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종오 Jul 27. 2022

자유에 대한 오해

자유와 평등, 우애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자유에 대한 정의를 하려는 순간 자유에서 멀어지는 것이 자유이다.

누구도 그 내용과 형식을 제한할 수 없는 천부적 인간 권리의 하나가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와 함께 얘기하는 평등, 우애(협력과 연대)의 관계에서 자유의 범위는 어떻게 될까?

인류사에서 인간의 자유권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인권선언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거기에서는 봉건귀족의 횡포에 맞서 자유, 평등, 연대(프랑스어의 Fraternité의 원뜻은 ‘박애’가 아니라 연대 또는 협동이다.)에 대한 인간의 권리가 선언되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자유, 평등, 연대라는 가치가 그 어느 것도 인간과 그들이 구성한 사회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세 가지 가치 간의 상충과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는 곤혹스러워한다.

예를 들어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면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평등 앞에서 자유는 제약된다.

모두가 자유로워야 한다면 평등과 우애(상호의존과 협력)는 위험에 처한다.

연대와 협동을 기준으로 본다면 자유와 평등은 일정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다.

자유와 평등, 연대와 관련된 주장들은 거의 대부분 세 가지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잣대로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우파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놓는 반면, 좌파적 정치성향의 사람들은 평등과 협동(우애)을 자유 앞놓는다. 그들이 주장을 하면서 아무리 이론적 정치함을 추구해도 내용을 보면 편향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주장은 평행선처럼 대립만 할 뿐 함께 논의할 여지가 없다.


가령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우파적 견해는 평등이나 연대를 도외시한 나머지 빈부격차나 대기업 위주의 경제질서, 약육강식의 사회질서나 국제질서를 불가피한 것으로 용인하고,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로 귀결되었다. 현재 상태를 인정하고, 자본의 극단적 자유를 추구하고, 그렇지 못한 계급과 사람들은 능력한 자로 폄하하는 논리다.

반면 평등의 이념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 개인의 자유와 능력은 경시되고, 연대는 자발적이고 상호 이익에 기초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 의무가 되는 사회주의적 질서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양극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비인권적 상황 때문에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비정부기구(NGO)나 비영리 시민단체가 등장하고 개인과 약자, 문화 언론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저항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세 가치 간의 상충과 충돌은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자유와 평등, 연대라는 가치는 서로 다른 수준(차원)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음에도 이를 같은 수준(차원)에  병립시켜 다루기 때문에 이들 가치 간의 상충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식물과 동물, 인간 집단을 같은 차원에서 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세 무리는 모두 생물이고, 자연환경을 공유하는 것은 같으나 각각의 생명의 원리는 서로 다르다. 식물의 생명 원리로 동물을 사육하려 하거나 인간의 생명을 생각하려 하면 동물이나 인간은 죽거나 해를 입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와 평등, 연대는 이와 같이 그것이 원리가 되어야 할 사회의 부문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어떤 분야의 해결책을 제시할 때 이 세 가치를 잣대로 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현실에서는 문제 해결은커녕 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사회적 후퇴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 연대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모두 살리면서 인간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이들 세 가지 가치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각각의 차원을 구별하고, 상호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중요한 것은 자유, 평등, 우애(협동과 연대)를 작동원리로 하는 영역(차원)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경제와 정치가 인간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압도하면서 기타의 영역의 자율성이 제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타 영역은 바로 인간 개개인들이 중심이 되는 정신. 문화 영역이다.

정치 국가가 사회를 압도하면 파시즘에 의한 정치적 부자유가 나타나고, 경제가 압도하면 신자유주의의 경쟁으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해진다. 이렇게 되면 교육. 문화.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권력이나 자본의 힘이 작용하여 국가주의 교육이나 경쟁 우위의 교육이 펼쳐지고,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세 영역, 즉 정치. 국가의 영역과 경제영역, 정신. 문화 영역을 구분하여 어떤 원리가 작동되어야 할지를 고민해보자.

