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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Feb 12. 2023

why와 what의 역사  1. 역사의 시작


#역사


why와 what의 역사

1. 역사의 시작


자연은 인간에겐 신화의 세계였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 푸른 대지 위에 펼쳐지는 생명의 파노라마,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의 무리, 이 경이로운 자연의 비밀을 처음 해석한 것은 신화였다. 그 후 과학은 이 수수께끼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 자연과 생명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신화의 언어들이 과학의 언어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를 첨단 과학의 시대라고 말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신화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한 과학 사이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인간의 긴 역사는 수많은 신화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세상의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것은 먼저 역사가 남긴 유물들이다. 산과 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장성, 화려한 중세의 성당, 세계의 유명한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각들과 그림들이 그것일 것이다. 이 위대한 유산은 한 때 인간의 끝 모를 열망을 불태웠던 신화의 그림자들이다.


아폴론과 다프네 Apollon & Daphne, 잔 로렌조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이탈리아), 페르세포네의 납치 1622년,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신화가 없는 삶은 꿈이 없는 삶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먼저 예술의 손을 빌어 신화를 그렸다. 그들의 열정과 모색을 담았다. 그 열정과 모색이 향한 꿈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우주자연과 세상을 향한 '앎'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꿈의 실체는 과학이라는 '마술 지팡이'로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학보다 직관의 감각을 지닌 예술은 이미 신화를 지운 지 오래다. 인간은 예술을 통하여 오랫동안 진리와 '하이파이브'를 해왔기 때문이다.

신화와 과학 사이


역사에서 신화와 과학은 공존했다. 신화는 세상에 대한 동화적인 해석이었다. 동화는 인간의 열망을 그렸고 해석은 세계에 대한 모색을 담았다.
신화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처럼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이른 새벽의 자욱한 안개같이 눈앞의 진실까지도 감추는 베일이 되기도 하며, 한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처럼 땀에 젖은 맨몸을 내보여주는 적나라한 조명이 되기도 했다.
인간은 신화의 땅을 한 뼘씩 개척하여 문명을 일구었지만, 아직도 신화의 시대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신화를 극복한 땅에 또 다른 신화들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인간이 스스로 만든 새로운 우상들이다. 신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화를 알아야 한다. 신화가 지닌 비밀을 풀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빅뱅 Big bang과 세상의 시작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원점이 열리던 순간을 빅뱅 Big bang으로 부른다. 이 빅뱅으로부터 물질을 이루는 근원적인 입자들이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질을 이루는 근원적 씨앗인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이것의 활동울 매개하는 광자 등 소립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압력과 온도로 응축되어 더 할 수 없는 에너지를 머금고 있었다.
양성자와 전자는 본래부터 음양의 '자웅체'로 태어났지만 서로의 사랑이 필요 없을 만큼 충만한 에너지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존재의 시작인 빅뱅 Big bang은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여 마침내 이 둘의 운명적 결합을 명령하게 된다.

현대 과학은 우주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양성자와 전자의 사랑으로 태어난 낳은 자식들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앎에 이르기까지는 숱한 밤을 지새운 관찰과 실험과정과 엄밀한 수학적 증명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주의 별들과 자연의 생명들이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는 이 태초의 빅뱅에서 시작된 섭리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랑은 세상을 낳고, 세상을 해석한 과학은 사랑의 원리를 알게 할는지 모른다.

과학에서는, 빅뱅 당시 원점은 수십조의 온도와 수십조 기압의 에너지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빅뱅의 결과는 원소 기호 1번인 '수소 H'를 만들게 된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때로 하찮게 여기는 물질의 가장 작은 원소는 이러한 놀라운 조건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원소 기호 1번의 몇 차원 뛰어넘어 수많은 물질과 생명이 탄생한 물리적 조건은 기적을 능가한다. 또한 놀라운 생명의 최첨단으로 진화한 인간의 의미는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이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인간과 문명에 주어진 궁극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따른다면, 빅뱅 순간의 에너지는 지금의 우주자연 전부를 하나의 작은 '원점'에 압축해 담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과 동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처음 연 빅뱅은 얼마나 놀라운 마법의 순간이었을까? 또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인간의 정신은 또한 얼마나 위대한가?




