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는 사람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지식에 너무 의지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지식을 얻으려 애쓰고 지식에 얽매이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의존성'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갖기 쉬운 '지식인의 허상'일 수 있다. 물론 전문 지식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대부분 자신의 타고난 주관에 의해 판단하고 해결할 수가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전문적 식견을 요하는 경우가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또 요즘은 네이버와 구글 검색에다, 챗 GPT나 바드 같은 인공지능까지 도와주므로 웬만한 것은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지식과 정보도 참고 자료일 뿐이며, 최종적 판단과 선택은 자신의 '주관'이 하는 일이다. 지식은 '과거형 데이터'로 늘 변하는 세상에서 효용의 한계를 지닌다. 또 사람마다 환경과 입장이 다르므로 판단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은 옳고 합리적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반영한 지혜이며, 그 지혜를 주는 것은 바로 자기의 '주관'이다. 결국 주관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주관은 자기 삶을 최종 책임지는 자기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 과정에서 단련하여 스스로 이루는 자기 고유의 생각 능력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관'의 실체를 주목하게 된다.
주관은 주인 된 주체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홀로 서는 자립의 노력이 키워내는, 험난하지만 인간이 이룰 수가 있는 최고의 자기 단련 과정이다. 상처투성이의 실패와 시행착오는 필수과정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한 삶의 무기와 보물은 없다.
주관은 고정된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확률로 얻는 종합적 인식능력이다. 이것은 숙명이므로, 담대하게 빨리 겪을수록 어려움은 빨리 끝난다. 미룰수록 끝이 없는 난관이 된다. 합리와 함께 하면, 주관은 처음엔 힘들고 더뎌보이지만 이웃과 '상호주관'을 이루며 가속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러한 '상호주관 intersubjectivity의 세계'는 소박하다. 누구나 자연 원리적으로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상식과 합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호주관은 각자의 주체적 주관이 서로 만나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이루게 되는 공통적이고 실질적인 진실의 세계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세계에 대한 믿음과 전망을 가지게 한다.
- 과학적 인간학 Human Scienc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