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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유 Dec 31. 2022

소장품 소개, 고리들 작가의 ‘포도나무 넝쿨손’

당신은 자신을 인지하며 욕망하는가?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하는 사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느 한 가지 덕목도 넉넉하게 갖추지 못한 채, 어느덧 내면의 욕망과 어리석음까지 살피고 조심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작품에는 뭐가 있을까? 그런 작품을 하나쯤 곁에 두고 싶었다. 고리들 작가님의 조각 소품 ‘포도나무 넝쿨손’소장하고자 했던 이유다.


고리들 작가님은 ‘포도나무 넝쿨손’을 의인화한 조각 소품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욕망의 손’ 시리즈를 작업했고, 최근에는 ‘희망의 손’ 시리즈를 추가해 작업하고 있다.

'희망의 손' 시리즈 <반군> & <축하>

이름에 ‘손’을 가진 식물, 넝쿨손! 포도나무 줄기에서 뻗어 나간 넝쿨손은 햇빛을 향해 나아간다. 경쟁하듯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다른 식물의 빛을 가려서라도 자신의 빛을 차지한다. 무성한 잎과 열매를 맺기 위해 무엇이든 잡고, 감고, 오르고, 움켜쥔다.

 

힘껏 움켜쥔 넝쿨손에서 작가님은 ‘욕망과 생의지’를 보았다. ‘욕망을 드러낸 넝쿨손이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어리석음’을 함께 읽었다. 작가님은 넝쿨손 조각을 매개로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신을 인지하며 욕망하는가?


머리가 없는 채로 욕망에 충실한 넝쿨손’과 나의 삶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자아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욕망과 욕구의 흐름에 내맡긴 나의 삶을 넝쿨손 조각 앞에서 부끄럽게 마주한다.


넝쿨손의 받침대로 쓰인 조개껍데기

작가님은 넝쿨손의 받침대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조개껍데기를 쓰고 나서 더 만족스러웠다고 말한다. 빈 껍데기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욕망을 좇아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의 바탕이 빈 껍데기라는 것! 작가님은 ‘공수래공수거’ 의미를 짙게 드러낼 수 있는 재료로써 조개껍데기를 흡족해했다.


희망의 손 < 지휘자 >, 아크릴케이스: 13cmX12cmX16cm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희망의 손’ 시리즈 중에서 <지휘자>이다. 작품을 받고 나서 작가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작가님은 <지휘자>에서 넝쿨손의 손가락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새끼손가락을 펴고 무심하게 커피잔을 들 듯 넝쿨손이 가볍게 지휘봉을 들었다. 살짝 들린 저 손가락에서 ‘욕망’이 아닌 ‘재미, 여유, 몰입’이 느껴진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여유로운 손짓을 보는 것 같다. <지휘자>가 ‘희망의 손’ 1호 작품인데, 저 손가락과 지휘봉이 ‘욕망의 손’ 대신 ‘희망의 손’을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장 한 칸을 비우고 <지휘자>를 두었다. 크기가 아담해서 종종 꺼내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지휘봉도 보고, 넝쿨손의 손가락도 본다. 빛에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도 보고, 조개껍데기 위에 붙은 따개비의 흔적도 본다. 작가님이 건네는 질문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당신은 자신을 인지하며 욕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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