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앎이란 '객관'으로 있지 않다. 각자의 입장과 이익과 선호인 '주관'에 있다. 정말 필요한 일은 각자가 자신의 필요와 자신이 스스로 깨우친 합리를 좇아 자율로 자유롭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원리적으로 맞는 진정한 합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개인주의가 가져온 시대적 변화라기보다는 본래 있었던 자연원리이다.
개인은 자기 주관을 가진다. 각자 입장과 사정과 취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삶의 토대이다. 이것은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선호를 따라 사는 삶이 그에게 가장 맞는 효율적인 삶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원리적이다.
과학적인 인식을 따라도 자기 일은 결국 자기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물리적' 입장 차이를 동의할 때, 개인과 사회는 자기의 삶에 더욱 충실해지고 저절로 윤택해지며 자유로워진다.
한편, 이웃과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는 합의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인간人間-사람사이'라는 인간의 자기 개념은 명확하다.
인간은 이런 필요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공감능력을 진화시켰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인식 세계'를 가진다. 공감의 채널이 다양할수록 이 세계는 넓어진다.
인간의 인식은 본질로는 주관이지만 공통의 인식 세계는 크거나 작거나 분명히 존재한다. 학자들은 이것을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ity'이라고 말해왔다.
이것은 서로의 주관을 존중하면서도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공통적 주관의 세계'이다. 여기에 공통적 합리의 세계가 있다. 주관의 정신은 이것을 넓히려 노력한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 것인가?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홀로서는 자립정신 또는 주체정신일 것이다. 스스로 자립할 때 함께 설 수 있다.
주체로 설 때 바로 보인다. 이것이 모든 앎의 토대며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ity'의 기초라고 볼 수 있다.
주관과 객관은 서로를 도우며 성장시킨다. 그러나 그 주체는 언제나 주관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나아가 영혼까지도 그 본질은 '주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