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이 학위,좋은 직업이나 단단한 하방을 보장해 주지 않지만, 기쁘다.

20대 초반 시절, 꿈 많은 저는 수많은 계획들이 있었지만 그 중 구체적 두가지가 기억납니다. 하나는 장교가 되는 것이었고, 하나는 박사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공군에서 대위로 전역하며 하나의 꿈을 마무리했고, 저번주에 박사학위수여식을 끝내며 또 하나를 마무리했습니다. 저의 아카데미 백그라운드는 이렇습니다. 노어노문학으로 학사를, 경영학으로 또 다른 학사를, 경영학 인사조직 석사를, 한국외대에서 31학점 정도 3학기를 수료한 두번째 석사과정으로 구소련지역학을, 이번에 졸업한 북한학 박사까지, 5가지 전공 4개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특별히 박사과정에서 북한학을 공부한 것은 한반도 통일문제와 동북아 안보 및 평화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북한학은 북한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과학적 현상을 탐구하는 분과로, 사회과학이기에 기본적으로 복합학문적 성격을 지닙니다. 저는 주로 “어떻게 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국제정치학적 아젠다에 관심이 많아 학습을 많이 했지만, 박사 졸업논문의 주제는 북한이 왜 남한을 욕하는지를 분석하는 대남 프로파간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논문 제목은 '김정은 정권은 왜 남한을 비방하는가?' 이고, 김정은 정권 12년 동안 남한을 욕하는 2000여개의 로동신문 기사를 수집해서, 전수 분석하여 1점부터 4점으로 비방강도 점수를 매긴 뒤, 비방강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여겨지는 주요한 5가지 사건을 투입해 회귀분석을 돌렸습니다. 어느정도 유의미한 결과값이 나왔고, 이번 학위심사에서 통과되어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이 남한을 어떻게 욕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에게 있어 박사학위는 하나의 삶의 목적에 가까웠습니다. 하이 도파민 시대에, 가장 도파민 분출이 낮은 행위인, 그 재미없고 지리한 텍스트 수백 수천 시리즈를 읽고, 코스웍 2.5년, 논문연구 3년의 매우 느리고 아주 비경제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마침내 북한학을 의미하는 자주색 후드와 박사를 의미하는 황금술이 달린 박사모를 쓰고 졸업하는 과정은 하나의 신성한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긍지넘치는 학위증은 '이제 단독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정도의 운전면허증과 같은 것이지, 고소득의 직업이나 안정적인 하방이 보장되는 황금카드는 결코 아닙니다. 사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면, 고등학교 졸업 후 블루칼라 기술직군의 삶 혹은 평범하게 학부를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하여 장기근속 하는 것이야말로 생애 기대소득이 훨씬 높습니다. 저에게 박사학위의 의미는, 이 지리한 과정을 인내로 승리하였다는 내면의 자긍심이고, 유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기 힘든 사회과학 계통에서 '나 박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신력의 징표입니다. 실무적으로 좋은 것은, 내가 억을 벌든, 백수이든 '박사님'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 정도입니다. 지금도 직장에서 깊은 연구만을 수행하는 직위도 아니지만, 그리고 다른 긴 직급 명칭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냥 '이박사님'이라고 부르니, 내심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인내로 취득한 명칭이니만큼 괜히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참고로, 길지 않은 야생적이고 전투적인 국회 비서관 생활은, 굵게 잘 맛본 뒤 제 건강을 위해 빠르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지금은 자그마한 사단법인 싱크탱크로 이직해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되면 교수님이나 국책연구원을 꿈꿔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도 개인의 역량이 우수하면 가능하겠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우수한 연구자적 자질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학령인구도 매우 줄어들고 있고, 해외에서 박사를 따온 인재들도 학계에 정규직으로 자리잡는 일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상기 언급헀던 직업군이 '1지대'라고 표현한다면, 박사로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좀더 실무적인 Area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2지대'도 많이 발견됩니다. 지금도 그 2지대에 자리를 잡은 직장생활을 잘 영위하며, 여유시간을 성실하게 활용해서 매년 논문 투고에도 게으르지 않고자 합니다.


저는 10대때부터 남북통일을 기도해 왔습니다. 지금도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년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짝꿍이랑 통일단체 하나를 만들어서, 본업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소소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 십여년 지난 뒤에는 통일교육원, 통일연구원 같은데서도 커리어를 밝혀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함을 가지는 것이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해서 괴롭게 되는 '욕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무슨 일을 하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어차피 50여년 뒤에는 죽을 것이니 어떤 직위를 이루고 얼마나 돈을 버는 행위는 그리 크게 가치를 둘 만한 중심은 아니긴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쓰시고자 하는 그릇에 맞게 무엇이든 허락하실 것입니다. 졸업 이후의 중장기적인 미래 커리어는 조심스레 하나님께 맡겨봅니다. 저도 어찌될지 잘 모르니까요. 저에게 주신 생명을 그래도 북녘 동포들의 해방을 도와 평양에 제2차 영적 대부흥을 일으키는 거룩한 역사의 한 파트로 사용해 주신다면 그건 좀 의미를 둬도 될 것 같습니다.


기라성같은 박사 선배님들 사이에, 저는 바다와 같은 학문의 세계에 검은 먹물 한방울을 스포이드로 떨어뜨린 공로로 '이종길 초보 박사'라는 명칭이 겨우 허락되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학문과 배움에 대한 호기심,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 모든 것이 합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들고자 하는 내 삶의 거대한 지향점을 겸손히 받아들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졸업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 이종길 작가는..?

한민족글로벌통일포럼 대표이자 북한학 박사, 러시아/CIS지역학 석사(휴학), 경영학 석사, 노어노문학사, 경영학 학사를 학문적 백그라운드로 두고 있는 통섭형 사회과학 박사입니다. 북한 등 사회과학과 관련한 다양한 아젠다들, 인생 이야기, 대학원 이야기, 삶과 철학 이야기, 신변잡기 등을 글로 녹여내어 독자들과 소통하고 소정의 흥미와 가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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