세요.”가 들려온다. 그럼 나는 “말람”이라며 인도네시아 저녁 인사를 건넨다. 원래라면 그 후로 들려오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니 웃으며 지나간다. 그런데 이번 사람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너네 00숙소에 묵어? 거기 묵으면 여기 디스카운트야!” 우리가 그 숙소에 묵는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본인은 딱보면 안다는 말을 한다. (그의 뒤에 서있던 숙소에서 마주쳤던 여직원이 말해줬겠지.) 알고보니 같은 사장이 운영을 하는 식당이었다. (깜깜하지만) 오션뷰에 서양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우리도 한잔 마시기로 했다. 마침 해피아워(일정시간 칵테일 1+1)여서 레몬드롭을 시켰다. 모래 안에 발을 꼬물대며 시원한 밤바람을 맞고 있다. 옆 식당에는 행사를 개최한 듯한 서양인들이 노래 파티를 벌이고 있다. 다행히 소음이 아니고 기분좋은 bgm 역할을 해주고 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마감시간이다. 계산을 마치고 (디스카운트는 식사에만 적용된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가니 어느새 원상복구가 되어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가 떠오르는 영화 '첫 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을 본 후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