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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Apr 25. 2023

아바로키테스바라 avalokitesvara


 #메타인문학 #인식론 #불교 #metahumanities

#meta_cognition #causal_cognition


아바로키테스바라
avalokitesvara
있는 그대로를 보라


앎의 최고 경지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으로 말해진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진실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이 큰 지혜를 알고 바르게 행하는 자를 불교에서는 '관자재보살 觀自在菩薩'이라고 한다. 붓다가 산스크리스트어로 말한 'avalokitesvara 아바로키테스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을 뜻했다. 이것이 붓다가 세상에 전한 최고의 지혜로 꼽힌다.


이후에 여기에 여러 해석이 덧붙여지게 되어, 나중엔 신앙의 대상으로 변하면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되기도 한다.

당나라 고승으로 인도에 직접 간 현장玄奘(602년~ 664)은 'avalokitesvara' 중에서 avalokita는 본다라는 뜻인 관觀으로, īsvara는 스스로 있다는 뜻인 자재自在라는 말로 쓰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것을 '관자재 觀自在-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자)'으로 옮겼다. 당시 인도인들은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의 '대당서역기' 주석). 이것은 당시까지 구마라집 鳩摩羅什(344~413)이 티벳 불교로 부터 번역한 '관세음 觀世音'이 오역이었음을 밝혔다. 이것은 중국보다 먼저 불교를 전수 받은 티벳에서 불교를 신앙화했기 때문이었다.



현장 이후에도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는 '기복 신앙'의 흐름을 따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붓다의 높은 가르침을 일반 민중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승려들이 자신의 세속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자연스런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옛날의 순박한 민중이 자신 보다 높은 권위나 신앙에 의지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정서가 아니었을까.


붓다는 붓다 자신을 딛고 심지어는 죽이고 진리로 나아가라고 가르쳤다. 모든 권위와 우상을 깨뜨리고 오직 진리에 의지하며, 그 진리를 가진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쳤다. 진리는 내 밖의 객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주체로 있다고 했다.

붓다의 탄생 게송은 이를 말해준다. 삼라 만상의 누구에게나 해당 되는 말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오직 나 되어 홀로 서라


산과 강, 벌과 나비도 오직 홀로 선다. 토끼와 거북도 스스로 홀로 선다.

'관자재 觀自在'란 바로 자신이다.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인식적론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온전한 최고의 앎일 것이다.


진리는 모든 것에 내재하는 '보편적 universal' 존재 양식이다. 이들은 다양한 물리 현상과 생명 현상과 하나 되어 존재한다. 실체와도 현상과도 분리될 수가 없는 일체로 있다. 나와 너 안에 이미 있는 있는 것이다.

붓다는 모든 존재는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현상(공空)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는 세상을 '공空 일원론'으로 이해했다.

불변의 실체 Brahman는 없으며, 따라서 불변의 나 atman 또한 없다는 사상이다. 세상을 실체와 현상으로 구분했던 오랜 2분법적 세계 인식을 깨뜨린 혁명적 세계관이자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도 이 '2분법적 세계 인식'은 공고하다. 왜그럴까? 우리의 감각은 표면적 현상만 느낄 뿐 그 안의 것은 논리를 통해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 하나인 세상을 2 분법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로 양분해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인식구조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보이지 않았던 세계를 투시해 들여다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전체로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그림/ 티베트 불교 lamaism에서 유래한 '옴마니반메훔' 진언. 관세음보살의 가호를 비는 만트라(주문)이다. 그러나 '관세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주어져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17세기를 살았던 스피노자(1632~1677)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과학적으로 수립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기초를 제공한 중요한 사람의 하나로 알려진다. 그는 자연의 과학적 진실을 예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본래 하나라는 '심신 일원론'의 선각을 이루었다.


그는 몸과 마음이 인식으로는 둘로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라고 파악했다. 표면적 현상의 안 쪽은 보이지만 않을 뿐, 본래 하나로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기존의 지식 체계로부터 자유롭게 행한 과학적 탐구와 사고 실험의 결과였다. 청년시절 유대교의 랍비 재목으로 촉망받았던 그는 이로 말미암아 유대사회로 부터 추방받았지만, 오직 그가 발견한 진리를 따랐을 뿐이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세계의 실체가 '에너지 덩어리'인 양자의 물리적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물질 일원론'이다. 물질 자체가 에너지라는 것이다.

붓다와 스피노자와 현대의 양자역학은 각기 실체를 설명하는 물리적 방식은 다르지만, 세계를 일원론적으로 이해한 점은 같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안에 진리와 지혜를 함께 가진다는 붓다의 가르침은 이처럼 보편적인 자연 원리 가운데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는 말하고 있다.


아바로키테스바라 

avalokitesvara 

있는 그대로를 보라


자신이 가진 진실의 눈으로 보면 바른 답과 광명 세계를 얻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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