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자연의 광활한 모습을 보면 숭고함을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낀다. 동시에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한다.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현자들은 자연으로부터 배우라고 했다. 고대 동아시아의 노자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등 자연 철학자들, 근대의 베이컨과 뉴턴과 스피노자 그리고 루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의 공통적 언어가 가르키는 방법론과 방향의 기본 패턴은 '자연'이다.
현대 물리학은 존재의 본질을 에너지로 이해한다. '에너지'의 본질적 속성은 에너지 보존법칙과 최소작용의 원리이다. 이것은 일반적 현대 공학의 바탕이 되는 해밀턴 동역학에서도 입증된다.
우주와 자연 차원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이다. 과거와 미래의 에너지를 쓸 이유와 필요가 없다. 현재로 충분하기 때문이며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기 위해서도 현재의 집중한다. 이 근본 원리를 인간은 쉽게 간과하며 낭비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물리학이 가르치고 있는 가장 큰 지혜이다.
방법론적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인공지능이 개입을 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일이 복잡해졌다. 자연의 원리는 이처럼 간단하고 소박하머 견고한데, 인간의 원리는 복잡하고 화려하며 부실하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인공지능의 의지하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문명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자들이 말한 자연 원리의 회복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그런데 복잡해진 세상은 모두가 진리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는 데 어려움을 준다. 또 문화와 개성의 다양함은 자유 자체이다.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다양성과 가치관의 풍부함을 모두 아울러서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과학'이다. 그래서 과학은 바르게 발달해야 하며 균형되게 성장해야 한다.
우리 과학은 훌륭한 성과도 내었다. 이 부분에 관한 한 과학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에 내재한 불균형과 잠재적 폭력성을 경계하며 불신을 거두지 못한다.
여기에는 앞서 말했듯 현대과학이 가진 부분성과 선형성과 고립성과 폐쇄성 더나아가 권위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과학에 대한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 과학은 결코 어렵지 않다. 소박한 자연의 원리를 소박하게 보고 이해하고 따르면 누구나 자연의 에너지를 윤택하게 누릴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의 원리는 누구나 알고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합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존재는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늘 현재로 있다. 우리 개인과 사회는 현재에 직면해야 한다. 과거나 미래로 도망가서는 안 된다. 자연의 은혜는 현재만 있기 때문이다. 축복은 현재 present 속에 있다는 뜻이다. 현재를 사랑하고 직면하여 그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우주 자연이 늘 그렇게 하듯이.
우주자연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도 미래에도 한 톨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하면 저절로 조화롭고 윤택한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38억년의 항구적인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는 현재와 현실에 합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와 합리 속에 축복이 있고 말한다. 이것이 자연과 물리학이 알려 주는 소박하면서도 상식적인 존재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