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는 독서
어릴적 우리집 책장에는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던 시절, 그 책 속의 이야기들 속에 푹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있을 그 이야기 장면들 하나 하나가 어른이 된 지금에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만일 어릴 때부터 조금씩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 은행에 돈을 저금해 놓았으면 지금쯤 아마 엄청나게 큰 금액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돈은 저금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은 나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 저장고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귀한 자산임에는 분명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공부할 시간도 없다보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책들을 읽는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그 중에 인상적인 책들을 만났다. 지금은 작고하신 이어령 장관님이 쓰셨던 기호에 대한 글은 잊을 수가 없다. 중학생의 나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글이 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이해 못하던 기호학을 학생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나? 그나마 궁금했던 그 기호학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대학원을 다니면서였다.
또 하나 인상적인 글은 알퐁스 도데의 <별>과 <마지막 수업>이었다. 번역 수준이 그리 좋지 않았던 그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알퐁스 도데의 글 하나하나가 감수성 민감한 사춘기 소년에게 콕콕 박혀왔다. 그로부터 사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스테파네트 아가씨'라는 그 단어만 들어도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그 책을 어른이 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때가 기억난다. 아빠가 어릴 때 좋아했던 책이라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도 당시의 감흥에 빠져 혼자서 감동하곤 했다. 나중에 손자가 생겨서 읽어줄 때가 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학과 대학원, 직장을 다니면서는 공부와 관련된 전공서적이나 일에 의한 필요로 읽은 책들 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매주 도서관을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주변에 책 좀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찾아 들으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작은 아이가 홈스쿨을 하면서부터다. 홈스쿨에는 학교처럼 과목이 없다. 국어라는 과목 대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가져다 읽으면 된다. 그렇게 아이와 엄마가 시작한 독서가 아빠를 전염시켰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딩하라>는 책을 읽고 고전 읽기를 시작하고, 도서관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씩 독파해가고, 평소에는 접하지 않던 책들을 하나씩 접하다 보니 놀라운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대학교를 기독교 재단의 학교를 다면서, 1학년 교양수업으로 ‘기독교의 이해’ 라는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했다. 첫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대학생이 되었다면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한다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소개시켜 주셨다.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 공부만 하느라, 세계적인 문학책 하나 읽지도 못하던 나였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그 결과는 비참했다.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렇게 그 책은 내 인생에서 절대 읽을 수 없는 책으로 남아있었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때,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과감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빌렸다. 그제야 이 책의 진가를 알아봤다. 대학 시절 교수님은 대학생이라면 그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스무살 나이에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수 많은 굴곡과 변곡점들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이나마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인데. 여튼, 그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아니 버리지 않고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도서관에 가면 일단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여섯 권 빌린다. 한 사람이 빌릴 수 있는 책의 최대 권수가 여섯 권이다. 빌려온 책들은 일단 스킵하며 빠르게 읽어 본다. 그러면 어떤 책은 도저히 스킵하며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깊게 빠져들어간다. 작가의 말 하나 하나에 귀기울이면서 깊은 묵상을 하며 읽는다. 그리고 그 작가가 영향 받은 책들을 적어 둔다. 그리고 다음에 도서관에 가면 그 책을 빌려와서 읽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읽기를 하이퍼 텍스트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 단어가 인터넷 세상을 은유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사실은 책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표현이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 있는 말은 어디선가 인용된 말이다. 그 인용된 말은 또 누군가의 인용된 말이다. 그렇게 책은 서로 얽히고 섥혀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서양의 모든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주이며 동양의 모든 책은 공자의 변주라고 했던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재미가 생긴다. 유튜브가 알고리즘으로 내게 보내오는 영상 콘텐츠를 받아보는 것은 수동적 경험이다. 그러나 내가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것은 능동적 경험이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는 능동적으로 책을 찾아보는 경험이 훨씬 즐겁다. 그렇기에 오늘도 도서관을 갈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