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형제, 이혼과 재혼
이 글을 읽는 분 중 미국 사람에게 형제가 몇 명 있냐고 물어보신 분 계시나요? 형제가 몇 명 있냐는 질문을 미국 사람에게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답변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생각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겠죠. "형(오빠) 한 명이랑 누나(언니) 한 명 있어."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렇게 명쾌한 답을 얻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이복형제까지 합쳐서 말할까? 나는 외동이긴 한데 새아빠 쪽 가족까지 합치면 많아." 이런 대답을 듣기가 일쑤입니다.
나이를 묻는 것
외국에서 대뜸 상대에게 몇 살이냐고 묻는 걸 무례하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압니다. 첫 만남에 서열 정리를 위해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우리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구권 국가에서 생일이나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나이를 묻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학생의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고 그 누구도 다른 학생들의 궁금해하지 않는 분위기였기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의 나이도 모른 채 몇 년을 함께 했습니다.
부모님에 관해 묻는 것
부모님에 관해 물어보는 것도 자칫하면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부모님에 관해 여쭤보는 게 왜 실례가 될까요? 그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혼과 재혼 비율은 서방권 국가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한편 외국에서는 간혹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기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북미, 유럽 학생들은 부모님의 재혼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혼외출산율이 절반을 웃도는 게 태반입니다. 하물며 프랑스에서는 연인 관계를 거의 부부 관계와 동등한 정도로 인정해주는 '팍스'라는 제도까지 있습니다. 연인 관계에서 동거하는 것도 드물지 않은 편이라 오히려 우리나라의 연인들이 함께 동거하는 게 드물다는 걸 신기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혼외출산율이 최하위권인 우리나라가 저 위에 있는 혼외출산율이 높은 나라를 이해하기란 약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새아빠, 새엄마, 이복형제의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차마 형제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까지 자칫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곤 합니다. 아니, 형제를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는 낮은 혼외 임신율과 낮은 이혼율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성적으로 개방적인 문화의 남미, 북미 그리고 유럽에서는 혼외 임신율과 이혼 및 재혼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어떤 문화가 윤리적으로 더 옳다고 판단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대화할 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에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기 전에 마음이 앞서 사적으로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점을 묻는 걸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