빅뱅 이후, 우주는 지금까지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도 아는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그 팽창속도는 지구와 1억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를 기준으로 대략 초속 3,000Km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를 거꾸로 역산하여 빅뱅의 시작점을 계산해 내게 된다. 우주의 은하와 별들이 모두 한 점에 모여 있던 빅뱅의 시점을 찾아낸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만든 ‘람다시디엠ΛCDM’ 모형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137.98 ± 0.37억 년이라고 계산된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첫 원점으로부터 빅뱅이 시작되자, 엄청난 양의 양자와 전자가 서로 결합되어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나 헬륨으로 된 '가스구름'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자체중력으로 뭉쳐져, 천문학적 압력과 온도로 융합하면서 별이 되었다.
이 별들은 자라나 마침내 거대한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면서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원소들을 엄청난 양으로 우주 공간에 낳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92종의 자연 원소들이 우주자연의 물질계를 이룬다.
이 원소들 중 구소와 헬륨 등 가스구름은 다시 스스로의 중력으로 뭉쳐 태양과 같은 별이 되고, 무거운 원소들은 뭉쳐져 우리의 지구와 같은 암석 행성이 되었다. 이러한 별들의 생멸과 순환은 138억 년 동안 우주의 시공에서 계속되어 왔다.
이 끝없는 생멸과 순환을 이끄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우주자연이 가진 가장 근원적 신비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이 신비를 감싼 베일 앞에 서 있을 뿐이다.



과학은 이 베일을 하나씩 걷어 내고 있다. '관찰-가설-검증'의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베일에 싸인 진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멀고도 먼 길이다. 첨단의 기술을 뽐내는 오늘날의 인간이지만, 봄날 대지 위에 피어나는 풀잎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 지혜를 가졌을 뿐이다.


인간은 한 때  이 '근원적인 신비'를 창조주인 신의 섭리로 이해했다. 또 한 편에서는 '본래 그러한 것'인 자연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의 원리적 이해가 불가능하여 붙여 놓았던 잠정적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근원적 신비에 대해 '메타 meta'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발 디디지 못한 미지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누군가 탐구하게 될 숙제로 남겼으니 안도할 수 있었고,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적어졌다. 생각을 잠깐 멈춘 것이다.
서양에서는 거의 1,500년 동안 더 이상 알 이유가 없는 '신의 섭리'가 되었고, 동양에서는 거의 2,500년 간을 더 이상 따져 볼 필요가 없는 '자연- 본래 그런 것'으로 미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지혜가 쌓이고 학문이 발달됨에 따라,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근원적 신비'에 다가설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서구의 르네상스로 시작된 과학혁명이다. 근대의 시작과 현대의 뿌리였다.
한편 동양에서는 자연은 '본래 그러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치열한 탐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단지 거시적 자연 원리에 따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근대 말까지 이어진다.



우리의 터전인 자연세계에 대한 (수학을 기반으로 한) 엄밀한 자연과학적 이해는 근래의 일이며, 그나마 균형 잡힌 이해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도 갈 길이 먼 현실이다.

또 우리가 탐구를 시작한 '근원적 신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을 과거처럼 다시 '무엇'으로 단정해버린다면 아마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앎은 무엇으로 단정하는 순간 멈춰버리며, 앎이 멈추면 역사 또한 멈추어 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경험했던 바가 아니었던가?

이처럼 우리의 앎은 아직도 미비함을 알 수가 있다. 지혜로운 자연을 이해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연을 만든 신의 섭리를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요원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세계에 대한 겸손한 실존적 이해 속에서, 우리의 삶을 조화롭게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실존은 이 불비함을 현실로 인정하는 겸손이다. 그러면서도 관념적 이상이나 이념 또는 세속의 종교에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 삶을 누리는 일이다. 이것이 현실세계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항구적 토대인 자연의 원리와 질서를 지혜롭게 받아들이면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복잡해 보이는 우리의 삶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명료한 것이 된다.
사실 우리의 대부분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다만 눈앞의 반짝이는 것들에 쉽게 이끌리거나 현혹되지 않는다면, 본래의 플랫폼인 자연의 원리를 알고 누리는 삶이 효율적이고 윤택하며 훨씬 안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진정한 스승은 누구도 아닌 자연이었다. 자연은 인간이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코드를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수수께끼와, 스스로 만든 신화의 코드를 풀며, 오랜 신비의 베일을 걷어내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는 적어도 그가 필요한 만큼의 수수께끼의 코드를 풀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변증법적인 앎의 확장을 통해, 일찍이 알 필요도 없고 풀 수도 없었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까지도 알아낼 날이 오지 않을까?
아직도 공고한 신화와 편견의 베일을 벗을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이 모두가 일반언어이자 상식이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도 공고한 신화와 편견의 베일을 벗을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이 모두가 일반언어이자 상식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지만 우리 손안에 들어온 '스마트폰'처럼. 무엇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게 될까?


#메타인문학1.0

#아포리즘Cafe

#why와what의역사


https://youtu.be/cY67LPJU6KA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듣기. Beethoven Piano Sonatas.

이 버전은 피아니스트의 개인적 편곡이나 감정의 가감 없이, 시퀀싱 프로듀서와 컴퓨터에 의해 원래 악보 그대로 깔끔하게 연주된 곡으로(Sequences by The Sweetest Melody), 베토벤의 오리지널 소나타에 더욱 가까운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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