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에 반해 몽골로 향하다
무모한 도전…
15년 전, 해외 진출을 준비하던 나는 어느 나라로 갈지 고민했다. 중국, 인도, 몽골이 후보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진출했지만, 나는 이미 인도에서 3년을 보냈기에 다른 선택지를 찾고 싶었다. 몽골은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울란바토르로 비행기표를 끊었다.늘 출발은 용기와 설레임이 공존한다
이슬이 초원을 키우고…
그해 7월, 몽골 초원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숨이 멎을 듯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은 푸르른 바다처럼 넓고 평화로웠다. 자유롭게 달리는 말들의 갈기와 태양빛을 반사하는 강줄기는 꿈속의 풍경 같았다. 밤이 되자 하늘은 또 다른 세상이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이 모든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는 그 자리에서 몽골행을 마음에 새겼다.
마음이 왔다갔다했지만 계속 부여잡았다.
나이 든 새내기…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족의 동의를 겨우 얻었다.
의료를 비롯해 많은 분야가 한국에비해 많이 열악하다는 이유가 가장 큰 가족들의 걱정이었다.
그해 9월,드디어 울란바토르로 다시 떠났다. 작은 매장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고, 운명처럼 그곳에서 아르항가이라는 몽골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두 명의 자매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자매들의 아버지는 모두 달랐다. 몽골은 모계사회였고,그냥 문화였다.
그래서인지 자매들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단단한 유대를 보여주었다.
아르항가이…말을 닮은 여인
아르항가이는 스무 살에 독일로 건너가 베이비시터로 일했을 만큼 독립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중국에서도 일하며 영어와 간단한 한국어를 익혔다. 그녀는 게르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니를 보살피는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는 원인 모를 신경통과 진통제과다복용으로인한 C형 간염으로 고통받고 계셨다. 아르항가이는 어머니를 한국에서 치료받게 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녀를 돕기로했다. 한국에와서 ‘삼차신경통‘
이라는 병명으로 진단을 받고 ’신경차단술‘과 함께 필요한 치료들을했다.
아르항가이와 그녀의 어머니는 무척 만족스러워했고, 나또한 도움이 되어서 기뻤다.
뜨겁게 하얀빛
몽골의 겨울은 아름다우면서도 혹독했다. 여름의 초원이 초록의 바다였다면, 겨울은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이었다. 칼바람이 대지를 휘감았고, 눈 덮인 초원 위를 달리는 야생동물들이 그 풍경에 생기를 더했다. 하지만 도시의 공기는 전혀 달랐다. 겨울이 되면 외곽의 게르에서 난방을 위해 석탄을 땠고, 울란바토르는 두꺼운 스모그에 갇혔다. 하늘은 늘 잿빛이었고, 코끝에서는 석탄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르항가이와 그녀의 자매들, 특히 막내 바양툴가의 도움으로 사업을 꾸준히 키워갈 수 있었다.
제2의고향
옷을 좋아하는 몽골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큰 손님이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옷들이 몽골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매장을 점점 늘릴 수 있었다.
아르항가이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고그러나 일하며 서로 부딪칠 때는 많았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번 돈을 거의 모두 어머니 치료에 쏟아부었다. 막내 바양툴가 역시 한국으로 건너가 공장에서 일하며 대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녀의 노력과 성취는 감동적이었다.
귀소본능
몽골에서의 삶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땀과 눈물과 뜬눈으로 지새운 밤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던 시간들.
이제 나는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광활한 초원과 하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여행자로서 다시 몽골을 찾을 날을 꿈꾸며,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과 특히 아르항가이와 바양툴가를 비롯하여 친구가 되어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