우선 문화. 예술 등 정신 영역에서는 개개인의 자유가 유보 없이 관철되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타인이나 사회에 어떤 피해를 주지 않는다.

교육, 예술, 문화, 학문, 종교, 사상, 양심, 판단(경영이나 판결) 등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어떤 법률도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창발성과 잠재적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 자유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 국가보안법 제7조가 당장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정치. 국가의 영역, 즉 인간대 인간, 인간 집단대 인간 집단 등, 인간으로서의 상호 관계에서는 평등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

이 관계에서는 누구라도 부와 지위, 나이, 능력과 성별, 인종, 성적 지향, 종교, 문화, 지역 등 어떤 것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야 하고, 그게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이유이다.

경제활동의 영역은 어떻게 될까? 경제영역은 상호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는 우애(상호협력)의 가치, 즉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 원리가 최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경제란 생산과 유통, 소비와 관련된 모든 거래들이 일어나는 분야이다. 경제생활은 거래당사자간의 상호 이익과 연대에 기초하여 어느 일방이 손해보지 않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작동되어야 건강하다. 우애의 정신이 핵심원리다. 경제생활의 영역에서 협동조합이나 사람 중심의 사회적 경제가 중시되어야 할 이유이다.


이처럼 자유와 평등, 우애는 서로 다른 차원의 원리로 다뤄야 하고, 그렇게 해야 각각이 완전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인권적 가치가 된다.

물론 노동력의 거래나 토지 거래와 같이 외양은 경제영역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평등권에 속하는 문제처럼 명확하게 가리기 어려운 영역이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일반 상품처럼 취급되어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노동력의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주장된다. 인간의 원초적 권리에 반하는 논리이다. 노동력은 일반 상품과 달리 인격이 담지된 실체이다. 이를 상품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노예제 시대의 인간 거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력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은 반인권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정되어야 할까?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과 자본의 협업, 다시 말해 노동자와 자본가의 협업에 의해 생산된 재화의 판매로 발생하는 잉여를 각각의 기여분으로 나눠갖는 방식으로 임금과 이윤 등이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기가 좋고, 상품 가격이 좋은 시기에는 더 많이 가져가고 반대의 시기에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상품이 팔리지 않아 임금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인권침해적 상황이 되므로 이에 대해서는 정치. 국가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자본주의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토지의 경우에도 그 특수성을 고려해서 취급해야 한다. 토지는 그 공급이 절대적으로 제약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위치적으로도 고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토지 소유자는 다른 상품 판매자와 달리로 토지를 이용하는 사람을 인신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따라서 토지임대차 문제는 경제영역의 상품 거래 원리로써가 아니라 평등권적 관점에서 토지거래 또는 토지임대차를 관리하는 정치 국가의 통제가 불가피한 것이다.

노동과 토지를 제외한다면 앞서 말한 세 영역에 자유, 평등, 우애가 있어야 할 자리를 매김하고 보면 이들 가치 간의 충돌과 그에 따른 유보의 문제는 사라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그 영역에 종사하는 당사자들(개인, 개인들이나 집단들, 거래 주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교육은 교육자들에게, 학문은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재판은 판사(들)에게 경제는 거래당사자들에게.... 맡기고,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제(보편적 인권문제나 자원의 배분 문제 등)를 다루기 위해 세 영역의 대표자 협의 기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현재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균형을 위해 3권 분립을 제도화하고 있듯이.)

주)

이처럼 자유, 평등, 우애의 고유한 작동 영역을 밝히고, 이들을 상호 연결하는 삼중 사회 유기체(theory of trifold society organism) 론을 정립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20세기 초 독일에서 활약한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이다.(이 양반은 질비오 게젤과 같이 상품과 화폐 사이의 불공정거래(그 결과 기본이자가 발생함)를 막기 위해 늙는 화폐(Aging Money)를 주장한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 문제의 핵심> 참고

한글 번역판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추천하지 않습니다. 영문판으로 읽으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